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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ㅇ

[단간/히코마]약속 1 본문

단간/소설

[단간/히코마]약속 1

ㅂㅇㅇㅇ 2021. 5. 26. 13:14

 

캡션:

이 작품은 게임 본편과는 다른 히나타와 코마에다가 소꿉친구인 세계선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편은 히코마의 만남, 초등학생 편

코마에다를 너무 소중히해서 약간 얀데레로도 보이는 히나타가 있습니다

코마에다는 도망치는 성질이라 히나타가 밀어붙이는 느낌이 되어 버린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둘만의 비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아니다, 5월의 일이었다.

옆의 빈집에 나와 동갑인 남자아이와 그 부모님이 이사해온 것이다.

 

잘 부탁해! 나는 코마에다 나기토야. 네 이름은?”

 

새하얗고 푹신푹신한 머리카락에 똑같이 새하얀 피부. 동그랗고 큰 회색의 눈동자와 조금 쳐진 눈썹. 온화한 표정과 반반한 외모. 초면의 나는 그것만으로 저 녀석을 여자아이로 착각하고 말았다. 지금도 떠올렸을 뿐인데 부끄럽다. 하지만 저 녀석은 그런 나에 어리둥절한 뒤, 킥킥 웃으면서 용서해주었다.

 

나는 너와 같은 남자야. 저기, 괜찮다면 나랑 친구가 되어줄래?”

 

그 시절의 그 녀석은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밝아, 인간관계에 벽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한 듯이 친구가 되었다.

 

나는 히나타 하지메야! 잘 부탁해, 코마에다!”

 

 

 

 

 

R이 끝나고, 교실 안에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부 활동에 서두르는 자, 돌아갈 준비에 힘쓰는 자, 책상을 맞대고 뭔가 소문에 꽃을 피우는 자, 다양하다.

나는 빨리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교실을 뒤로한다.

 

이 히나타! 오늘 같이 놀래?”

 

그렇게 나를 불러 세운 건 클래스메이트의 소우다이다.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 타나카라도 초대해.”

?! 왜 저 녀석 따위랑 놀아야 하냐고!”

, 네놈 따위가 이 이 몸과의 유희에 따라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좋다, 긴 이개를 가진 소형 마수에게 제물을 주는 역할을 너에게 하사해주마.”

시끄러워! 일본어로 말하라고!”

어머 타나카 씨! 사육 시설의 토끼 씨에게 먹이를 주시는 건가요?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

, 소니아 씨?!”

 

마찬가지로 클래스메이트의 타나카와 소니아가 대화에 끼어든다. 타나카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해독에 시간이 걸리지만 근본은 좋은 녀석이다. 그건 항상 목에 감겨있는 보라색의 스톨에서 얼굴을 내비치는 햄스터들의 친밀도 상태에서도 알 수 있다. 소니아는 그 작은 햄스터들을 마음에 들어 해, 주인인 타나카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담은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런 소니아에게 마음이 있는 소우다가 조금 불쌍한 입장에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지금 나에겐 우선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방치하기로 한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저 3명은 사이가 좋다.

교실을 나온 나는 바로 옆 교실을 들여다본다. 창가의 가장 뒷자리에 있는 목적의 녀석을 발견하고, 나는 그 녀석에게 달려갔다.

 

코마에다, 돌아가자.”

 

그렇게 말한 나를 올려다보는 이 녀석은, 5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욱더 예뻐진 얼굴로 생긋 미소지었다.

 

여전히 빠르네, 히나타 군. 그래도 딱히 억지로 나랑 같이 안 돌아가도 되는데?”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너랑 돌아가고 싶으니까 이렇게 데리러 온 거야.”

 

솔직하게 내 의사를 말해도, 코마에다는 이런이런 거리며 가방을 손에 들고 일어선다. 예전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좀 더 솔직하게 기뻐하고, 코마에다가 내민 손을 잡고 돌아갔던 적도 있다. 저학년 때의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내 집에서 자고 가기로 약속했잖아. 그럼 같이 돌아가는 게 편하지. 그대로 내 집에 오면 되니까 말이야.”

저기 히나타 군. 분명 오늘은 네 집에 신세를 진다고 약속했지만, 역시 맨손으로는 안 돼. 갈아입을 옷 같은 것도 챙겨야 하고.”

그럼 내가 도와줄게. 이제 불만 없지.”

 

코마에다는 조금 언짢은 얼굴을 하면서, 포기한 듯이 한숨을 토하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코마에다의 옆에 선다. 그대로 2명이 함께 하교했지만, 코마에다는 그동안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다.

 

저기 히나타 군, 역시 오늘 네 집에서 자는 건 관둘.”

안 돼.”

 

단호하게 단언한다. 그래도 아직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코마에다에게 정론을 말해서 들려주기도 했다.

 

오늘부터 네 부모님은 해외 출장이잖아. 네 부모님이 널 우리 집에 맡기는 건 이미 부모님끼리 정해진 일이야. 아직 초등학생인 너를 혼자 둘 순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코마에다가 우물거렸다. 논파해도 아직 떼쓰는 코마에다에게 더욱 다그친다기로 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네 부모님을 볼 낯이 없잖아. 우리 부모님 얼굴에 먹칠할 생각이냐. 아니면, 그렇게 나나 내 가족이 싫어?”

그렇지 않아! 히나타 군도 히나타 군의 부모님도, 엄청 좋은 사람들이야! 여기에 이사 오고 나서,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뭐야, 그럼 아무 문제 없네.”

 

우우, 코마에다가 분한 얼굴을 한다. 나도 딱히 코마에다를 괴롭히고 싶은 건 아니지만, 여기는 물러날 수 없는 곳이다. 그렇지 않으면 코마에다는 반드시 뭔가 이유를 붙여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한다.

 

코마에다가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게 된 계기는 2년 전, 우리가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 시절의 코마에다는 아직 솔직하게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얗고 중성적인 외모도 더불어, 주변에서는 마치 천사 같다고 칭찬받았다. 나는 그것을 듣고, 응응 크게 수긍하는 마음과 어딘가 치우친 마음에 고통받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예쁘고, 귀엽고, 상냥하다. 등에 하얀 날개가 자라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기는커녕 매우 어울리겠지. 하지만, 그런 코마에다를 과시하고 싶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로 해두고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자신 안에 싹튼 이 이상한 감정에 휘둘려지고 있던 나는 코마에다가 끌어안은 문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코마에다는 항상 어딘가 겸손한 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웃 아줌마에게 받은 걸 다 같이 나누자, 라는 이야기가 되었을 때, 코마에다는 반드시 난 됐으니까 너희끼리 나눠, 라고 한다. 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그네 쟁탈전이 되면 먼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처음에는 그냥 이 녀석은 싸우는 걸 싫어하는 상냥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것 같다.

 

이 정도의 불운이라면, 오히려 대환영이야!”

 

코마에다는 언제나 그렇게 말한다. 전혀 의미를 모르겠다. 어째서 불운 따위를 환영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묻자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한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너무 파고들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았기 때문에, 깊게 추궁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하지만, 코마에다의 말의 진의를 알게 되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쏴아쏴아 퍼붓는 빗속, 코마에다의 목소리만이 노이즈 섞인 말로 들렸다.

나는 어떻게 된 거지, 겨우 움직이는 고개를 코마에다 쪽으로 향하자, 진흙투성이가 된 코마에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는 시커먼 흙의 벽.

 

───그래, 코마에다가 비 때문에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지려 했다. 난 순간적으로 코마에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코마에다를 끌어안은 채로 공중에 떠등에 강한 충격을 받아내고 나서 기억이 날아가 있었다. 꽤 무모한 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살아 있고, 코마에다도 눈에 띄는 상처는 없는 것 같아서 다행으로 여긴다.

 

코마에다, 다쳤어?”

! 나 따위보다, 자신을 걱정하라고 히나타 군! 너야말로, 괜찮아?! , 나 따위를 감싼 거야.”

 

마지막 부분은 숨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였다. 코마에다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다만, 울고 있는 코마에다를 껴안아 주지 못하는 것만이 불만이었다. 몸 안이 아프고 도저히 움직여질 것 같지 않다. 평상시라면, 코마에다를 슬프게 할만한 건 내가 철저하게 배제했을 텐데. 코마에다는 내 손을 잡고 히나타 군, 히나타 군이라고 부르고 있다. 평소의 녀석이라면 곧바로 어른을 부르러 가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지금의 코마에다는 냉정함이 결여된 모양이다. 반쯤 미친 기색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진정해, 나는 괜찮다고 코마에다에게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를 잘 낼 수 없다. 시야가 희미해지고 의식도 몽롱해졌다. 이런 상태의 코마에다를 내버려 두다니, 왜 이렇게 한심한 거야.

의식을 놓기 전에, 나는 코마에다를 지킬 수 있었던 일을 실감하고 싶어서 그 손을 강하게 잡아 돌려줬다.

 

 

 

 

 

눈을 뜨자,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약품 냄새가 코에 닿는다.

여기는 어디일까. 시선을 옆으로 헤맸지만, 커튼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창문이 보였다. 다시 옆으로 움직이자 철 막대기가 있고, 그 막대기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철 막대기의 정체는 링거 폴대라는 것을 알았다. 링거 폴대에서 뻗은 관이 자신의 오른팔에 연결돼있다. 방을 빙 둘러본다. 아무래도 여기는 병원의 병실인 모양이다.

일어나려고 복근에 힘을 넣자, 터무니없는 아픔이 정수리를 찔렀다. 천천히 자유로운 왼팔을 환자복 안으로 찔러 넣자, 상반신이 붕대가 감겨 있었다. 거기서 간신히 자신이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기가 병원이라면, 우리는 살았다는 걸까. 코마에다가 무사하면 그걸로 좋지만.

 

자신이 이런 상태인데도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건 코마에다 뿐이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의 기억이 진흙투성이로 울어대는 소중한 소꿉친구였다. 어쩔 수 없잖아. 코마에다는 겉으로는 심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한 기가 세다. 울상을 짓다니 이 3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녀석이,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넋을 잃고 울고 있었으니까, 걱정하는 건 당연하겠지.

코마에다의 손을 잡고 있던 왼팔을 본다. 팔에 나른함과 조금 위화감이 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손바닥을 쥐거나 펴거나 하고, 코마에다의 손을 잡았던 감촉을 떠올린다. 그것은 꿈 따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코마에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한동안 천정을 보면서 생각 잠겨 있자,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라, 깨어났네. 어디 아픈 곳은 없니?”

 

방에 들어온 것은 젊은 간호사였다. 앞머리를 핀으로 고정하고, 옅게 칠한 화장이 깔끔하기도 해서 어울린다. 꽤 미인이다. 나는 어른인 여성에게 조금 두근거리면서 지시에 따랐다.

 

, , 딱히 아픈 곳은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체온 검사 시간이니까 열을 측정할게.”

 

옆에 체온계를 꽂는다.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뭐해,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기, 저랑 같이 있던 남자애는 어떻게 됐어요?”

아아, 그 아이는 눈에 띄는 외상도 없어서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어. 그 아이 면회 시간을 꽉 채울 때까지 항상 네 병문안을 하러 왔단다.”

 

일단 코마에다가 무사하다는 확증을 얻었기 때문에 안심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화로 약간 느낀 위화감에 대해서 추궁하기로 했다.

 

저기, 병문안이라니언제 왔나요?”

, 일주일 가까이 자고 있었어.”

일주일?!”

 

놀랐다. 설마 일주일씩이나 자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몸이 움직이기 어려웠던 건 부상 때문만이 아니라, 계속 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그 모습을 보면 이제 괜찮은 것 같네. 만약을 위해 나중에 검사가 있을 텐데, 한 달 더 입원하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 제대로 안정을 취해서, 그 친구를 안심 시켜 줘야지?”

 

삐삣 체온 검사 종료의 신호가 나고, 간호사는 방을 나가 버렸다. 일주일씩이나 자신이 자고 있었다니 지금도 믿을 수 없다. 일단 목이 말랐으므로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미네랄 워터를 손에 들었다. 목이 촉촉한 감각을 맛보며, 면회 시간은 몇 시부터일까, 하고 시계를 찾았다.

 

 

 

 

 

히나타 군, 이제 일어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검사에서도 아무 이상 없다고 했거든. 전신 타박상으로 끝나다니 럭키였다고.”

 

면회 시간이 됨과 동시에 온 코마에다는 나를 보자마자 눈썹을 팔자로 찌푸리며 달려왔다. 히나타 군, 히나타 군, 내 이름을 연호하는 모습에 또 울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잠시 후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마에다에게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도록 재촉한다. 리클라이닝 침대 덕분에 나는 편하게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어서 의자에 앉은 코마에다와 거의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넌 거의 상처 없었지?”

, 히나타 군을 이렇게 크게 다치게 했는데, 나만 거의 상처가 없다니, 말도 안 되지.”

뭐라는 거야, 상처가 없어서 무엇보다 다행이지.”

윽 그래도, 원래는 나 혼자 절벽에 떨어져서 다쳤을 텐데 히나타 군을 끌어들이고, 게다가 자신만 상처가 없다니.”

 

코마에다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 위의 손을 꽉 쥐고 있다. 설마, 내 상처를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일찌감치 오해를 풀어야 한다.

 

내가 마음대로 행동한 거잖아. 그것보단 너를 도울 생각이었는데 힘이 부족해서 함께 떨어졌을 뿐이고.”

아니야.”

 

코마에다의 맑은 목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운다. 조용한 병실에 마치 파문처럼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코마에다를 바라보자 무엇인가 각오를 굳힌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틀렸어, 히나타 군.”

, 가 틀렸는데.”

히나타 군은 내 행운에 말려든 거야.”

 

절벽에서 떨어졌던 게 행운? 나는 코마에다가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행운은 보통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사용하는 거잖아. 말하는 게 엉망진창이지 않나.

그러고 나서 코마에다의 짧고도 긴 행운에 좌지우지되었던 인생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말하길, 코마에다는 절대적인 행운이 자신에게 모이는 대신에 그 행운과 동등한 불운도 오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작은 일이었다고 한다. 코마에다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망가져 버리면 그 대신에 새로운 장난감을 아버지가 사 와주는 형태로. 그러나 그 행운 불운의 기울기 폭은 서서히 커져, 근래에는 코마에다의 애견과 조부모에게까지 그 피해가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마다, 현상(懸賞)으로 해외여행이 당첨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는 행운이 주어진 것이라고.

 

우연 아니야? 그런 건, 우연히 코마에다의 주위에서 그런 일이 연달아 일어났을 뿐이고.”

우연이 아니야. 우연치고는 너무 번번이 일어나. 나는 지금까지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행운과 불운을 마주해왔어. 우연은, 몇 차례까지는 우연, 몇 차례부터는 필연이 되잖아?”

그렇다 해도네 탓이 아니잖아.”

내 탓이야.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실제로 내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 그리고 그 행운의 혜택은 언제나 나에게만 초래되는 거야.”

 

코마에다의 얼굴을 본다.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표정이 아니다.

 

이런 걸, 갑자기 말해도 믿을 수 없지? 하지만 말이야, 너는 벌써 내 행운의 희생이 됐고, 그 혜택을 나는 이미 받고 있어.”

 

코마에다는 일어서서, 병실에 가져온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목적의 물건을 찾아내면, 그것을 내 앞에 내민다. 옅은 청색의 파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고, 즉시 안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중에 파일로 정리된 것은 신문 기사였다. 내용은 현지의 초등학생이 등산 도중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추락 현장에서 역사적 발견이 되는 유물이 발견됐다고 사고의 기술(記述)보다 몇 배나 큰 제목으로 쓰여 있었다.

 

이거.”

그래, 우리 일이야. 그 후 어른들이 절벽 밑으로 수색하러 와줬는데, 그때 우연히, 우리가 미끄러졌을 때 깎인 절벽 측면에서 빛나는 걸 발견했어. 무려 그것이 조몬시대[각주:1]인지 야요이시대[각주:2]인지 그때 지층에 묻혔는데, 당시의 기술로는 도저히 만들어 내지 못할 것 같은 금속 그릇이었으니까 신문에서는 떠들썩해. 나는 그 역사적 발견자로서 후세까지 이름이 남을지도 모른다면서.”

 

담담한 어조로 말한 코마에다는 도저히 그런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냉정하다. 그런 것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말할 뿐이다. 이윽고 코마에다는 양손으로 자신을 껴안고, 떨기 시작했다. 안색은 새파란데, 눈만이 반짝하고 둔탁한 빛을 품고 있다.

 

히나타 군을 이렇게 심하게 다치게 하고, 그런 주제에 나는 거의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오고. 게다가 나만 이런 역사적 발견에 입회한 인물로서 떠받들어지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해! 나는, 히나타 군을 제물로 하고, 나만 이득을 보고 있는. 최저의 인간이야. 최저이자 최악이고 열악해서정말 쓰레기인 인간이야.”

코마에다.”

미안해, 히나타 군.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나를 원하는 만큼 때리고, 매도해도 상관없어. 히나타 군이 바라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코마에다는 나에게 다시 향해, 눈을 감았다.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 일에 나는 일찍이 없을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

내가 코마에다를 감쌌던 이유는 코마에다의 행운 탓이 아니다. 틀림없는 나 자신의 의지다. 그리고 코마에다가 무사한 건 내가 코마에다를 지킬 수 있다는 증거로, 명예로워했으면 했지 원망하다니 착각이다. 역사적인 발견이 어떻다든가, 그것이야말로 어찌 되든 좋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내가 코마에다를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얼마나 이 녀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간단하게 나의 소중한 것을 내밀어 오고 있다. 그 일에, 정말로 화가 났다.

 

코마에다.”

 

흠칫 코마에다의 어깨가 튀었다. 아직 눈꺼풀은 닫힌 채로, 내 규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괜찮겠지, 네가 그렇게 나한테 속죄하고 싶다면, 시켜줄게.

그야말로, 일생을 걸쳐서.

나는 코마에다의 뺨에 오른손을 갖다 댔다. 조금 긴장한 모습이 전해지지만 코마에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입을 다물고 내가 원하는 대로 따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 온순한 모습에, 어두컴컴한 기쁨을 느꼈다.

 

, 뭐든지 한다고 했지? 그럼.”

 

이어진 내 말에, 코마에다는 눈을 크게 떴다.

 

 

 

 

 

코마에다, 우리 집에 도착했어. 짐 가지러 가는 거지? 먼저 네 집으로 갈까.”

, 히나타 군은 먼저 가고 있어. 준비가 끝나면 히나타 군의 집에 갈게.”

안 돼. 못 믿어. 도와준댔잖아. , 빨리.”

 

코마에다를 재촉하자 마지못해 하다는 느낌으로 코마에다의 집으로 이동해,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냈다. 철컥 소리가 나고 자물쇠가 해제된다. 코마에다의 집은 하얀 북유럽식 집으로, 비교적 동양풍인 내 집과 비교하면 화려하게 느껴진다. 현관 앞은 우드식으로 되어 있고, 관엽 식물이 이곳저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코마에다의 부모님은 바빠서, 코마에다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이 식물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방 창문으로 코마에다의 집을 보면, 자주 코마에다가 작은 물뿌리개를 쥐고 식물을 돌보고 있는 게 보인다.

마음대로 남의 집임에도 사양 않고 코마에다의 집에 들어와서, 코마에다의 방을 목표로 한다. 코마에다의 집은 물건이 적어서 정말 사람이 사는 건지 불안하지만, 코마에다의 방은 그 으뜸가는 것이다. 새하얀 무지의 벽지 방에 침대와 책상과 책장. 그것밖에 없다. 이 나이대의 소년이 흥미를 느낄듯한 스포츠용품도, 공룡 등의 장식물도, 장난감도, 텔레비전조차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존재가 옅고 덧없는 분위기를 가진 코마에다의 방에 어울린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룻바닥의 바닥에 걸터앉아, 가방을 옆에 둔다.

 

“1년의 절반은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갈아입을 옷 같은 건 내 방에 두면 되는데.”

그럴 수는 없어. 가뜩이나 폐를 끼치고 있는데, 그렇게 뻔뻔스럽게 굴 순 없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코마에다는 요즘 초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남에게 신경을 쓴다. 우리 집에서 식사하는 것도 단란한 가족에게 방해가 된다든가 말하고 사양하는 기색을 보인다. 내가 억지로 코마에다를 식탁에 데리고 자리에 앉혀야 겨우 식사에 손을 대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뒷정리를 끝까지 스스로 한다며 듣지 않는다. 목욕도 마지막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세탁물을 맡기지도 않는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거기에 있던 흔적을 사라지게 하는 것처럼, 전부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다. 내 부모님은 그런 코마에다를 엄청나게 귀여워하고 있고, 착한 아이이지만 좀 더 응석 부려도 괜찮은데, 같은 걸 말하기도 한다.

코마에다는 벽장을 열자 옷을 몇 벌 꺼내서, 큰 가방 안에 넣어 간다. 그것이 끝나면 이번에는 부엌에 가서, 냉장고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뭐야 그게?”

근처에 있는 제과점의 슈크림이야. 히나타 군의 집에 방문할 때 이거 가져가래.”

그렇구나, 그럼 빨리 돌아가서 그거 먹자!”

 

나는 코마에다의 짐이 들어간 가방을 빼앗아, 비어 있는 쪽의 손으로 코마에다의 팔을 잡았다. 코마에다는 어쩔 수 없네 라고 말하는 얼굴이다. 가끔 어린애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솔직히 별로지만, 지금은 말하지 말자. 확실히 내 쪽이 생일은 느리지만 단 7개월하고도 조금의 차이다. 그것만으로 코마에다에게 형 얼굴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코마에다의 집을 나와, 제대로 문을 잠근다. 그리고 바로 내 집으로 향했다.


부디, 편안한 잠을

 

 

 

지금도 꿈을 꾼다.

빗속에서 발이 미끄러져, 천천히 떨어지는 나.

또냐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행운에 언제나 좌지우지됐으니까.

이번엔 그냥으로는 안 끝나겠네, 냉정한 마음으로 눈꺼풀을 닫으려고 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나를 감싸는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행운이다.

하지만 그 행운은 내게 있어선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마음에 든 장난감이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 날의 밤, 아버지가 최신 모델의 고가 장난감을 사 와주셨다. 주위 사람은 잘됐네, 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기 때문에, 그것에 화답하듯 나는 웃는 얼굴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가의 장난감보다도,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망가진 장난감 쪽이 훨씬 중요했다.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하면 새로운 장난감을 사 오신 아버지와 내가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웃고 계신 어머니에게 실례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 더러워진 골판지 안에서 떨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곧바로 어머니에게 키워도 되는지 물어봤지만, 당시 살고 있던 맨션은 애완동물 금지였기 때문에 키울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강아지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유치원에 갈 때는 꼭 몰래 우유를 가지고, 강아지용 그릇에 부어 골판지 안에 넣었다. 강아지는 무척 배가 고팠는지 곧바로 혀를 내밀고 할짝할짝 우유를 핥았다. 그것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평소대로 유치원에서 돌아가는 길에 강아지의 모습을 보러 가니, 근처의 초등학생이 골판지 안에서 강아지를 집어서 꺼내고 있었다. 그 난폭한 행동에 상대가 연상이라는 것도 잊고 나는 그만하라고 호소했다. 초등학생은 처음엔 멍하니 있었지만, 상대가 연하인 나라고 눈치채고 바보 취급하는 미소를 지으며 장난의 화살을 나에게 향했다. 머리카락이나 스모킹이 당겨지고, 조금 아픈 꼴을 봤지만, 이걸로 강아지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도망치기는커녕 나를 괴롭히는 초등학생을 방해하려고 양말에 물고 늘어졌다. 초등학생은 깜짝 놀랐는지 물린 발을 마음껏 휘둘러서 강아지가 공중에 내던져졌다. , 생각했을 때는 강아지는 벌써 도로 한가운데에 떨어졌고, 다가오는 트럭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서 있었다.

한참 뒤에 할머니의 집으로 불렸다. 할머니의 집에 가자, 큰 골든레트리버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강아지를 잃고 의기소침하고 있던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 할머니의 집에서 기르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감사해요, 할머니에게 예를 말하고 골든레트리버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에 그린 건 그 더러운 잡종 강아지였다.

 

나는 행운이다.

내 일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말했다.

앞에 찾아오는 불운은, 후의 행운을 위한 포석이었다고.

그러니까 나는, 행운이다.

 

 

 

 

 

히나타 군, 욕실 비었어.”

 

잡지를 읽고 있는 히나타 군의 얼굴이 이쪽을 향한다. 탁 잡지를 덮고 나에게 손짓했다. 옆에 앉아, 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히나타 군의 지시대로 하자, 어깨에 걸쳤던 수건을 빼앗겼다.

 

, 머리 제대로 닦으라고 항상 말했잖아.”

, 아파 히나타 군.”

 

박박 힘으로 머리카락을 닦인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뭔가 귀찮아져서 얌전히 있기로 했다. 그러자 히나타 군의 손놀림도 상냥한 것이 되었다. 풀솜에 감싸인 것 같아, 어쩐지 간지럽다.

 

네 머리카락, 젖으면 다 죽네.”

곱슬머리이니까아침엔 매일 큰일이야. 장마 시기에는 정말 학교에 안 가고 싶어질 만큼 거울이랑 눈싸움하니까.”

흐음.”

 

, 모르는구나. 히나타 군은 직모니까, 안테나와 앞머리 일부를 제외.

어느 정도 수분을 다 빨아 들었는지, 간신히 히나타 군이 놓아줬다. 아직 아주 조금 젖어 있지만,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히나타 군 뭐 읽고 있어?”

? 이거.”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내밀어 온 것은 모 소년 만화 잡지였다. 그야말로 히어로 같은 느낌의 소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히나타 군, 이런 거 좋아하지.”

뭐야, 남자가 히어로를 동경하는 건 당연하잖아?”

난 별로 안 그런데.”

너한테 있어서 희망이 세상 소년들의 히어로 같은 거야.”

 

과연,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다. 모두 히어로라는 이름의 희망에 동경을 품고 있었구나!

 

그치만 말이야, 만화에 실려 있는 히어로는 조금 얼빠진 점도 있잖아.”

그런 점이 좋은 거야, 친근감이 있으니까.”

에엥? 희망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평범한 사람에겐 칭찬하는 것 밖에 허락되지 않는 존재인데, 뭘 멋대로 친근감을 가지려 하는 거야. 희망에 대한 모욕이야.”

네가 말하는 희망은 신인가 뭔가야?”

설마, 나는 신같이 애매한 건 믿지 않아. 단지, 희망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고 죽는 것도 서슴지 않을 거야.”

웃지 못할 농담이야.”

농담이 아니니까.”

 

, 또 히나타 군이 기분 나빠한다. 내가 희망 이야기를 하면 히나타 군은 마지막에는 항상 이런 얼굴에 되어 버린다. 나의 희망에 대한 열정은 세간에서는 꽤나 벗어나 있다는 자각은 있다. 고칠 생각은 없지만.

왜냐하면, 희망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긍정적인 의지와 재능에 의해 태어나는, 나 따위가 숭배해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라면, 나 따위의 행운이 접근해도, 모든 것의 지배자로서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지!

 

만약에, 만약 내가 너의 희망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나는 네가 죽기를 원하지 않아.”

아핫, 히나타 군은 희망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거야? 히나타 군에게는 그 소질이 있어. 그것을 소중하게 가꿔서, 언젠가 나를 발판으로 삼고 희망이 되어 주면 기쁠거야.”

그럼 의미가 없잖아.”

 

히나타 군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히나타 군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의 표지가 구겨졌다. 희망이 되는 것에 의미가 없을 리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히나타 군과 희망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내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히나타 군이 해석을 요구하거나 반론하거나 한다. , 결론이 나오지 않는 회의는 언제나 평행선이지만.

 

나는 네 옆에서 희망으로서 계속 살고 싶은 거야.”

그건 무리가 아닐까. 내 재능이 어떤 성질인지, 너는 잘 알고 있지? 나와 함께 살 거라니 난이도 짓궂음으로는 안 넘어가.”

그런가, 보람 있네.”

…….”

 

히나타 군의 시선은 다시 잡지에 떨어졌다. 히나타 군은 은근히 M이지. 그렇게 말하면 너 정도는 아니라고 돌아오니까 말하지 않지만.

히나타 군이 이런 식으로 거침없는 말투를 하게 된 건, 그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다. 나는 그 사고로 히나타 군과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뭐가 히나타 군에게 불을 붙인 건지, 예전보다 더 나에게 신경 쓰게 되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기도 하고, 곤란한 일이기도 했다. 나의 행운은 나의 소중한 것을 대가로 한다. 히나타 군은 나의 소중한 친구다. 그리고 히나타 군은 이미 대가로서 내 행운에 주시되고 말았다. 저번에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지만, 다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부모님과 히나타 군이다. 정말로 중요한 존재라면, 지금 손을 떼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아서, 히나타 군에게 답을 맡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랑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니까 언제 내 손을 놓아도 상관없다고.

 

코마에다, 그때의 약속 기억하고 있지?”

 

약속.

물론 기억하고 있다.

새하얀 병실에서 나눈, 둘만의 약속.

 

기억하고 있어.”

 

그럼 괜찮아, 그러면서 히나타 군은 잡지로 방향을 바꾼다.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난다.

약속이라니 귀여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용 자체는, 확실히 약속의 범위로 정답이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나에게 영원히 구속하는 저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밤 열시. 아이는 이제 잘 시간이다.

히나타 군의 집에서는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딱 정해져 있어, 규칙적인 생활을 보내게 된다. 나도 잘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또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저기 히나타 군, 나 같은 쓰레기에게 이불을 빌려주고 싶지 않다는 건 알지만,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이불만이라도 빌려주지 않을래? 그러면 난 바닥에서, 아니 복도에서 잘게.”

누가 바닥에 재우겠어. 나는 같이 침대에서 자면 이불을 안 깔아도 된다고 말하는 거야.”

 

무려 히나타 군은 나랑 같은 침대에서 자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침대에 쓰레기를 반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건 그냥 넘길 수 없네. 침대는 사람이 제일 무방비하게 되는 장소로, 사람의 활동 시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청결감이나 안정이 필요한 장소이기도 해. 거기에 나라는 오물을 처넣다니 너 제정신이야?”

변함없는 자학으로 충분하지만 논파할게. 넌 방금 내 집의 목욕탕에 들어가, 나랑 같은 비누샴푸로 몸을 씻었어. 게다가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건 숙박용으로 빨아둔 파자마. 어디가 오물이라는 거야. 네가 오물이라면 같은 목욕탕에 들어간 나도 오물인 셈인데.”

그건 틀렸어 히나타 군! 사람은 항상 신진대사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어. 이건 개체 차이가 있어서, 세포 레벨로 폐수도 새파래질 오물 덩어리인 나는 항상 피부 안쪽에서 그걸 배출해. 목욕으로 일시적으로 흘러내도, 나라고 하는 쓰레기를 근본부터 세척하다니 불가능한 거야! 어때? 그래도 나랑 같이 잘 수 있겠어?”

차례차례 잘도 헛소리하네.”

 

히나타 군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히나타 군. 쓰레기 나부랭이에게도 쓰레기 나부랭이 나름의 생각이 있으니까. 히나타 군의 편안한 잠은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 돼.

히나타 군은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활동 한계인 것 같다. 후후, 이 승부 내 승리인 것 같네. 승리를 예감하고 긴장을 풀던 나에게, 부드러운 충격이 덮쳤다.

 

눈앞에 히나타 군의 머리가 보였다. 확실히 내 쪽이 빨리 태어난 것도 있어서 조금 키는 크지만, 히나타 군의 정수리를 내려다볼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무엇보다, 복부에 위화감이 있다. 뭔가가 휘감고 있는 것 같다. 이어서, 목덜미에 입김이 닿는다.

 

?!”

더럽기는커녕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나. 내 집 비누 향기랑 너희 집 유연제 향기랑뭐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냄새.”

 

스읍, 또다시 냄새를 맡아진다. 나는 아마 새빨갛게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진다니 이런 건 너무 부끄럽다.

마음이 당황해서 눈치 못 챘지만,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히나타 군에게 태클 당해서 침대로 떨어지고, 그대로 허리를 속박당한 것 같다. 내 가슴팍에 히나타 군의 머리가 파묻혀 있고, 기분 좋은 장소를 찾고 있는지 머리를 이리저리 떠넘기고 있다. 히나타 군의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있어서 간지럽다. 잠시 관찰하고 있자 새근새근 편한 숨소리가 들려 와서

 

, 기다려 히나타 군! 설마 이 상태로 잘려고?!”

겨우 잠들뻔했는데.”

아아, 일으켜서 미안해? 하지만 히나타 군도 이대로는 자기 힘들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날 놔주지 않을래? 그러면 바로 또 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어.”

거절할게. 너는 나의 안고 자는 베개가 되라고.”

 

안고 자는 베개라니. 이런 빈곤한 몸을 안아도 기분 나쁠 텐데.

계속해서 반박하려고 하자, 꼬옥 복부에 감긴 팔이 죄여진다. 이제 입 다물라는 거겠지. 나는 히나타 군을 위해서 말하는 건데.

이것저것 타개책을 생각하고 있자, 본격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 나는 히나타 군 너의 언동에 언제나 휘둘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단념하는 형태가 되는 일이 많지만, 나 자신은 히나타 군에겐 무른 부분이 있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눈꺼풀이 저절로 떨어진다. 나도 한계가 가까운 것 같다. 눈앞에 있는 히나타 군의 머리를 감싸듯이 팔을 당겨, 오랜만에 느끼는 피부에 안도의 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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