ㅂㅇ
[단간/히코마]약속 4 본문
시리즈
약속 1 - https://backupqordjq.tistory.com/266
약속 2 - https://backupqordjq.tistory.com/267
약속을 완수하다
똑똑, 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퍼뜩 눈을 뜨고, 곧바로 자신의 상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그대로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어제 별로 자지 못한 탓일까. 문을 등에 기대 체육 앉기 자세 같은 모습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시간은 지나지 않은 듯 관절은 아프지 않았다.
똑똑, 소극적인 소리는 아직 배후의 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간에 누구일까. 머릿속에는 한 명의 인물이 떠오르지만, 곧바로 그 망상을 떨쳐버린다. 그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고한 주제에, 또 그가 자신이 있는 곳에 와주다니 자신한테 너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크 소리는 그치지 않아, 이대로 무시해도 되는 건지 불안해졌다. 뭔가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목이 달라붙어서 목소리를 잘 낼 수 없다. 꼴사나운 목소리를 들려줄 바엔,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이쪽에서 노크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노크를 하고 있던 소리가 그치고, 숨을 삼키는가 싶더니, 뒤에 긴 숨을 토해내는 기척을 느꼈다.
“코마에다, 거기에 있지.”
흠칫 몸이 떨렸다. 설마 정말로 히나타 군이었을 줄이야.
뭔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해도 실제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침묵을 지키게 된다.
아니, 이걸로 된 거야. 나는 이제 히나타 군과 얽히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니까. 여기서 어중간하게 응하면 일이 꼬인다. 이별을 꺼내는 것은 그 자리의 판단으로 결정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더 히나타 군의 동정을 부추기는 말을 해서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원래의 친절함을 발휘하고 있는 히나타 군을 매정하게 돌려보내서, 어이없게 만들면 된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고, 조용히 있기로 했다. 문을 등지고 기대어있음으로 방 안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있는 거라면 그걸로 좋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내 이야기 들어주면 안 될까.”
진지한 목소리였다. 무엇인가 뭔가를 결의한 듯한, 강력한 무언가를 느꼈다.
“너의 행운의 재능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 논의할 생각은 없어. 네가 말한 대로, 그건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거겠지. 나도 옛날 그 편린을 맛봤으니까.”
초등학생 때에 절벽에서 떨어졌던 걸 말하고 있는 걸까. 그때는 정말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심장은 멎기는커녕,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었지만.
“네 재능은 나로선 어떻게 할 수 없어. 애초에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어떻게든 했겠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재능이라니, 나라면 견딜 수 없어.”
이 재능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래서는 계산에 맞지 않기 때문에, 마치 신의 변덕처럼 발동한다. 옛날에는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이 재능을 어떻게 살릴지 생각하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된다면, 희망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나의 재능에 희생이 된 사람의 죽음도, 분명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그래도, 너는 이 재능과 함께 살 생각이지?”
나와 이 행운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이 재능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왜곡된 가치관을 낳은 것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것 말고는 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네가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속에 안은 폭탄 같은 것과 마주 보고 있는데, 나만 도망칠 수는 없잖아?”
“어…?”
무심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정했어. 너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 전의 작별 인사는 철회해 주지 않을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히나타 군! 너는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는 거야?!”
나는 분노했다. 언제 기폭 할지 모르는 폭탄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갑자기 날리려 하다니.
“나는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신경 쓰는 건 너의 자유의사에 따른 거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어. 나 따위가 너의 행동을 제한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달라. 명확하게 위험성이 높다고 알고 있는데, 일부러 거기에 접근할 이유가 있어?”
“이유라면 있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야.”
“뭐? 그래서 너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야. 오히려 마이너스밖에 없어. 게다가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어쩌면 그 피해는 너의 부모님에게까지 미칠지도 몰라. 그것을 알고서 말하는 거야? …너는 지금, 나라고 하는 약자를 앞에 둬서 손을 뻗는 히어로 상에 취해 있을 뿐이야. 그 도운 약자가, 도와준 히어로에게 감사해한다는 법도 없어. 오히려, 도와준 은혜도 잊고 나이프로 히어로의 가슴을 찌를지도 몰라. 그런 현실에서, 너는 피하고 있을 뿐이잖아.”
험악한 말로 히나타 군을 떨쳐냈다. 부탁이니까 이걸로 생각을 고쳐줬으면 한다. 나는 영화의 히로인처럼은 될 수 없다. 나는 비참하게 화면 구석에서 죽어 가는 그 외 많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걸맞지 않아. 너를 상처 입히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너까지 잃으면, 나는 나로 있을 자신이 없다.
그야말로,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
“히어로를 바라는 게 아니야. 내가 히어로가 될 수 없다는 건,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어. 내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너를 구했을 거야.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그건 할 수 없었어. 나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에게 쉽게 내쳐질 수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내친 거였는데. 히나타 군의 자학으로 가득 찬 말이 측은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했던 것을 지금에 와서 겨우 진정한 의미로 이해했다. 자학이란, 듣고 있는 쪽은 이렇게도 괴로워지게 하는 거였구나. 나는 자신의 자기만족 때문에, 언제나 히나타 군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했던 걸까. 그는 그토록 자학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럽다.
나는 문을 되돌아보고, 손을 짚었다. 사실은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그건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럼 농성을 한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 도망치고 싶지 않아. 너와의 약속을, 나만이라도 지켜내고 싶은 거야.”
약속.
7년 전의 일이다.
그날 병원에서 나눈, 2명만의 약속.
약속에 시효는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제 공소시효는 지났으니까, 그때의 약속은 파기해도 상관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저기, 기억나?, 그때의 약속.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잊은 적 없어.”
그 무렵엔 아직 초등학생 3학년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언약은, 고등학생이면 의리있게 지킬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건, 히나타 군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들이댔다, 우리의 일생을 묶은 계약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만약 그때의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너도, 약속을 지켜 주지 않을래. 뭐든지 한다고 했던 것, 없는 셈 치려는 거야?”
마지막만 조금 장난 같은 스스럼없는 말투가 되어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그 약속은 내가 먼저 걸었던 것이었지 않았나.
약속의 내용 자체는 히나타 군이 정했지만, 먼저 그것을 제시한 것은, 뭐든지 한다고 말을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나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너, 뭐든지 한다고 말했지? 그럼, 하나 약속해. 앞으로, 뭔가 곤란하거나, 힘든 일에 휘말리거나 하면, 꼭 나를 의지해. 나에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그러면, 난 반드시 너의 손을 잡아서 돌려줄 테니까. 약속이다.
───그럼, 나만 좋은 거잖아. 너는 손해만 보는데. 불공평해. 무엇보다, 나의 속죄지? 이래선 마치 히나타 군이 나에게 속죄를 하는 것 같잖아.
───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거잖아? 내가 원하는 건 너를 매도하는 것도, 때리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너에게 의지 받고 싶어. 그게 내 바람이야.
커튼에서 새는 햇빛을 등에 지고 그렇게 말한 히나타 군은, 그야말로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였다. 나는 마치 빛에 모여드는 벌레처럼, 그 빛에 빨려 들어가 끄덕 수긍하고 있었다.
약속이다, 라면서 새끼손가락끼리 걸고 약속한다.
나는 팔을 상하로 흔들어지면서, 연결되었던 새끼손가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의 약속을 지키라는 건, 이 경우 어떻게 하라는 걸까.
이 문을 열고, 히나타 군에게 손을 뻗으라는 걸까.
하지만, 그러면 같이 빠진다. 이 문을 열어 버리면, 히나타 군을 지옥까지 데리고 가게 된다.
히나타 군은 뻗은 손을 거부하지 않겠지. 그야말로,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해도, 틀림없이 놓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러니까 안 되는 거다.
“어릴 때 약속이잖아? 그런 건 벌써 잊어버렸어. 저기 말이야, 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말했지? 네가 너의 부모님을 희생하면서 나한테 헌신할 이유가 있어?”
히나타 군이 생각을 고칠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해, 부모님 쪽으로 이야기를 전환했다. 이것만은 히나타 군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는 일이겠지. 친부모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천칭에 걸려서, 타인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 일말인데, 코마에다. 내 부모님과는 이야기했어.”
이야기했다고? 도대체 뭘 말이야.
“네 사정은 간단하게 부모님에게 설명했어. 친척도 없어서, 보호자가 될 사람이 없다는 것. 금전 면에서는 특별히 문제없어서, 상속에 관해서도 변호사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 그랬더니 내 부모님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어.”
“기다려 히나타 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코마에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니 뭐야. 나는 히나타 군의 부모님의 신변의 안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히나타 군의 너무나 진지한 음색에 압도당해, 입이 끼어들 수 없다.
“나랑, 가족이 되지 않을래?”
가족, 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나는 귀가 이상해진 걸까. 나와, 히나타 군이, 가족?
“처음엔 후견인이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하지만, 지금까지도 거의 가족 같은 것이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되어도 좋을 거라고. 물론 네가 싫다면 후견인이 되는 것만이라도 괜찮대.”
기다려. 기다려 주었으면 한다. 머리가 따라가질 않는다.
히나타 군의 부모님이 나의 후견인이 되는 것만이라도 놀랐는데, 게다가 가족이라고? 방금, 천애 고독이 된 직후의 나랑?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가벼운 기분으로 말하는 게 아니야. 성씨도, 억지로 바꾸지 않고 코마에다인 그대로 해도 좋아. 그런 자잘한 것도, 앞으로의 일도 포함해서, 이야기를 맞추고 싶어. 나도 나의 부모님도, 그럴 각오가 있어.”
있을 수 없다.
이런 녀석과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 따위 있을 리가 없다.
하물며 히나타 군의 부모님은 상식적인 사상의 소유자일 것이다. 어째서 그런, 폭탄을 안는 일을.
나는 퍼뜩 깨달았다.
“히나타 군, 너의 부모님은 날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나의 행운에 대해서는 모르지? 알고 있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야. 너의 부모님은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셔?”
그렇다. 나의 행운에 대해서 믿어주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지금까지 믿어 준 것은 나의 부모님과 히나타 군뿐이었다. 애초에 쓸데없는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히나타 군의 부모님에게도, 내가 말한 기억은 없다.
“너의 행운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내가 이야기했어. 솔직히 진심으로 믿었다고는 말할 수 없어, 뭐,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봐, 역시 그렇잖아. 너의 부모님은 나라는 위험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시지 않으셨으니까 그렇게 말해주시는 거야. 그런 건 사기잖아.”
“지레짐작하지 마. 그렇게 말한다면, 앞으로 너의 행운으로 우리들이 죽을지 어떨지 정해지지 않았잖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고 있잖아!”
어투를 거칠게 하고 반론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 미래가, 지금이라면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벌써 선택했다. 나머지는 네가 그것을 받아 주면 다른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데.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 거야. 난 그저, 네가 살아 있어 주었으면 할 뿐인데.
“그렇다고 해서 너는, 그런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거야? 지금까지 알아 온 관계도, 추억도 전부 버리고, 그래서 너는 행복해?”
“나의 행복 따위는 어떻게 되든 좋잖아?! 그딴 거보다 너희 가족의 목숨이 훨씬 소중하잖아!”
“그딴 거라니 뭐야! 나는, 너의 “그딴 거”를 위해 지금, 여기에 있다고!”
양쪽 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지론을 전개한다. 하지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나도 부모님도, 너를 받아들일 각오가 있다고 했잖아! 만약 만일, 너의 행운이 발동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너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아.”
“허울 좋은 말이네. 고작 남인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야.”
“남이 아니야. 앞으로는 가족이 될 거야.”
히나타 군의 힘찬 목소리에, 말이 목에 막혔다. 내가 한순간 겁먹은 틈을 노리고, 히나타 군의 맹공이 닥쳐온다.
“가족은 말이야, 피가 연결된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 피가 연결되지 않는 가족도 세상에는 많아. 반대로, 피가 연결되어있어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나는, 가족이란 서로의 인연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해. 이 사람이라면 함께 살 수 있고,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동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요점은, 신뢰야. 곤란할 때는 서로 도우며, 손을 뻗고, 도와서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함께할 각오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그냥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을 뿐인 동거인이야. 영화 같은 데에선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등장인물이 있지만, 그것에 감동하는 건 공감하기 때문이잖아?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분명 그 등장인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는 계속, 너를 가족처럼 소중히 생각해왔어. 나의 부모님도, 너를 아들 같은 거라고 말했었어. 너는 어때?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지 않은 거야?”
히나타 군의 집에서 먹은 저녁 식사를 떠올린다. 밝은 식탁에, 내가 섞여도 미소로 답해준 히나타 군의 부모님.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 주시는 아주머니.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아저씨. 그리고, 언제나 나의 아군으로 있어 주는 히나타 군.
소중하지 않을 리가 없다.
소중하기 때문에 지금, 멀어지려고 하는 이유이며.
“적어도 우리는 너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손을 뻗어주고 싶어. 누군가에게 강요된 게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너는, 눈앞에 내민 손을 잡아서 답해주기만 하면 돼.”
“그런 거……못해, 할 수 있을 리 없어!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는데.”
“바로 돌려주지 않아도 돼. 우리가 곤란할 때, 네가 가능한 범위에서 우리에게 손을 뻗어 주면, 그걸로 됐어.”
그런, 그런 거로 괜찮은 걸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그걸 배우지 않았다. 진짜 부모님에게도, 손이 가지 않도록 착한 아이로 있으려고 했을 뿐이라서, 돕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나뿐이고, 진정한 의미로는 가족이 되지 못했던 걸까.
죽은 부모님은 일하러 가실 때는 언제나 미안하다는 듯이 서 계셨다. 외로우면 언제라도 말해줘, 라고 말을 걸어 주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 뻗은 손을 평소에 자신이 거부하고 있었다.
“코마에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가족의 유대를. 따뜻하고, 조금 귀찮고, 그렇지만,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가 있다는 것. 언제라도 돌아갈 장소가 있는 것의 행복을.”
문 너머에서, 히나타 군이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손을 내밀면, 분명히 이 어두운 곳에서 끌어 올려 줄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유혹이었다. 지금 당장 이 문을 열어 버릴 것 같다. 빛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는 벌레 같은 나에게는 너무 강한 빛이었다. 안이하게 달려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인 곳에서 나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지 않는다.
“네가 말해 준 것은, 나한테는 아까울 정도야. 넌 분명, 많은 사람을 이끄는 희망이 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는, 그 희망을 망가뜨리게 하면 안 돼.”
쾅 큰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 진동이 전해진다. 히나타 군이 저 너머에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지금은 이 문 한 장이, 나와 그를 크게 가로막고 있다.
“어떻게 해야 네가 알아주는 거야.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너를 선택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 거냐고.”
낮은, 짜낸 것 같은 쉰 목소리였다.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너의 제안은, 솔직히 지금 당장 달려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어. 하지만 안 돼. 나는 그 제안을 탈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나에게 있다고도 생각 안 해. 너희 가족에게 지는 빚도, 너는 천천히 갚아나가면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뭘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자신에게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이 16년간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주 있는 사춘기의 고민이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그렇지만 이것은 일과성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것이었다.
“…꽃을, 기르고 있었지.”
침묵 후, 툭 히나타 군이 흘린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주춤했다. 방구석에 놓인 꽃의 화분에 눈을 돌린다. 곧게 뻗은 줄기 끝에, 커다란 꽃을 피우고 있다.
“나, 네가 집 주위의 식물을 키우고 있는 거 보고 있었다고 말했지.”
“…응.”
“그거, 나만 본 게 아니야. 내 부모님도 알고 있고, 이웃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해서, 네 집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예쁘다며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사람도 있어.”
금시초문이다. 내가 키운 식물 따위가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니.
“코마에다, 너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가르쳐줄게. 그 증거로, 네가 키운 꽃으로 치유되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최소한 한 명이라도 있어. 이걸로 하나 논파했지.”
“히나타, 군….”
“꽃 따위로 치유될 리 없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실제로, 나는 너도 자신이 피운 꽃에 치유되고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때?”
정곡이었다. 꽃의 화분이 당당하게 이 방에서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히나타 군 대신 이것만은 가지고 가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애틋함이 강한 것이었다.
“코마에다, 나랑 가족이 되어 주면 말이야, 내 집도 네가 키운 꽃으로 가득 차게 해 줘. 그러면, 집에 돌아올 때 네가 피운 꽃에 어서와 라고 듣는 기분이 될 수 있을 거야. 그건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런 것에 가치는 없다는 마음과 히나타 군이 말하는 대로일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갈등하고 있다. 꽃에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걸 기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딱히 키우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을 거다.
게다가, 가족이니까 폐를 끼치는 것도 결과론이다. 나는 아직 히나타 군의 가족이 된 것이 아니다. 과정을 마구 뛰어넘어서 결과에서 결론을 내리다니 히나타 군답지 않다.
내가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변명을 생각하고 있자, 갑자기 히나타 군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밤의 고요함이 방에 가득 찬다. 지금까지 들려 오지 않았던 밖으로부터의 소리가 방에 숨어들어왔다.
어쩌면 돌아가 버린 걸까. 그렇지만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히나타 군은 이 문 너머에 있을 것이다.
가만히 문 너머의 기척을 살피고 있자, 쿵 큰 소리가 들렸다. 뭔가 큰 것이 쓰러지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히나타 군이 있을 터인 장소에서 들렸다. 가슴에 초조함이 심해진다.
“히나타 군, 지금의 소리는 뭐야? 거기에 있어? 무슨 일이 있었어? 저기, 대답해줘 히나타 군!”
전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설마, 설마.
히나타 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렇지만 여기는 집안이다. 외적 요인이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 내적 요인? 몸에 갑자기 어떤 이상이 일어났다고 생각 할도 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돌연사하는 사례도 없는 게 아니다.
최악의 케이스를 떠올리며 나는 가만 있을 수 없이 문을 밀어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겨우 열어 줬네.”
그렇게 말하고 웃는 히나타 군이 앉아 있었다. 훑어보니 어디에도 상처는 없는 모양이다
안심했던 것도 잠시, 맹렬한 분노가 치밀어 왔다.
“히나타 군, 너 말이야!”
“고마워.”
어째서인지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기선을 제압당한 나는 분노의 화살을 어디에 향해야 좋을지 고뇌한다.
“코마에다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문을 열어 줬잖아.”
“…완전히 속았지만.”
“미안해. 시험하는 짓을 해서. 하지만, 이걸로 알았지?”
“뭐를.”
“빚을 갚는 방법.”
무심코 놀란다. 그러자 히나타 군은 히죽 웃고, 이쪽에 손을 뻗어왔다.
“내가 너에게 손을 내 미듯이, 너도 내가 곤란할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줘. 입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쪽이 알기 쉬웠지? 간단한 일이야, 손을 내미는 건.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잖아.”
그렇지, 확인하는 듯한 말을 듣고, 손을 뻗는 히나타 군을 내려다본다.
강제적인 수법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 정도가 딱 좋을지도 모른다.
분명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그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망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히나타 군은 가르쳐 주었다. 그 닫힌 문이, 간단하게 열어질 정도로.
그 문은 나의 최후의 보루였다. 문을 연 나는, 이제 히나타 군에게서 도망칠 수 없겠지. 나도,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히나타 군의 가족에게 도움이 되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은혜를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히나타 군의 손을 잡고 끌어 올리려 하자, 반대로 내가 히나타 군 쪽에 끌려갔다. 위로부터 끌어당기는 힘과 아래에서 당기는 힘에서는 당연하게 중력도 있으니 후자가 유리하다. 나는 자세를 무너뜨리고 히나타 군의 위에 쓰러지자, 그대로 꽉 양팔로 구속된다.
뭐 하는 거야, 처음은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구속의 힘이 강해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단념하기로 했다.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않는 방침이다.
지금은 히나타 군을 깔아 내가 위에 타고 있는 모습이다. 히나타 군의 머리는 내 가슴에 있어서, 거기에 머리를 밀어붙인 채 얼굴을 올려 주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 자세로 있어야 할까.
자력으로 탈출을 포기한 나는 구속을 하는 본인에게 회유하려고 했지만, 구속을 풀기는커녕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오히려 구속하는 힘은 강해질 뿐이다.
거기서 비로소 히나타 군이 나의 가슴에서 얼굴을 올리지 않는 이유가 어쩐지 짐작이 가, 살며시 그 머리를 껴안았다.
오후의 옥상에서
“그래서, 너희들 결국 가족이 된 거야?”
점심시간 옥상에서 각자의 점심을 손에 든 각자에게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하기로 했다. 반응은 가지각색, 이라는 걸까.
“아직 정식으로는 가족이 된 건 아니야. 양자결연 신고를 안 했거든. 이번에 양자가 되는 코마에다가 16살이니까,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고 귀찮은 수속도 필요 없어.”
“유산 상속 같은 게 까다로워지니까, 그런 게 잘 정리되고 나서 하자는 게 됐거든.”
“힘들겠네….”
사이좋은 평소의 멤버에게는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수학여행에서 동실이었던 남자 멤버에게 간추려서 말했지만, 생각 보다 놀라지 않았다. 소우다 이외에는.
“그럼 코마에다를 이제부터 히나타라고 불러야 하나? 까다로워지네….”
“아니, 성은 옛날 그대로 할 거야. 그래도 된다고 히나타 군의 부모님도 말씀해주셨거든.”
“그건 다행이네. 솔직히 이름으로 부르면서 우정 놀이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으니까.”
“쿠즈류도 솔직하지 않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라!”
시끌벅적 떠들어줬기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는 되지 않았다. 신경을 써줬을지도 모른다. 나도 코마에다도, 그런 그들에게 입으로는 내지 않지만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 군과 코마에다 군이 가족인가…어쩐지 수상한 냄새가 나네! 모녀 덮밥이 아닌 형제 덮밥이라는 것도 재밌는 맛이구나. 근친 관계가 된 것으로 더 허들이 높아졌는지 내렸는지 미묘한 점이야!”
“야, 밥을 먹을 땐 그런 이야기 하지 마.”
“허들은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것이여!”
“그건 좀 다른 것 같은데….”
“엥─? 지금부터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거잖아?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남자로서 체면이 안 선다고!”
나아아안센스! 라고 외치면서 하나무라가 척 손가락으로 포즈를 취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쪽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자, 하나무라의 옆에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네놈…너무…우쭐대지 마, 라….”
드물게 모호한 대사를 내뱉는 타나카를 보자, 안색이 보라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손에 든 도시락을 일사불란 집어삼키고 있다. 도시락의 내용은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지만, 타나카가 그것을 남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마음속으로 타나카에게 성원을 보냈다.
거기서 나는 겨우 도시락 보자기를 연다. 코마에다도 마찬가지로 도시락에 손을 대고 있었다. 오늘의 나와 코마에다의 도시락은 같은 내용이다. 엄마가 아침부터 의욕에 넘쳐 평상시보다 한 명분 많은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 코마에다의 집으로 맞이하러 가서 엄마의 도시락을 건네자, 코마에다는 그것을 받고 한동안 지그시 도시락을 응시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도시락을 안고, 구멍이 뚫릴 만큼 눈을 피하지 않았다.
겨우 시선을 도시락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자, 도시락을 소중하게 안고서 고마워, 라고 말해왔다. 나는 그것에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돌려준다. 지금 이 순간, 코마에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걸까 생각하니 기뻐졌다. 그런 대화 덕분에 아침부터 지각할 뻔했다.
“호오, 히나타와 코마에다는 같은 도시락인가. 조금은 가족답게 보이는군.”
대량의 식량을 손에 들어 위 속으로 흘려 넣고 있던 토가미가 말을 건다. 그것에 이끌려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도시락을 들여다봤다.
“맛있을 거 같구먼, 만든 사람의 애정이 전해져 오는겨!”
“그야말로 어머니의 맛이라는 느낌의 반찬이네. 나,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엄마의 수제요리를 칭찬받는 건 어쩐지 쑥스럽다. 코마에다 쪽을 보자, 수줍어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감동 쪽이 강한 듯, 젓가락을 드는 게 아깝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코마에다, 안 먹고 남기면 엄마가 슬퍼할 거라고.”
“코마에다…네놈 설마 성모가 만든 공물을 무로 돌려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나와 거의 같은 내용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나카의 말엔 귀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냥한 녀석이다.
“물론 먹을 거야! 남기다니 말도 안 돼!”
당황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말을 부인하고 도시락의 내용에 젓가락을 대었다. 처음으로 도시락 상자에서 얼굴을 내민 건 계란말이다. 평소의 심플한 계란말이가 아닌, 조금 기합이 들어간 벚꽃 새우가 들어간 계란말이였다. 엄마도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것 같다.
젓가락으로 잡은 그것을 코마에다는 가만히 응시하고, 냠 입안으로 옮긴다. 음미함에 따라 헤실 얼굴이 녹아갔다.
“오, 맛있나 보네.”
“맛있게 먹는 것이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가장 좋은 찬사이다. 그것을 잊지 마라.”
코마에다의 먹는 모습을 보고 배가 고파진 건지, 다른 녀석들도 각자의 도시락에 착수한다. 나도 코마에다와 마찬가지로 계란부터 먹기로 했다. 씹으면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맛있다.
젓가락이 멈추지 않고 차례차례로 도시락의 내용이 사라져 간다. 소식하는 코마에다도 이번만은 마지막까지 먹으려고 분투하고 있었다. 나는 나머지 밥을 퍼먹고, 차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녹차 덕분에 입안이 산뜻하다.
먹은 도시락을 정리하고 있자, 쿠즈류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히나타, 이걸로 된 거냐?”
“무슨 말이야?”
“아니, 별로 이런 걸 말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말이야. ……네가 코마에다 자식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이런 형태로 괜찮은 거냐?”
쿠즈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설마 간파당했을 줄이야.
“흥, 뭘 놀라는 거지. 눈치채지 못한 건 당사자인 너희들뿐일 것이다. 내가 코마에다에게 말을 걸고 있을 때 원한이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 설마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한 건가.”
토가미의 추격에 한층 더 충격을 받는다. 확실히 신경 쓰고 있었지만, 원한이 담겼다고 불릴 정도로 시선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아니 아니, 코마에다가 더 무서웠잖아! 히나타한테 붙어있었는데 그 무언의 미소로 압박하고. 등골이 얼어붙는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거구나….”
소우다에게까지 듣는 형편이다. 하지만 코마에다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손에 들어온 것은 은근히 기쁘다.
코마에다는 아직 도시락에 손을 대고 있어 이쪽의 대화를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듣고 있었다면 나중에 소우다가 불쌍하게 될 테니 들키지 않아서 럭키였겠지.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도시락을 다 먹은 듯,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의 행동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나도 크게 기지개를 하고, 위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창공 아래에서 밝은 햇빛을 쐬고 있자, 배가 가득 차기도 해서 졸음이 왔다. 오후 수업에 견딜 수 있을까.
“히나타 군 졸려? 내가 무릎베개해 줄까?”
“어이어이 어디의 커플이냐고! 몰래 하는 건 상관없지만 당당히 하지 마! 우리가 반응하기 곤란하잖아.”
“바보 커플이라니 의외네. 나는 귀여운 동생을 돌볼 뿐이야.”
이어진 말에 무릎베개로 한순간 두근거리고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어 간다. 동생, 이라고…?
“잠깐 코마에다. 설마 동생이라는 게 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싫다 히나타 군 말고는 내 동생은 없는데?”
그러니까 안심해, 라고 정말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하고 있다. 왜 내가 동생이라고 확정하고 있는 거야.
“훔, 확실히 특이점 쪽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늦었나….”
“코마에다 군이 형이고 히나타 군이 동생이구나…이야 한쪽을 선택하는 짓은 난 할 수 없어! 여기는 차라리 2명 모두 내 곁으로 오지 않을래? 맛있게 요리해줄게?”
“전력으로 사양할게!”
“형제 잔을 나눈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히나타는 좋은 동생이 될 수 있다고?”
“형제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겨! 동생이 형을 곤란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아니, 이 경우엔 반대인가.”
“그러니까 어째서 내가 동생이 되는 거야!”
코마에다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알았을 때는 그렇게나 기뻤는데. 형제, 게다가 내가 동생이라고 들은 순간 후회의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동갑이니까 형이고 남동생이고 없잖아?! 애초에, 보통 착실한 쪽이 형이고, 제멋대로에다가 응석꾸러기인 쪽이 동생이라고 정해져 있잖아!”
“물러 히나타 군! 요즘은 게으르고 한심한 형과 잘 보살펴주는 하이스펙인 동생도 수요가 있어!”
“음후후후후후…확실히 BL 세계에서는 그쪽이 왕도인 것 같기도 하네.”
“그쪽 세계의 이야기는 됐어!”
내가 필사적으로 반론하고 있는 모습을 코마에다는 히죽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젠장, 이래서야 그야말로 형에게 반항하는 동생 같은 구도잖아. 넘어가버렸다.
“히나타 군, 날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그건 어디의 라노벨이야!”
“아아, 히나타 군 미안해? 내가 여자라면 아침부터 너를 일으키러 가거나, 도시락 만들거나 해줄 수 있었는데. 그리고 너의 집에서 우연히 샤워하고 있던 나와 알몸으로 배팅하거나 하고, 럭키 스케베 전개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전개가 취향이었어?”
“나는 라노벨 주인공이 될 생각은 전혀 없어!”
“그래? 츠미키 씨와 비슷한 일을 하는 걸, 본 적 있는데?”
말문이 막힌다. 확실히 츠미키와 비슷한 전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체육 수업에서 머리에 공이 직격한 나는 뇌진탕을 일으켜 보건실에 옮겨졌다. 보건 위원인 츠미키가 나를 돌보러 왔지만, 무심결에 이끌려 잠들어 버린 것 같다. 내 위에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보건실 침대 위에서, 남녀가 몸을 서로 맞대며 자고 있다는 구도가 완성되어 버렸다. 육감적인 츠미키의 몸은 부드럽고, 그야말로 천국 같은 상황이었다. 목만 조이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보고 있었을 줄이야.
“부럽다고 히나타! 왜 너한테만 그런 좋은 일이 벌어지는 거야!”
”히나타 너, 학교 보건실에서 도대체 뭘 한 거야 이 새끼야!“
”서, 설마 무슨 짓을…?!“
”너희들 나를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
모두가 배를 움켜쥐면서 크게 웃었다. 놀림 받는 역할은 괴롭다.
하지만, 코마에다가 이렇게 모두와 함께 웃으며 농담을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다니, 꿈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주변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같다.
이런 식으로 장난치고 바보짓을 하는 것도, 학생일 때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마음껏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코마에다는 지금까지 손해를 많이 봐왔으니, 이거로도 아직 부족하다.
휴일에 어딘가에 가는 것은 어떨까. 분명히 코마에다는 딱 한 번 부모님과 유원지에 갔던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꿈의 나라까지 멀리 외출하는 건 어렵지만, 현지의 유원지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시켜 주고 싶다. 알지 못했던 것을 보여 주고 싶다. 경험 시켜 주고 싶다. 그것이 둘이서라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코마에다와 지낼 생활에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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