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ㅇ
[단간/히코마]Re:Start 본문
캡션:
○이 이야기는, 2의 게임 본편 후의 이야기입니다. 게임 클리어까지의 스포일러가 가차 없이 포함되기 때문에 게임 미 플레이・미 클리어하신 분은 주의해주세요.
●본편 최종 멤버+α과 전작 멤버가 몇 명이, 본편 중에 나오지 않은 캐릭터도 포함해서 나옵니다. 전작을 모르는 분은 조금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설정들에 대해서는 본편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억지로 만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이상한 부분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네이밍 센스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히나타 군은, 코마에다 군의 희망의 조각을 컴플리트한 상태입니다.
0.
출렁, 출렁.
불규칙한 흔들림이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흔들, 흔들흔들.
그때마다 몸도 흔들린다.
전후좌우로 휘청휘청하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에 농락당하듯 흔들려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전혀 흔들지 않고, 그저 내가 느끼고 있었던 건──
아아, 이곳은──따분하다.
벌써 몇 시간, 이렇게 배에 흔들리고 있지만.
떠오르는 한의 혼자서 할 수 있는 심심풀이도 전부 하고 말았다. 지금이 몇 시인가, 이 방은 시계도 없어서 모르겠다. 오히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조차도.
모른다──그 사실이 뼛속까지 쑤시는 따분함이라는 벌레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어두컴컴한 방에는 작은 창문 하나뿐.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다.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경치는 조금 전부터 전혀 변하지 않고, 창밖에는 흐린 하늘과 어두운색의 바다만 있을 뿐이어서 보고 있어봤자 기분전환도 안 된다.
그렇다고 방 안에 눈길을 옮겨봐도, 아마 평소에는 창고로 사용되는 곳인지, 우선 방 자체에 장식류는 일절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본래의 역할도 잊은 것처럼 어떠한 짐도 놓여 있지 않다.
즉, 볼만한 건 이 방에는 거의 없어서.
오로지 이곳에 있는 것은 절망뿐.
고쳐 말하면 절망에 빠진 사람뿐.
이곳에 있는 건 나, 그리고 또 한 사람.
그 다른 한 명은 방의 대각선상에 있고, 내가 여기에 왔을 때부터 쭉 벽에서 웅크려있긴 하나 고개를 들어 올리고 눈은 뜨고 있어, 그렇지만 그 눈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눈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따분함은 절망적으로 따분하다.
차라리 정면의 그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따분함도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 따위가 그에게 말을 건네도 될지 망설였다.
왜냐면 그는 척 보기에도 나 같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녀석 따위랑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 그것을 말로 표현하자면──
──흔들리지 않고, 오직 거기에 있을 뿐인, 조용한 절망.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데도 그의 존재를 의식한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거렸다.
그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보기만 해도 질리지 않는다. 따분함조차 달랠 수 있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쭉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보기만 했는데 금방 질려 버렸다.
또, 따분함이라는 벌레가 쑤시기 시작한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무시당해도 어차피 이제 익숙하니까.
아까까지 주저했었던 건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서 마음대로 그렇게 정하고,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
말을 걸자, 반응한 건지 그 눈이 움직였다. 안구만 움직일 뿐이지만 잠깐이라도 관심을 가져줬다는 사실을, 무시되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건 붉은, 발그스름한, 눈이다.
걸쭉한 피색처럼, 하지만 탁함이 없다.
보석처럼 빛나 보여, 그러나 단순한 돌멩이처럼 무기질밖에 없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신기한 색조 안에서 지금은 딱 한줄기 관심의 빛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로 잠시뿐. 두세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에 그의 눈에서 깔끔하게 관심의 빛은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시시하군』이라고. 그렇게 말할 뿐, 그는 나에게 어떤 관심도 향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별로 상관없다. 나 따위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절망 중에서도 희귀했으니까.
같은 절망에게도 멸시의 눈으로 바라봐지는 자신을 제대로 상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이미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저, 그 후에 그가 나를 향한 눈만이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눈으로 바라봐졌다.
호기 호색 욕망 우월 조롱 경멸 모멸 혐오 증오 거부 거절 실망, 그리고 무엇보다도──절망.
하지만 눈앞의 그는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해도, 그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한편으로, 나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시해하는 것 같아도 똑바로 이쪽을 보고 있고 말을 걸면 반응을 보인다. 이상하게 성실한 것이다.
아아, 재미있는 사람이네.
그가 나에게 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감상을 품는다.
그 무표정의 아래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는, 무엇을 저지를지 모르겠는 부분도 훌륭하게 절망적이고 흥미로웠다. 분명 이 점잖은 무표정 그대로 많은 절망을 태어나게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 아마 그는 다른, 절망에 매료되어 절망에 받아들여지고 절망을 사랑하고 절망에 사랑받고 절망에 절망하고 절망을 희망하고 절망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시시함. 그것이 그가 절망에 물든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이유임이 틀림없다.
아아, 그건 얼마나 절망적일까. 그에겐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다. 그래서 절망에 빠졌다니!
그리고 그런 아무것도 없는 존재일 터인데, 왠지 끌리고 말았다.
그는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큰 절망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데도──그래서일까?──어째서인지, 나에게 큰 희망을 기대하게 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절망을 희망하는 그 여자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절망.
그는 특별하다고, 그렇게 느꼈다.
그에 대한 흥미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끌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아, 가능하다면 또 만나고 싶네.
만나다니, 그런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 약간의 시간을 같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내 안에서 커다란 존재가 되고 있었다.
──이 왼손 이상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만난 건지도 모른다.
기세로, 그런 예감마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곧 사라져 갔다.
──그런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날 리도 없나.
그런 일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듯이 왼손이 아프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그런 자신에게 혼자 웃어도, 그는 역시 나에게 아주 작은 관심 하나도 주지 않았다.
순간 떠오른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어, 나는 다시 입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댔다.
아아, 하지만 이 절망은 분명 어딘가에서 희망에 연결되어 갈 것이다.
그래,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향하는 그 섬으로.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 들려오는 것은, 그저, 반복되는 파도 소리.
그리고 작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흐린 하늘과 어두운색의 바다와 서서히 다가오는 작은 섬의 모습.
아아, 저기에서 도대체 어떤 절망이──그리고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고양된다. 그 기대에, 불안에, 희망에, 절망에, 가슴이 채워져 뜨거워진다. 따분한 건 이제 어디론가 날아갔다.
절망과 희망. 내가 정말로 바라고 있는 것은 그 중 어느 쪽인가. 과연 자신이 정말로 뭔가를 바라고 있는지조차도, 나는 이제, 모른다.
단지, 엉망으로 뒤섞인 예감에 가슴이 뛰어 눈을 감고 잠시 파도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것이, 도착하기 30분 전의 일.
그 섬에서 무엇이 기다리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어떤 절망이.
어떤 희망이.
──어떤 미래가 거기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1.
그날 밤, 쿠즈류 후유히코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자지 못하고 있었다.
재버워크섬은 상하의 섬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건물 안은 청정기의 효과가 있어서 항상 쾌적한 기온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잠들 수 없는 밤은 있다. 오늘도 그런 밤이라고, 단념한 쿠즈류는 일어나, 방을 나왔다. 식당에서 물이라도 마실까 하고 복도를 걷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그 도중, 지나가던 방 앞에서 발을 멈춘다.
문과 바닥과의 틈새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또냐, 눈썹을 찡그리면서 쿠즈류는 그 문을 연다.
“히나타, 너 아직도 하는 거냐. 이제 12시 넘었다고.”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조명의 복도와는 달리, 거기는 인공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들려오는 것은 가동되는 컴퓨터 소리, 그리고 키보드를 치는 소리.
그리고 그 중간에 예상했던 대로의 모습이 있었다.
“오, 쿠즈류. 아직 일어나 있었네.”
큰 컴퓨터 앞에 앉은 히나타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돌아본다. 그 얼굴에는 피로의 색이 들여다보였다.
“아직 일어나 있었네, 가 아니라고, 정말.”
투덜대면서 다가간 쿠즈류는 그 뒤통수를 가볍게 찌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곧바로 입을 삐죽이고 눈을 돌렸다.
세세한 알파벳 나열은 무언가의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논문의 일종인지, 애초에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쿠즈류에게는 난해한 암호문밖에 안 돼서,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늦었다고. 다음은 내일로 미루고 얼른 자. 몸이 망가져도, 이 섬에는 의사는 없으니깐 말이야.”
“괜찮아. 알아서 진단할 수 있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고.”
“아, 야앗, 하지 마!”
쿠즈류가 그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자, 히나타는 아파하는 척을 했다. 그리고 이마를 누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쿠즈류. 이 페이지만 대충 훑어보고 나면 제대로 쉴게.”
“그러냐.”
그것을 들은 쿠즈류는 일단 발길을 돌리려고, 그러나 재차 생각한 듯 발을 멈췄다. 앞으로 돌아선 히나타는 그 기척을 등으로 느끼고, 어깨를 으쓱인다.
“뭐야, 안 자도 돼?”
“켁, 어차피 자도 키는 옛날에 멈췄어.”
“……아니, 그런 말은 안 했는데.”
그러나 실제로 쿠즈류의 키는 키보가미네 학원 입학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콤플렉스였던 동안도 변함없어서 지금도 중학생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귀여운 외모는 일부분일 뿐,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있었다.
오른쪽 눈 위를 덮은, 용의 문장이 들어간 요란한 안대. 그 아래는 파여있다. “저쪽”에서는 베어져서 잃은 그의 오른쪽 눈은 “이쪽”에서는 그 자신이 도려냈던 것 같다.
하지만 외모는 풋풋해도 그의 관록은 야쿠자라 해도 충분했고, 어색할 거라 생각되는 안대조차, 『초고교급 야쿠자』인 그가 쓰고 있으니, 상당히 있어 보인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수만 구성원을 통괄하는 우두머리라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위압감도, 이 동료의 앞에서는 충분히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다. 상쇄되고 소진되어 상태가 이상하다.
어째서냐면 히나타는──그리고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쿠즈류에게 있어서 부하 따위가 아니라 대등한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쿠즈류는 그에게 어떤 명령을 할 수 없다. 지금도 그저 히나타 근처에 의자를 끌어와서 털썩 앉을 뿐이었다.
“쿠즈류?”
“기다려 줄 테니까 빨리 끝내. 난 잠 오거든.”
“……알았어.”
“빨리하라고.”
“네네.”
완곡한 배려를 받아내고, 히나타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쿠즈류는 팔걸이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쿠즈류는 원래 사람을 모아서 쓰는 위치이며, 스스로 움직이는 위치가 아니다. 전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일은 있어도, 일상에서 잡무에 신경을 쓰는 일은 없었고, 지금 히나타가 작업하는 전문적인 두뇌 작업에는 맞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적재적소, 그런 말이 얄밉지만, 쿠즈류에겐 지금 여기서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저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다. 히나타가 무리를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그것을 안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여기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다. 쿠즈류의 얼굴에서 그런 의지를 읽어낸 히나타는 작게 웃고, 다시 모니터에 비치는 자료에 눈을 주었다.
히나타 일행이 계획된 살육 수학여행 생활──바이러스에 침범된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지, 벌써 며칠이 지났을까.
졸업도 낙제도 아닌 제3의 선택, 강제 셧다운이라는 결말이 선택된 프로그램에서 처음에 눈을 뜬 건 히나타였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무겁다고 느낀 것은 꿈자리의 권태감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대로 놔뒀던 긴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눈앞의 녹색 반투명한 유리판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어색한 것이어서, 하지만 그 한편, 익숙하다고도 느끼는 자신에게 당황했다.
방해되는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몸을 일으켜, 열린 캡슐의 문에서 얼굴을 내민 히나타가 본 것은 원을 그리도록 같은 간격으로 늘어선 캡슐과 그것을 중앙에서 다스리는 큰 메인 컴퓨터.
본 기억이 없어──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히나타는 자신이 이 장소에 대한 기억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왜 온 것인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차례차례로 떠오르는 그것들은 프로그램 안에서는 빼앗겼던 기억. 『자신이 아닌 자신』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히나타 하지메』의 기억과는 상반되는 부분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에 의한 혼란은 적지 않았다.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되살아나고, 머리가 부서질 것 같고, 자아가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고, 그래도 어떻게든 정합시키려고 하지만 정보로 가득한 머릿속은 이젠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기어코 머리를 싸매고 웅크렸다. 그때, 조심스럽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히나타 군, 이지?”
그렇게 불려, 혼란에 찬 머릿속에 스르르 빛이 비친 것처럼 느껴져다.
반응하고 얼굴을 들자, 그곳에는 작은 청년이 있었다.
그의 모습은 확실히 본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의 안에서도 밖의 세계에서도, 그다지 변화가 없는 그 모습을 향해,
“──아아. 나는────히나타 하지메야.”
그래, 제대로 수긍해 보인 히나타에게 말을 걸어 온 청년──나에기 마코토는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 후, 히나타를 잇듯이 쿠즈류, 소우다, 오와리, 그리고 소니아, 프로그램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멤버들도 차례차례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뜬 다섯 명이 그 후 곧바로 아무렇지 않게 현재 상황에 적응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깨자마자 당연한 것처럼 혼란이 일어났었다.
본래라면 신세계 프로그램을 하는 자는 눈을 떴을 때 프로그램에서의 기억을, 인격을 덮어 눈을 뜰 터였다. 그러나 강제 셧다운을 선택한 것에 의해 그 덮어쓰기는 행해지지 않고, 프로그램 안에서의 기억은 모두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눈을 뜬 다섯 명에게서는 프로그램 안에서 보낸 날들의 기억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한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현실성을 가지고 그들의 심경에 확실한 영향을 주고 있어, 그것 때문에 그들은 크게 당황하게 한 것이다.
여하튼 프로그램 안에서는 현실 세계에서의 몇 년분의 기억을 빼앗기고,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한 시점의 기억과 모습으로 지내왔는데 현실로 돌아가니 빼앗겼던 기억이 돌아와, 모습이 지나간 세월에 맞춰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되찾은 몇 년 사이에 히나타 일행은 전원, 절망으로 물들어 있던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깨어난 것과 동시에, 그들은 현재 세계의 절망적인 상황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절망적인 행위의 기억도, 자신들이 안고 있던 절망적인 감정의 기억도, 모든 것을 되찾았다.
거기에, 그런 모든 것을 잊고 지낸 신세계 프로그램에서의 기억이 더해서 쓰인 것이다, 혼란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프로그램을 거듭함으로써 절망에 빠지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에 눈을 뜬 그들은 이젠 절망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괴로운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절망에서 깨어나도, 자신이 절망을 낳았다는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벌인 절망적인 행위를 떠올리면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다시 절망에 기울기 시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 일행은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절망을 짊어진 동료들이 있다. 지금까지 동료들과 길러온 확실한 인연이, 자신들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모두가 결의한 기억이 있는 한, 그것은 결코 절망에 지지 않는다.
미래를 만드는 결의와 함께 눈을 뜬 그들이 다시 원래의 절망 잔당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지금은 잠들어있는 다른 동료들이 깨기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해, 섬에 머물고 있다.
그런 히나타 일행의 모습은 그들을 지켜보는 세 사람을 안도시키고 있었다.
섬 안, 유일하다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건물의 중심에 그 방은 있다.
프로그램─신세계 프로그램을 위한 방.
거기에 늘어선 캡슐 중 열 개는 아직 뚜껑이 닫힌 채. 프로그램 안에서 목숨을 잃은 열 명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모노쿠마가 말했던 것처럼, 계속 아직도 자고 있다.
프로그램 안에서 사망한 사람은 그 리얼리티로 뇌가 “자신은 죽었다”고 인식해버려, 실제로 활동을 그만둔다──그것은 자신들을 절망시키기 위한 단순한 위협으로, 거짓말이 아닐까, 안고 있던 기대는 시원스럽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몸은 아직 살아 있다. 그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기서 깨어난 히나타 일행은 모두 없어진다고 말했던 프로그램 안의 기억을 단편이라도 가지고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깨어날 수 없다고 한 그들이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깨어난다는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최근에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멤버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깨어난 멤버의 일과가 되고 있었다.
계속 말을 걸고 있으면 언젠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냐는 소원을 담아, 근황이나 추억 이야기, 때로는 비밀 이야기를 빨리 안 일어나면 모두에게 까발릴 거라며, 웃긴다는 듯이 말을 걸고 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쿠즈류는 페코야마에게 있는 일이 많았다. 오와리는 니다이, 소니아는 타나카가 있는 곳에.
그리고 히나타 자신은──코마에다의 캡슐과 마주 보는 일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상대의 기상을 기다리는 다른 멤버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프로그램의 안에서 결코 사이가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시간을 함께 지냈는데 코마에다는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였다.
마지막까지, 그저, 그 신념을 믿고, 그 재능을 믿고, 그 악의밖에 믿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희망을 찾고, 모두의 안의 희망을 믿고,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이 죽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은, 『초고교급 행운』 코마에다 나기토. 그의 광적이기까지 한 희망에 대한 갈망은 열광적인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그가 눈을 떴을 경우, 프로그램 안에서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든, 잊고 원래의 절망으로 돌아가든, 분명 그 대처에 애를 먹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프로그램에서 함께 보낸 모두가 동료라는 것은 눈을 뜬 다섯 명의 공통 인식이었다.
그렇기에 코마에다가 눈을 뜬다면, 이번에야말로 그 광기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런 그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지, 경계하고 있는지,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알 수 없기에 히나타는 잠든 그와 마주 봤다.
아아, 지금의 자신이라도 모르는 것이 아직 있으니까, 세계는 전혀 시시하지 않지 않은가. 그렇게, 과거의 자신에게──카무쿠라 이즈루에게 가르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모든 초고교급 재능을 모아, 그 재능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던 키보가미네 학원이 아무런 재능도 없는 예비 학과생, 히나타 하지메에게 수술을 시행하고 만든 『초고교급 희망』──모든 재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시시하다고 생각해──그 때문에 『초고교급 절망』이 된, 카무쿠라 이즈루.
하지만 카무쿠라가 된 자신은 히나타 하지메로서의 기억과도, 감정과도 분리되었으니까, 지금의 자신이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카무쿠라라면 역시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히나타는 마치 남 일처럼 생각한다.
그때까지 쌓아 온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거의 갓 태어난 아이와도 같았던 그 무렵의 일은 분명히 이 몸에 일어난 일일 텐데, 신세계 프로그램을 거쳐 이렇게 카무쿠라가 되기 전의 히나타 하지메로서의 기억과 감정을 되찾은 지금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질질 끌 정도로 길었던 머리카락도 잘라버린 지금의 히나타에게는 카무쿠라의 모습은 이제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카무쿠라의 흔적은 확실히 히나타의 안에 있다.
기억을 되찾아도, 원래대로인, 절대적인 재능을 동경했기만 했던 평범한 히나타 하지메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줄 것이다.
초고교급 희망이라는 칭호도, 만들어진 재능도 원해서 짊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깨고 나서 상황이 진정된 후부터는 히나타는 얼터에고와 연계해, 컴퓨터와 마주 보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잠든 모두가 눈을 뜨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무슨 수를 쓸 수는 없는가, 모색하고 있다.
우선, 남아 있던 신세계 프로그램의 기록을 해석하여 그 개요를 파악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눈을 뜨지 않는다는 건 원래 상정되어 있지 않았던 사태이며,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힌트도 얻지 못했다.
대부분 바이러스가 들어온 시점부터 프로그램은 크게 개찬되었으며, 그것에 의해 생긴 버그가 원래의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그것을 해석해서 문제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신세계 프로그램 자체가 컴퓨터로 인체, 사람의 뇌에 직접 작용을 미치는 것. 컴퓨터 프로그램과 뇌과학이 밀접하게 얽힌 기술의 결정체며, 그 쌍방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상정 외의 버그이다.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명확한 해결 방법이 발견된다는 법도 없다.
히나타가 지금 계속하고 있는 작업은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섬에 있는 초고교급 재능은, 히나타 이외엔 쿠즈류의 『야쿠자』, 소우다의 『메카닉』, 오와리의 『체조부』, 그리고 소니아의 『왕녀』.
쿠즈류와 소니아는 각각 많은 조직원이나 국민이 있어야 하는 재능이고, 오와리는 완전히 육체노동 전문이다. 소우다도 하드웨어는 어쨌든 소프트면에 대해서는 불안하다. 거기다 뇌과학이라는 레벨이 되면, 정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프로그램 해석의 메인이 되는 것은 히나타와 프로그램 마스터였던 얼터에고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나에기와 행동을 같이하는 키리기리에게 뇌과학에 관한 논문 데이터가 보내졌다. 물론, 신세계 프로그램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히나타는 그 문자열을 쫓았다.
재능과 지식은 별개이다. 지금의 히나타가 초고교급 희망으로서『초고교급 뇌과학자』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그 재능을 살릴 수 없다.
굉장한 스피드로 머리에 넣고는, 필요 없는 정보는 버려간다. 그 정보량은 히나타의 한계치를 넘는 양이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머리가 삐걱거린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아니, 자신의 한계라는 믿음을 넘어 뇌를 혹사하는 그것은 자칫하면 나 자신의 존재감을 희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라면서 눈을 진행한다. 뇌에 새겨 간다. 조금이라도, 단서가 되는 일이 없는지를 찾기 위해.
그런 일을 벌써 며칠이나 계속하고, 그런데도 훌륭한 성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초의 다섯 명 이후, 다른 동료가 눈을 뜰 기색도 없는 지금의 상황에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장치에는 생명 유지 장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피험자는 장치의 안에 있는 한, 반영구적으로 계속 잠들 수 있다. 각각의 바이털 데이터는 수시로 확인되어, 이변이 있으면 바로 대응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래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따라, 해석 작업을 계속하는 히나타의 모습에는 초조함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명을 토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에 매달리는 듯했다. 그 모습이 동료들을 걱정시키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히나타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데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혹사한 신체로 자면 찌뿌둥하고, 오래 자지도 못한다.
꿈조차도 자신을 몰아세우는 지금, 잠은 결코 평온함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초조해하는 마음을 안고 있어서는 더더욱, 상쾌한 기상과는 멀어진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이 되어, 그다지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고, 또 잠이 든다. 그 반복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줄곧 이대로 계속될 줄만 알았던 변화가 없는 일상이, 쉽게, 아주 간단하게 무산되었다.
이른 아침, 건물 안에 울려 퍼지는 콜 소리에 히나타는 강제적으로 잠에서 깼다.
──뭔가가 일어났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자 콜 소리가 그치고, 대신에 소녀 목소리로 나오는 방송이 방 안에 흐른다.
『모두, 프로그램 룸에 와!』
그녀의 짧은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히나타는 방을 뛰쳐나왔다.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불빛이 띄엄띄엄 켜지기 시작하고 있어, 지시된 방의 도표처럼 빛나는 그것을 따라, 달린다.
“야, 히나타!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중, 마찬가지로 자고 일어난 모습의 쿠즈류와 합류한다. 멈춰 설 시간조차 아깝고, 그대로 나란히 걸어가면서 대답한다.
“몰라. 하지만, 프로그램 룸이라는 건…….”
“설마, 저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어쨌든, 가 볼 수밖에 없어!”
굳게 서로 수긍하고, 달리는 속도를 올린다. 복도 반대 측에서는 여자 두 명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뒤에서는 뒤늦게 소우다의 발소리도 들려왔다.
프로그램 룸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아마 방송을 넣은 그녀가 했겠지.
히나타 일행이 구르듯이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는 희미한 빛과 조용한 기계음에 찬 평소의 방이었다.
다만, 하나만 다른 것은.
거기에 늘어선 수십 개의 캡슐.
그중. 어제까지는 뚜껑이 닫혀 있었던 것의 하나가, 열려 있었다는 일.
──그것이, 누구의 캡슐인가. 순식간에 이해한 히나타 일행은 한순간 발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고쳐먹듯이 달리기 시작해, 캡슐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한 명의 청년이 누워 있었다.
마른 몸, 아무렇게나 뻗은 색소가 옅은 머리카락, 잘 보면 단정한 얼굴 생김새.
그 눈동자가, 지금, 작게 열리려 하고 있다.
“코마, 에다…….”
그것은 누가 뱉은 목소리였을까.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불린 그의 반응은 적다.
끔뻑끔뻑, 몇 번이나 깜박임을 반복해, 천천히 초점이 맞기 시작한다. 회색의 눈동자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고, 그것은 제일 앞에 있던 히나타가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뭐야, 이건…….
무기질적인 눈동자와 눈이 맞고, 위화감을 품는다.
그런 히나타를 코마에다는 그저 지긋이 바라보며 답한다.
“어, 어이, 코마에다…………?”
재차 부른다. 그러나 역시 반응은 적다. 다만 드러누운 그대로, 느릿느릿 고개를 젓는다.
마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아……어…….”
히나타를 보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그는 겁먹은 목소리를 냈다.
마치 의지할 곳이 없는 미아처럼 비통한 목소리였다.
코마에다 나기토──초고교급 행운의 각성은 그런 미덥지 못한 것으로.
그다음에 떠오를 먹구름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2.
히나타는 컴퓨터 룸의 통신 전용 단말 앞에 홀로 앉아서 우러러보다가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오늘의 정시 통신 시간이다. 그전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지나온 하루를 돌이켜보며 보고사항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간다. 여하튼, 아무 움직임도 없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늘은 이야기해야 할 것이 많다.
지금 이 방에 있는 건 히나타 한 명뿐이다. 보통은 손이 비어 있는 멤버도 함께 보고했을 테지만, 오늘은 히나타가 부탁해 혼자 하기로 했다.
덕분에 통신 전인 지금은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의자에 기대서 기운을 뺄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을 생각하면 완전히 방심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시간이 되어, 착신을 나타내는 램프가 점멸한다. 응답 버튼을 누르면 모니터에는 제일 먼저 어린 얼굴의 청년이 비추어졌다.
『아, 안녕. 오늘은 히나타 군 혼자, 야?』
모니터 너머로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나에기 마코토는 히나타의 뒤를 엿보면서 물어온다.
“그래. 오늘은 조금, 여러 일이 있어서.”
『아아, 그 말은.』
히나타의 말에 나에기는 왠지 기뻐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다음을 말하는 것보다도 먼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나타 군, 그의 일은 우리도 보고를 받았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는 게 어때?』
『왜, 』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는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미루기 때문이다.』
『괜찮지, 나에기 군?』
당장이라도 히나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나에기의 기선을 제압하듯이, 그 뒤에 서 있는 키리기리와 토가미가 말을 거듭해 왔다. 어제까지 출장에 나가 있던 그들의 얼굴을 보는 건 히나타에겐 일주일 만이었다.
그들은 현재, 미래기관에 소속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절망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절망에 대항하기 위해서 키보가미네 학원의 졸업생들에 의해 설립된 미래기관. 그 대부분은 초고교급 절망이었던 히나타 일행을 아직도 절망의 잔당으로 간주해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나에기네는 히나타 일행을 믿고, 미래기관과의 사이에 서서 여러 가지 교섭을 해주고 있다.
애초에 절망투성이의 세계 속에서 히나타 일행을 보호했던 것도, 그 절망의 잔당이라고 판명된 히나타 일행을 감쌌던 것도 나에기네이며, 더욱이, 히나타 일행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눈을 뜰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프로그램에 개입해, 강제 셧다운이라는 수단을 주고, 히나타 일행을 이끌어 주었다.
최종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것은 히나타 일행이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그 결말은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또한,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눈을 뜬 후에도 나에기네는 당분간 재버워크섬에 체재하며 히나타 일행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여러 가지로 손을 벌려주고 있다.
지금은 섬에서 나와 본래의 장소에서 각각 임무를 맡은 것 같지만, 미래기관에서는 신세계 프로그램 피험자 담당으로도 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을 허울 좋은 말로 떠맡겼을 뿐이라는 것도 있지만, 나에기네 이외가 상대라면 이쪽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발언을 나쁜 방향으로 포착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미래기관과 히나타 일행의 관계였다.
나에기네는 이렇게 모니터 너머로 서로 연락을 하고 달에 몇 번은 실제로 섬을 방문해서 물자보급을 하는 것과 동시에 히나타 일행의 모습을 확인하고 간다.
히나타 일행은 아직 섬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아직도 미래기관에 적대시되고 있는 히나타 일행은 이 섬 안에 있기 때문에 간신히 나에기네의 비호하에 날뛰고 있다. 한 걸음 섬 밖으로 나가면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고 판단되어, 바로 생명이 노려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좀 더 자주 상태를 보고 싶지만, 그 밖에도 안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는 나에기는 정직한 근성의 청년이다.
그들과 만난 횟수는 적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되는 건, 나에기의 인품에 의한 부분이 컸다. 미래기관의 명령을 거역하고 히나타 일행을 도우려는 그를 지지하는 그 동료들도 나에기의 그런 부분에 매료됐을 거라고 쉽게 짐작이 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이야기도 나에기와 나누면 이야기가 들뜬다. 그렇기 때문에, 키리기리와 토가미 같은 감시역이 없을 때는 통신이 매우 길어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우선은 키리기리가 말한 대로 현재 상황 확인을 사무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히나타에게는 상담도 겸하고 있으며, 부드럽게 진행되는 대화와는 달리, 나에기네의 눈은 진지하게 히나타의 모습을 살핀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의 나에기는 계속 이야기의 끝을 서두르고 있었고, 서두른 나머지 말해야 할 내용이 쏙 빠져서 뒤의 두 사람에게 태클을 받기도 했지만.
여하튼 대강의 확인을 끝내고 나에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간신히 오늘 쭉 신경이 쓰였던 것을──그의 일을 물어온다.
『그래서, 코마에다 군은 뭐 하고 있어?』
“……아아. 검사가 끝난 뒤로 쭉 자고 있어.”
『그렇구나…….』
“꼭 어린애 같아, 저 녀석, 무슨 일인지 계속 멍하니 있고. 겨우 일어났으면서 엄청나게 잔다고.”
『계속 자고 있었으니까, 체력이 다 회복되지 않은 거야. 그때는 혼란스러웠을 테고, 잘 기억 안 나겠지만, 깨자마자 너희도 그랬었어.』
“그렇지. 그런데 저 녀석은 그거뿐만이 아니야.”
『……응. 아무래도, 그는 기억 못하는 것, 같지.』
나에기의 얼굴에서 짓던 미소가 사라지고,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히나타도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코마에다가 눈을 뜬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다.
아무런 징조도 없던 그 기상에, 하지만 기뻐하는 것보다도 먼저 히나타 일행은 그 이변을 깨달았다. 곧바로 섬의 설비로 가능한 한 메디컬 체크와 상담이 행해지고, 그 결과는 정시 통신에 앞서서 미래기관에 전달되고 있었다.
코마에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받은 나에기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하지만 다음에 들어온 정보에 당황했다.
깨어난 코마에다는──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
프로그램 안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코마에다 나기토” 로서 보내온 모든 기억을 잃었다. 마치 그 기억을 대가로 해서, 기적적인 각성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코마에다 본인이라면 기억상실이라는 불운을 발판으로 한 행운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자신의 재능조차 잊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검사 결과를 보면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네. 다소 쇠약해진 것 같지만, 분명 앞으로 조금씩 회복할 거야. 지금은 그거만으로도, 기뻐해야지.』
키리기리가 냉정하게 고하는 그 사실은 확실히 구원이었다.
코마에다의 몸은 기억이 없다는 점 외에 특별히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히나타가 보기엔 반대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
『뭘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분명히 코마에다, 프로그램 안에서, 자기가 여생 짧다고 얘기했었어. 저건, 지금은 어때?”
악성 림프종 3기, 게다가 전두측두엽 치매 병발. 여생은 반년에서 일 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알렸을 때 코마에다는 그 얼버무리는 듯한 말을 하고 대화를 끝내려 했지만──그런데도 그건 사실이 아닐까 하고, 히나타는 확신에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이야기를 들은 자신이 신경 쓰지 않도록,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 뿐이라고.
이것은 너무 섬세한 화제다. 코마에다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이야기한다 해도, 우선은 확인하고 나서다. 그래서 오늘은 혼자서 통신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의 코마에다는 학원 입학 시의 저 녀석이었지? 실제로는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이 지났어.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코마에다는 지금──살아 있는 거야? 아니면, 역시 그건 거짓말이었나?”
그것을 들은 키리기리는 입가에 손을 대고, 골똘히 생각하듯이 눈을 감았다. 곧바로 수중의 키보드를 치고, 나온 데이터베이스를 대충 훑어보면서 입을 연다.
『아니, 확실히 학원에 들어가기 얼마 전에 병명 고지는 되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의 그는 수명이 얼마인지, 거론할 상태가 아니야. 아주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생활에는 문제없을 거야.』
“나았다, 는 거야?”
『……아니, 완치는, 아니야……애초에, 데이터상으로는, 악화하지 않아도 치료될 가망성은 거의 없어. 하지만, 확실하게 지금 그는 살아 있어. 고지된 여생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건, 그의 행운의 가져다준 선물일까, ……아니면…….』
“아니면, 뭐야?”
키리기리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말을 멈춘다. 그 앞에 앉은 나에기가 걱정스럽게 그녀를 돌아본다.
『키리기리 씨…….』
『……나에기 군이나 그가 가진 “행운”은, 학원에서도 해명이 진행되지 않는 분야였어. 그런데 모처럼 입학시킨 그가 바로 죽어 버려서는 의미가 없다──그렇게 생각하고, 학원의 기술 핵심을 모아 그 치료를 했다, 고 생각할 수 있기도 해.』
“확실히, 학원에는 최첨단 설비도 갖추고 있었어──하지만, ”
『그래. 그런 치료법이 확실하다는 이야기, 대대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어. 이유가 있어서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어쩌면 반대로, “행운” 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죽지 않으리라 예측하고, 미완성 기술의 표본이 됐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어.』
“표본, 이라니──설마.”
온화하지 않은 단어에 화가 난건 히나타만이 아니다. 나에기도, 그 뒤의 토가미마저도 가늘게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키보가미네 학원이 장래의 희망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초고교급 재능을 모으는 그 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히나타 자신이 몸으로 알고 있다. 『희망 육성 계획』이라는 이름의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이다.
그러니 코마에다에게도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다──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장소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중에서도 키리기리는 특히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포커페이스인 그녀로서는 별일이다. 마치, 자신이 그 죄를 입고 있는 듯한, 괴로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깨뜨리듯, 나에기는 힘껏 밝은 목소리를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키리기리 씨. 그건 지금 우리들이 생각해도 모르는 일이야. 어쨌든 지금의 코마에다 군이 건강하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그래, 그렇지.』
그 적극적인 말에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키리기리는 평소의 냉정한 얼굴로 돌아온다. 나에기도 그것에 안심한 것처럼 웃으며, 그리고 재차 히나타 쪽으로 돌아섰다.
『아,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코마에다 군, 도 그렇고, 그뿐만 아니라 모두,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빠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연락해줘. 그때는 이쪽에서도 미래기관의 의료 스태프를 많이 움직일게.』
“너, 그런 일을 해도 돼, 아니 할 수 있어?”
실제 문제, 자신들을 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기관에서의 나에기네의 입장은 위험해졌다. 그래도 나에기네에게 찬동해 협력하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지만, 미래기관으로서는 역시, 절망의 잔당이 갱생하는 건 믿어지지 않고, 전멸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주류이다.
그런 자신들을 위해서 미래기관의 스태프를 움직이면 그 입장을 더욱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물은 히나타에게, 하지만 나에기는 강력하게 대답했다.
『응. 필요하다면, 해야지. 그렇지. 토가미 군?』
『……나에기의 말대로 할 생각은 없지만. 모처럼 나까지도 모험을 하면서까지 구했다, 사소한 일로 죽어도 곤란해.』
『들었지, 토가미 군도 이렇게 말하니까 걱정하지 마, 괜찮아.』
평소대로의 솔직하지 않은 태도인 토가미에겐 무심코 쓴웃음을 짓게 된다. 똑같은 표정을 지은 나에기는 모니터 너머로 시선을 맞추고, 그는 작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쨌든, 다음에 섬에 갔을 때는 나도 만나 보고, 지금의 코마에다 군과 얘기할게.』
『잠깐 기다려.』
『어?』
그 말을 막듯이 이의를 넣은 건 키리기리였다.
나에기가 당황하고 돌아보니, 그녀는 담담하게, 그녀 나름의 분석을 말한다.
『나에기 군은 한동안 섬에 가지 않는 게 옳아. 지금의 코마에다 군에게는 아직 이상한 자극을 주지 않는 편이 좋겠지.』
『엑, 이상한 자극이라니, 키리기리 씨, 그런.』
『사실이야. 설마 그때의 일, 잊었어?』
“어, 나에기는 코마에다랑 만난 적 있어?”
물어보는 히나타에게 키리기리는 이마를 누르면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신세계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아아. 그 떠올리는 것도 불쾌한 촌극 말인가.』
“초, 촌극?”
키리기리에게 동조한 토가미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자, 그는 굉장히 불쾌하게 이쪽을 째려봤다.
『…나에게 떠올리게 하지 마라, 우민 놈이.』
『나에기 군을 앞에 두고 너무 소란피우길래, 코마에다 군을 기절시키고 배에 태운 것뿐이야.』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녀석…….”
나에기 마코토는 코마에다와 같은 『초고교급 행운』이며, 한편으로는 『초고교급 희망』 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행해진 살육학원 생활의 생존자, 『초고교급 절망』 에노시마 쥰코를 부쉈을 때, 그렇게 불렸던 것이 퍼진 것 같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초고교급 희망・카무쿠라 이즈루와는 다른, 사람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진정한 희망.
그것은 극히 평범한, 남보다 조금 긍정적인 것만이 장점인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코마에다는 카무쿠라를 모른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모습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기는 실황 중계되고 있던 살육학원 생활을 봤다면, 알고 있었을 거라서.
‘확실히, 정말 좋아하는 희망의 상징을 앞에 뒀다면, 야단법석 떨었겠지…….’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물어보려 해도, 토가미는 진심으로 싫다는 얼굴을 한 채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키리기리도 어쩐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고, 나에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뺨을 긁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나도 나에기를 지금의 코마에다와 만나게 하는 건 반대다.』
『어머, 드물게 의견이 맞았네.』
『흥.』
『그렇지, 다음은 나랑 아사히나 씨가 가도록 할게. 괜찮겠지, 나에기 군.』
『엑, 하지만 나도 모두가 걱정돼서,』
『나에기. 그것보다 또 기관에 호출을 받았지. 잘 넘기고 와라. 우선은 그거부터다.』
『……네.』
좌우에서 탕탕 말을 거듭 들어, 나에기는 완전히 반론을 봉쇄당해 버렸다.
모니터 너머로 나에기가 추욱 어깨를 떨어뜨리고, 토가미와 키리기리는 가볍게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항상 그렇지만 나에기를 사이에 두면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라고, 남의 일처럼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히나타이지만, 『그래서 히나타』라고, 갑자기 토가미에게 불려, 엥, 놀라면서 얼굴을 들었다.
거기서 히나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타고난 지배자의 눈. 반사적으로 압도된 히나타에게 토가미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코마에다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대로, 전부 잊은 상태로 있어 줬으면 하는지, 아니면 떠올리게 하고 싶은지.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은 건가?』
거리낌 없이 쏟아지는 따가운 말에, 역시 왔냐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안에 씁쓸함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낀다.
“……아직, 모르겠어.”
그래, 모른다. 코마에다가 깬 이후에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히나타의 모습을 보고, 키리기리도 말을 계속 잇는다.
『히나타 군. 이건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걸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야. 그에게 기억을 되찾게 하고 싶다면, 나름대로 대처의 여지가 있고, 반대로 기억을 되찾게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게 할 요소를 일절 배제하는 편이 좋아. 그렇다 하더라도, 떠올렸을 땐 떠올리겠지만……어쨌든 어중간한 태도가 가장하면 안 되는 짓이야. 어떠한 방침을 가지고 나서 움직여줬으면 해. 너희가 일반인이라면 문제는 없지만.』
“알고 있어. 코마에다도 초고교급 절망이었어, 미래기관에서는 요주의 인물이지. 그걸 이대로,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미소는 어딘가 삐뚤어져 일그러진 것이었다.
코마에다의 기억은 이대로 사라지는 편이 온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히나타 일행도 그렇고, 분명, 코마에다 본인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잊은 채로 놔두려고 해도, 지금 키리기리가 말했듯이, 뭔가의 계기로 떠올릴 때는 떠올리고 말 것이다. 언제 기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따라다니게 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을 감싸 안은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억을 되찾게 한 후에 각오를 정하고 그와 마주 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마, 기억을 되찾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고교급 신경학자』의 연구에는 기억영역을 다루는 것도 있었다. 지금의 히나타라면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과거를 잊은 코마에다와 처음부터 새로운 관계를 쌓아 올리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그런 생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미래기관은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있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 하지만 아직, 히나타는 선택할 수 없었다.
『……히나타 군만 결정할 필요는 없어. 모두와 상담을 해봐. 코마에다 군 자신이, 자신의 기억이 없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문제도 있으니까. 어느 쪽을 택해도, 우리는 가능한 한 너희에게 협력할게.』
그런 히나타를 격려하는 나에기는 일부러 미소 짓고, 그것을 계기로, 오늘의 통신은 끝이 났다.
*
똑. 수도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더욱 크게 울렸다.
하지만 식당에 모인 모두가 그런 소리에 반응을 돌리지 않고,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책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 기억 없다는 건 사실이야?”
코마에다가 눈을 뜬 다음 날. 히나타가 모두를 모아 어제 세 사람과 한 통신 내용을 간단하게 보고하면, 말하기 어려워하면서도 그 의문을 입에 담은 건 소우다였다.
쓰고 있는 니트 모자를 꾸깃 잡으면서 의심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는 소우다에게 고상함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소니아는 눈길을 향한다.
“의심하시는 건가요, 소우다 씨. 검사 결과, 그리고 상담 결과, 양쪽 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니, 그치만…그 코마에다지? 뭔가 그런 검사 결과는 어떻게든 할 것 같아서, 좀처럼 믿을 수 없어. 기억이 없는척하고 있을 가능성도──아, 아니, 내가 너무 신경을 쓴 걸지도 모르지만.”
벅벅 머리를 긁는 소우다는 복잡한 표정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그랬다.
코마에다 나기토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히나타 이외의 네 명에겐 코마에다와 함께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보낸 날들의 기억이 제대로 있는 것 같고, 거기다 무엇보다도, 얼마 전까지 들어가 있었던 프로그램 안에서의 코마에다의 광기에 찬 언동에 대해서는, 모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라면, 그 재능을 가진 코마에다라면, 어떤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그에게는 있었다. 검사 결과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불안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위기에,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오와리는 곧바로 생각하는 것에 질렸는지 귀를 파면서 말했다.
“뭐, 딱히 상관없잖아? 기억이 돌아와서 뭔가 하려고 하면, 내가 당장 날려줄게!.”
“아니 오와리, 너한테 쳐 날려지면 진짜 저 녀석 죽으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날린다! 그러면 되잖아!”
“오와리, 부탁이니까 하지 마.”
히나타가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자, 입맛을 다시면서 오와리가 주먹을 내렸다.
프로그램 안──즉 학원 입학 당초와 비교해, 지금 오와리의 전투력, 혹은 신체 능력은 월등히 향상했다. 현실에서도 프로그램 안과 마찬가지로 학원 입학 후에 의기투합한 『초고교급 매니저』 니다이 네코마루의 관리를 받은 성과 같지만, 남자라고는 해도 비실비실한 코마에다가 맞으면 아무리 손대중이라도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놔둬도 무해하니까, 이대로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그렇게 일을 벌여놓고선 전부 잊는 건 치사하지 않아?”
“너, 코마에다에게 기억이 있었으면 하는지 없었으면 하는지, 도대체 어느 쪽이냐고.”
“시끄러, 그런 건 나도 몰라. 그냥……우리가 해온 걸 생각하면, 그 녀석한테만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어.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저 녀석은 학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저랬다는 거잖아? 그 말은…원래.”
쿠즈류에게 저지당한 소우다는 이어지는 말을 흐렸지만,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저 녀석은 원래, 키보가미네 학원에 오기 전부터──절망하고 있던 게 아니냐는. 적어도, 관여는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그 프로그램의 안에서 코마에다의 행동방식을 떠올려보면, 지금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학원에 올 때까진 절망과 인연이 없었지만──살육 생활에 거부 반응을 보이긴 해도──하지만 유일하게, 순응한 것이 코마에다였으니까.
그것을 넘는 큰 희망을 요구하기 때문에, 절망조차 허용해 버리는 그였기 때문에. 희망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죽음도, 제 죽음조차도, 순조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였기 때문에.
에노시마와 만나, 절망에 빠지기 전부터 그랬던 것이라면, 정말로 구제할 길이 없는 녀석이지 않나,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알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그램에서 깨보니, 자신들도 코마에다와 다를 바 없는, 어쩌면 더욱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 온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주위의 모두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은 말할 생각도, 들을 생각도 들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다른 누군가를 탓할 생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그것보다도 살아남은 키보가미네 동료를 소중히 하고 싶었다. 단지, 그 동료 안에 코마에다가 들어갈지 어떨지에 대해, 아직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모두가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자, 거기서 오와리의 깔끔한 한마디가 뛰어 들어왔다.
“응, 그래서 뭐야? 역시 생각나게 하는 게 좋아?”
다시 주먹을 쥐면서 오와리는 의욕 만만하게 단언한다. 공기를 읽지 못한 그녀의 한마디에 침울한 분위기는 무산되고, 어딘가 안심한 것처럼 쓴웃음을 지은 소니아가 그녀에게 돌아섰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떠올려주실지도 모르는데요.”
“괜찮다니까. 망가진 녀석은 한 번 쥐어패면 대부분 나아!”
“아니 안 낫거든! 사람을 오래된 텔레비전이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 그리고 텔레비전도 때리지 마! 네 힘이면 물리적으로 부서진다고!”
“폭력 반대! 예요!”
“뭐, 여기에는 제대로 된 의사도 없으니까, 부상자는 되도록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가자.”
요 얼마간은 험한 일과는 무관해서 몸을 단련할 일이 없어, 그런 혈기에 날뛰는 오와리를 필사적으로 멈추는 소우다와 소니아의 양심에 감사하며 히나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야기 내용은 조금 위험하지만, 지금 같은 교환은 어딘가 정겨웠다.
이런 분위기는 오랜만──그래, 그야말로 깨어난 이후 처음이다. 모두, 오늘은 텐션이 높고, 평소보다 밝은 이유는 역시 코마에다가 깨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히나타 자신이 깨어나고 나서 제일 안심했던 건, 눈을 뜬 그들의 성격이 프로그램 안과 그렇게 변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연히 제각기 절망했을 때의 기억도 있었지만, 모두 그것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신체적 변화는 있었고, 정신적인 변화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부분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밝게 웃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기에, 같은 죄를 입은 동료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나타에게도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의 기억은 있다. 그저, 그때의 기억은 다른 모두와 비교하면, 현실미가 옅은 것이었다.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으면, 마치 리얼한 영화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되는 것은 실제로 인격으로서는 다른 인격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일종의 자기 방어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손을 적신 피 색깔은 잊지 않았다. 사람의 살점을 베어내고, 꿰뚫고, 뼈를 자른 감촉, 그 점액, 피 냄새는 비강에 배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다들 같을 것이다.
한번 절망에 빠졌다. 그것은 『진정한 초고교급 절망』 에노시마 쥰코와 만난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없어──자신들은 신세계 프로그램을 거듭함으로써 그녀를, 초고교급 절망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 나아가자, 라고 모두가 맹세했다. 비록 다른 모두가 깨어났을 때 절망으로 되돌아와 있었다고 해도, 거기서 끌어올려 주자──그런 결의를 했던 날은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깨고 나면 모든 기억을 잃는다니, 맥이 탁 풀리는 부분이다. 경계해야 할 것을 잃어 상태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 뒤에 언제 기억이 돌아올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아 그래, 애초에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이야기가 계속 탈선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본론으로 되돌리려고 할 때,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아, ”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던 전원이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문을 연 자세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 하던 코마에다는 움찔한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아, 코마에다. 일어났네.”
“히나타, 군? 모두 이야기 중이었나 보네. 방해해서 미안해, 곧바로 나갈게.”
“아니, 괜찮아. 이야기는 이제 끝났어.”
“그래……? 그럼, 다행이야.”
히나타가 그렇게 말하자, 코마에다는 안심했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그 순간, 꼬르륵 작게 배가 울었던 것이, 그 자리의 전원의 귀에 닿았다.
“코마에다 씨, 배가 고프신 거군요. 식사 준비는 밧치구 1예요!”
“아, 돕겠습니다. 소니아 씨!”
말하면서 소니아는 일어서고 주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소우다가 당황해하며 뒤쫓아 간다.
그리고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옆에 앉아,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대고, 즐거운 듯이 히나타 쪽을 올려다봤다.
“뭐, 뭐야……?”
“히나타 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왠지 진정되는구나 싶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코마에다는 눈을 감는다. 그 태도에서는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향하는 듯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느꼈다.
굉장히, 간지럽다. 왠지 진정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깨어나고 나서 쭉 코마에다는 이랬다.
그때, 띵 전자레인지가 울리는 소리, 그리고 따뜻해진 카레의 향기가 감돌아 와서, 그 눈은 간신히 히나타에게 멀어져 간다. 코마에다는 킁킁 코를 울리며 냄새를 맡으면서, 자각이 없겠지, 입에서 침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말, 어린애냐고. 생각하면서도 종이 냅킨을 잡고 입가를 닦아 준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고 있던 코마에다는 고마워라고 멋쩍게 말했다.
“네, 코마에다 씨, 밥이에요─.”
“고마워, 그러니까, 소니아 씨.”
“자, 오와리한테 빼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으라고.”
“응, 소우다 군.”
카레의 접시와 컵이 눈앞에 올려진 것에 코마에다는 솔직하게 감사를 말하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숟가락을 잡았다.
거기까진 예전의 코마에다와 그리 다르지 않은 태도인데도 평소 더해졌던 비굴하고 불필요한 한마디가 없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인상이 바뀌냐고 놀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코마에다는 초고교급 재능을 가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비굴한 거리를 두고 대하고 있었다.
초고교급 행운──그것은 말하자면 단순히 학원 추첨에 당첨된 것뿐, 단지 그뿐이라며 비하하고, 다른 모두와 자신은 대등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비굴함은 대부분 혐오를 자아내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말솜씨가 좋아, 온갖 말로 자신을 비하하고, 희망을 가져오는 재능을 가진 자에게는 맹신적인 숭배를 나타내는 그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광기를 느끼게 하며, 그 한편으로는 가지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다는 극단적인 면이 있었고, 일그러짐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마에다에게 친구다운 친구가 있는 걸 본 적은 당연히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코마에다는 그 비굴함이 없다. 일그러짐이 없다. 그래야 할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모두에게도 허물없이 명랑하게 웃는다. 정말로 이것이 그 코마에다인지, 정말로 아무런 속뜻도 없는지,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깨어난 코마에다에게는 어제 중으로 각각 자기소개와 간단한 상황 설명은 끝냈다.
설명이라고는 말해도, “자신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 수업의 일환으로 이 섬에서 함께 서바이벌 생활을 하는 동료이다”라는 황당한 것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코마에다는 그것을 쉽게 믿어준 모양이다.
지금은 자신의 기억이 없는 것을 불안해하는 모습도 의심하는 기색도 없고,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이쪽의 말을 믿고, 솔직하게 얌전하게 따라주고 있다. 너무 손이 가지 않아, 반대로 불안조차 느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행동거지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여, 챙기지 않을 수 없지만.
“자, 멍하니 있지 말고 먹을 거면 먹는 데 집중해.”
“아, 응.”
지금도 멍해서는 카레를 내버려 두는 걸 눈치챈 히나타가 주의해도 아까부터 코마에다의 눈은 창밖으로 향한 채였다.
밖은 오늘도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 남국의 섬에서 가장 자주 있는 맑은 날이다. 녹색 잎이 무성한 사이에 선명한 꽃이 피고, 화려한 색의 날개를 가진 새가 날아갔다.
“왜 그래, 코마에다?”
“저기, 히나타 군. 이 건물 밖은 어떻게 돼 있어?”
“밖, 말이야?”
“응. 건물 안은 안내받았지만, 밖은 나가면 안 되는 거야?”
말하고, 숟가락을 문 채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히나타가 다른 동료들에게 상담하는 듯한 눈을 향하자, 그것을 깨달은 코마에다는 “아, ” 당황한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이상한 말을 해서, 곤란하게 했나 보네.”
“아니야……그런데 바깥이라고 재미있는 곳은 별로 없다고?”
“그래?”
이것은 자신들이 확인이 끝낸 일이다. 이 섬은 특별히 아무것도 없다.
신세계 프로그램 안의 재버워크섬은 복수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의 섬에 다양한 시설이 있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섬 사이를 잇는 다리는 걸려있지 않고, 히나타 일행이 지금 있는 중앙의 섬도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다.
연구 설비가 갖추어진 이 건물 외에 주목해야 할 곳은 기껏해야 선착장과 작은 공원이 있는 정도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코마에다를 계속 건물 안에 가두어 둘 생각도 없다.
“그럼……그거 다 먹으면, 가볼래?”
“응!”
히나타의 말에 코마에다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재개한다.
그가 다 먹는 것을 기다리고 나서, 그럼 다녀올게, 알린 후 히나타는 밖으로 향하고 코마에다는 그 뒤에 기쁜 듯이 따라갔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본 나머지 멤버는 코마에다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제각기 숨을 토했다.
“어, 어쩐지 역시 긴장되네요…….”
“코마에다가 너무 하얘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저 정도로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히나타가 대단해─.”
소니아가 쓴웃음을 짓고 어깨의 힘을 빼자, 소우다는 테이블에 푹 엎드렸다. 지금 일만으로 하루의 기력을 다 써버린 느낌이 든다.
여하튼 그토록 속에 무엇을 떠안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녀석이다, 기억이 없는 지금은 아무것도 꾸미고 있지 않다고 알고 있어도, 그래도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런데, 코마에다 녀석, 밖에 내보내도 괜찮아?”
“뭐, 히나타도 있으니까 문제없잖아. 밖은 감시 카메라도 작동되는 것 같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알아챌 수 있겠지, 메카닉 씨?”
“오우, 확실하게 시스템 연계가 끝난 상태라고!”
무슨 일이란, 여느 때 같으면 적대하는 누군가가 침입한다면, 이라는 의미이고, 지금은 코마에다의 모습이 표변하면, 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히나타라면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 히나타를 잘 따르네. 역시 젤 처음 본 게 히나타라서 그런가…….”
“아아, 흰뺨검둥오리의 자식이네요! 귀엽네요!”
“아뇨 귀여운 건 당신입니다, 소니아 씨.”
“저기, 흰뺨검둥오리는 먹을 수 있는 거야? 음, 그, 그……그 뭐였더라.”
“윽, 너─ 이만큼이나 같이 있었는데 아직도 내 이름 기억 못 하는 거냐고! 히나타나 코마에다나 기억했으면서 왜 나는 기억 못 하는데!!”
“그야 너한테는 밥 받은 적 없으니까.”
“뭐든지 음식을 기준으로 두지 말라고!”
“너희들 말이야…….”
아까까지의 긴장감은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바뀌어 소란스러워진 장소의 분위기에 쿠즈류는 기가 막힌 것처럼 숨을 토했다.
“아, 그래요! 코마에다 씨가 눈을 뜨셨으니, 모처럼이므로 폭죽으로 팍하고 축하, 하지 않으실래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소니아 씨.”
“그래도 이 섬엔 터트릴만한 건 없다고. 만든다 해도, 그런 화약 같은 건 없잖아?”
“다음에 섬에 올 때 보급물자에 넣어 주실 수 없는지, 나에기 씨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떤가요.”
“오, 괜찮지 않아? 그리고, 먹을 것도!”
“넌 언제나 그것뿐이네.”
그럼 이것도 저것도, 깨달으면 다음의 물자 요청의 이야기로 바뀌어 간다.
거기에는 확실히 절망의 색은 없고, 그저 즐거운 이야기의 꽃이 피었다.
* * *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 왜 없는지는 모른다. 언제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모르는 일투성이라서,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없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딱히 곤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은 배웠다. 코마에다 나기토.
주위에 있는 모두의 이름도 가르침 받았다. 히나타 하지메, 쿠즈류 후유히코, 오와리 아카네, 소우다 카즈이치, 소니아・네버마인드. 전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언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이 섬에 대해서도 들었고, 내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도 들었다. 다들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알겠다고 말하니 안심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기억이 없어서 불안하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왜일까, 조금 더 스스로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아아, 히나타 군이 있기 때문일까, 깨달았다.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내 기억의 제일 처음에 있는 것이 히나타 군이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로 도와줘서 그가 있으면 괜찮다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예를 들어, 히나타 군은──붕대를 감아 준다.
나에겐 왼손이 없다. 왜 없는지는 모른다. 언제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모르는 일투성이로, 그래도 확실한 건 왼손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왼손이 있었던 장소는 그것을 잘라낸 것처럼 되어있고, 그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다.
거기를 숨기듯이, 히나타 군은 응급처치하고 붕대를 감아 준다.
그때의 히나타 군은 언제나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한다.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한다. 그렇게 붕대를 감아간다. 그것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뚜껑을 덮는 것 같았지만, 히나타 군이 해주는 거라서 기뻤다.
“자, 끝났어.”
“고마워.”
붕대 끝을 고정하고, 완성. 히나타 군의 손이 멀어져 간다.
웃으면서 감사를 말하는 그 순간, 아쉽다고 생각한다는 건 아직 말하지 않았다. 좀 더, 닿았으면 좋겠다니, 그런 일은 나 같은 녀석이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는 다른 모두와는 어딘가 다르다고 느껴졌다. 다른 모두보다 훨씬, 나에게 가까운 사람. 그래서 미움받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쿠즈류 군이나 소우다 군에게는 왜인지 피해지고 있으며, 오와리 씨는 어쩐지 무섭다. 소니아 씨는 상냥하지만, 왕녀님이라고 들으니 다가가기 어려워졌다.
히나타 군은. 히나타 군은, 딱히 상냥하게 대해주진 않고 무뚝뚝한 느낌이지만, 내가 이상한 일을 하거나 귀찮게 했을 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도와준다. 이렇게 같이 있고, 붕대를 감아 주고, 섬을 안내해준다.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거짓말도 무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어쩐지 기쁘다.
──하지만.
가끔, 그는 나를 보고 있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히나타 군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도, 그래서.
그것은 분명, 기억을 잃기 전의 나. 코마에다 나기토로서 자란, 내가 모르는 나.
그런 『나』에게 향하는 그들의 눈은 절대 상냥하지 않다. 온화하지도 않다. 웃고 있지 않다. 비웃고 있지 않다.
다만, 거기에 떠오르는 것은──혐오감. 부의 감정을 향해져서, 내가 놀라는 사이에 그들은 그것을 깨끗하게 숨겨버리지만, 그것이 몇 번이나 계속되면 나라도 눈치 못 챌 리 없다.
……기억이 없는 건 불안하지 않다. 무섭지 않다.
하지만.
──나는 대체 무엇을 잊고 있는 거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름 이외, 아무것도.
그래서 그건, 물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불안하진 않지만, 알고 싶은 거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것을 아는 건, 어쩐지 무섭다.
하지만, 그래도──알고 싶다고.
그건, 조금씩, 조금씩.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 * *
3.
끝, 그렇게 말하고 나서 미간이 아픈 걸 느낀 히나타는 키보드를 치는 손을 멈추고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눈을 깜박거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덮는다. 안구에 전해지는 인공적인 빛이 완화되어, 하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줄곧 이렇다. 초고교급 재능과는 관계없이 피로는 찾아온다. 휴식이 충분하지 않다면 축적된다. 그뿐이다.
그런데도 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고,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급해질 뿐이다. 코마에다가 깨어나고 나서 벌써 며칠이나 지났지만, 뒤따르듯 깨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가볍게 눈꺼풀을 비비고, 히나타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모니터 오른쪽 구석에 작은 윈도우가 하나 나타났다. 거기에는 한 소녀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그녀는 표정이 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히나타에게 말을 걸어왔다.
『히나타 군, 괜찮아? 요즘, 안자는 거려나…….』
“나나미, 그런 거 아니야.”
기억에 있는 것과 조금의 변화도 없는 소녀의 모습에 히나타는 자연스럽게 눈꼬리를 풀었다.
그런 히나타의 대답을 받아내고, 나나미는 음, 뺨을 부풀려 아까보다도 조금 어투를 강하게 하며 반론해 온다.
『거짓말해도 소용없어. 제대로 자야 해. 히나타 군은 기계가 아니니까.』
“기계도, 안 쉬면 안 되잖아.”
『그럼 더더욱 히나타 군은 쉬지 않으면, 안 되잖아.』
단호하게 잘라 말하면 더 이상의 반론은 없다. 이 문답은 히나타의 패배다. 하지만 싫진 않다. 이렇게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협력하고 함께 지낸 나나미 치아키는 이 세계에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미래기관이 감시자로서 배치한 NPC 캐릭터. 그것이 『초고교급 게이머』의 정체였다.
그래도 히나타 일행에게 있어서 나나미는 같은 곤경을 함께 극복해온 소중한 동료임에는 변함없다.
그것이 설령 프로그램상만의 존재라고 해도, 그녀와 보낸 시간은 환상이 아니라, 각각의 마음에 확실히 나나미의 존재는 남아 있었다.
히나타 일행이 눈을 뜬 후, 얼터에고의 힘을 빌려 구성 프로그램이 복원된 나나미는 지금은 독자적인 시스템으로서 이 섬의 관리를 맡고 있다.
나나미에게는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몇 번이나 도움받았다. 일상에서도, 비일상적인 수사 시간이나 학급재판에서도. 그녀에게는 자신의 약한 부분도 많이 보이고, 하지만 그때마다 기막혀하지 않고 그녀는 격려해주었다. 등을, 밀어줬다.
지금은 이렇게 모니터 너머로밖에 만날 수 없지만, 사는 세계도 다르지만, 그래도 그녀와 한 번 더 말을 나눌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다행이며 위안이었다.
『저기, 고민이 있다면, 나라도, 들어줄게?』
“……그렇게 내가 알기 쉬웠어?”
『히나타 군에 대해선 환히 내다보고 있어!』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며 나나미는 오른손의 검지를 세워서 그것을 똑바로 히나타 쪽으로 내밀어 온다.
장난기 섞인 그 몸짓에 무심코 웃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에 이어 『있지?』 상냥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는 비밀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고민하는 일 따위, 몇 가지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의 히나타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아무리 자신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저기.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이라니?』
“코마에다 말이야.”
약한 소리를 내뱉는 것은 깨어난 이후로 처음이다.
미래를 만들자, 그런 맹세와 동시에 깨어났으니 소극적인 생각은 하고 있을 수 없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의 코마에다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으음, 이대로, 잊고 있어도 괜찮다고, 다들 대화로는 그랬지?』
“그래. 그래도 그럼 사실은 코마에다는 여기에 안 두는 게 좋잖아. 키리기리가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나게 할 요소는 배제한다 치면, 우리도, 충분히 그 녀석의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우리에게 떼어 놓은 편이 좋아.”
『으음……하지만, 미래기관은, 너희도, 코마에다 군도, 아직 섬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분간은 이 섬에서 함께 살 수밖에 없어.』
“그래,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
“뭔가, 구실 같은 게 아니라…….”
가볍게 머리를 누르면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 ”라며 조금 생각할 시간을 두고 히나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앞으로 우리가 자유롭게 되고, 다른 장소에 가게 된다고 해도, 코마에다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게 불안하다고 할까, 싫다고 할까……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뭔가 그렇게 생각하거든.”
『……히나타 군과 함께 있으면 코마에다 군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그래도 같이 있고 싶다는 거야?』
“있고 싶다고 할까, 가만히 놔두면 저 녀석, 기억이 없어도 뭘 할지 모르니까……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들은 나나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이, 으음, 턱 끝에 손가락을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히나타 군은, 프로그램 안에서도 쭉 코마에다 군을 신경 쓰고 있었지.』
“그건,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야.”
『응. 그렇지만, 싫어도 코마에다 군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건, 실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아무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코마에다 군을, 히나타 군은 이해하려고 했어. 모두, 피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나도, 데이터로 따라갈 수 없어서 조금 서툴렀는데, 라고 나나미는 뺨을 부풀린다. 특기인 게임에서 진 것처럼 분해하는 모습은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무슨 하고 싶은 말 있어, 나나미?”
『저기, 히나타 군은 말이야, 매정한 척하지만, 정말로 상냥하다고, 생각해. 그런 히나타 군이, 나는 좋아.』
“나, 나나미……?”
허를 찌르는 말에 히나타가 멈칫하고 얼굴을 붉히자, 나나미는 그것에 작게 미소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러니까 알 수 있어. 히나타 군, 쭉 코마에다 군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 쭉,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었다는 것.』
“……뭐?”
『그러니까, 나는 히나타 군을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해.』
“……잠깐 기다려봐, 너, 뭔가 이상한 착각하는 거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아, 황급히 히나타는 그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나나미는 신경 쓰지 않고, 온화한 어조로 말을 계속한다.
『응─그런가……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 말이야, 지금 그대로도 좋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코마에다 군도 그렇지만, 모두 왠지 즐거워 보였는걸.』
“그, 래?”
『응. 지금의 모두를 보고 있으면, 왠지, 우리까지 즐거워져. 그러니까, 이대로 모두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나.』
“……그렇지만, 코마에다는.”
『응, 어쩌면 모두와 함께 있으면, 기억을 떠올릴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야, 내가 이런 걸 말해도 이상하지만, 잊는 게 좋은 일도 분명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코마에다 군도,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잊은 거 아닐까나.』
“……잊어버리고 싶다, 인가.”
짐작 가는 바는, 있다. 프로그램 안에서 코마에다가 말했던, 장렬한 과거. 그것은, 그것만이라도 잊고 싶다고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고, 프로그램의 안에서도 그는 항상 희망을 위해서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욱 절망으로서 살아온 경위도 더해진다면, 그가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고──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되었다.
“……에노시마 쥰코의 얼터에고 같은 게 없어도, 신세계 프로그램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다 잊고 살았겠지.”
『응. 학원에 들어가고 나서의 일은 전부, 말이야.』
“에노시마는 저런 말을 했지만,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일을 승낙한 우리는, 사실은 정말 잊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절망이었던 과거를.”
『음,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 해? 히나타 군이 사실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고.』
“생각이라 할 것도 없어. 에노시마의 얼터에고를 반입한 건 나라고? 내가──카무쿠라가 생각했던 건──그녀가 없으면 세계가 시시해지니까 재밌게 하려던 것뿐이에요──그냥, 그거뿐이야.”
『그런가.』
남의 일처럼 국어책 읽기로 “카무쿠라답게”한 말은 거짓말은 아니다. 카무쿠라 이즈루에게 세계는 그저 시시한 것이다, 그것은 프로그램을 하든 안 하든 분명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얘기야.”
『응. 어쩌면 코마에다 군은, 정말 잊고 싶었을지도 몰라──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도 그건 근거가 없어,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응, 그렇네. 사실 그런 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해봐도 모르니까?』
“어이, 나나미…….”
자신이 펼쳐온 추론을 간단하게 버린 나나미에게 뭔가 생각이 있겠거니 기대하고 있던 히나타는 기운을 잃었다. 하지만 나나미는 온화하게,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히나타 군은 히나타 군대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정할 수밖에 없어. 떠올릴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함께 있고 싶은 거라면, 그 일을 생각해, 그 결론이라면 그 후 어떻게 되든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히나타 군이 그렇게 하고 싶은 거라면, 가능한 한 그 등을 밀어주고 싶다고……그렇게, 생각해.』
“……고마워, 나나미.”
결론은, 결국은 다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나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동안에 자신의 안에서 정리가 되었다.
정말로 나나미에겐 도움만 받는다. 그런 자신이 조금 한심하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혼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 일이 지금은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런 감사의 말에 나나미는 『아냐, 』 상냥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대로, 단번에 어투를 강하게 하고,
『그래서, 그러니까, 히나타 군은 힘내서 빨리 코마에다 군을 공략해야해. 지금의 히나타 군은 벌써 꽤 좋은 곳까지 플래그 세우고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조금이야!』
하아하아, 게임 앞에서 흥분했을 때처럼 숨을 내쉬는 나나미에게 압도된 히나타는 무심코 모니터에서 물러났다.
“……나나미. 이건 연애 게임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 사랑은 진지한 승부지.』
“그러니까 말이야─.”
멋대로 단정 짓는 나나미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 고심한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부, 불순 이성 교제는 안되여!』
“뭐야?!”
화면에 가득히, 새하얀 토끼 봉제 인형의 확대된 얼굴이 차지해서 이번에야말로 히나타는 크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색조는 달라도, 확실히 이 얼굴, 그리고 목소리와 말투는 잊지 않는다.
“모노미?!”
『모노미가 아니라 우사미예여!』
그렇게 말하면서, 그 토끼는 크게 가슴을 폈다.
『우사미, 둘은 이성이 아니야. 동성이야.』
『에, 에에……그, 그럼…….』
나나미의 주장을 듣고, 새하얀 봉제 인형 페이스에 붉은빛이 드리워지고, 동그란 손을 머뭇머뭇 수줍게 움직였다.
괜찮은 거냐. 그거라면 괜찮은 거냐. 모니터 너머에 태클 걸지 못하고 히나타는 한숨을 뱉다가, 그게 아니지, 라고 고쳐 생각했다.
“근데 모노미가 왜 여기 있어.”
간신히 태클을 넣으면, 그 순간, 빰빠라밤, 값싼 팡파르가 울린다. 모니터에는 형광으로 빛나는 “몰카성공★” 문자를 문자 그대로 짊어진 나나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슴을 편다.
『히나타 군 몰래카메라 대성공이야, 우사미!』
『와─이 와─이……아니, 히나타 군 너무해여! 그러니까, 모노미가 아니에여, 우사미예여!』
“아, 아아, 미안, 음……우사미?”
화면 안에서 흑흑흑 쓰러져서 울음을 터트리는 우사미에게 그렇게 부르자, 순간 활짝 기뻐하는 미소가 된다.
『서,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된다구여……?』
“그래서, 왜 네 녀석이 있는데?”
우사미의 우쭐한 한마디는 무시하고 나나미에게 물어보려 하자, 잘 속였다는 얼굴로 설명된다.
『있잖아, 나 혼자선 이 섬의 관리가 힘드니까, 그래서 우사미에게도 도움을 받기로 했어.』
『여러분은 선생님이 제대로 보고 있으니까여! 안심하고 러─브 러─브해주세여.』
“하, 하하…….”
전과 변함없는 우사미를 보고, 왠지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나 감동적인 이별을 해놓고 너까지 시치미떼는 얼굴로 부활하지 마, 바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되지 않았다.
『히나타 군?』
『왜, 왜 그러나여?? 어디 상태라도 안 좋나여?』
“아니.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둘 다.”
자연스럽게 눈초리를 닦으며 웃는다. 거기에는 따뜻한 미소가 돌아왔다.
『우후후, 그렇게 기뻐해 주시니 선생님 영광이에여. 만족해여.』
정말로 기쁜 듯이 그렇게 말하고, 우사미는 『그럼, 』 정색하는 것처럼 옆의 나나미에게 말을 걸었다.
『치아키, 주제로 들어가 주세여!』
『응. ──그럼, 감동의 재회가 끝났으니, 오늘은 히나타 군에 공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나나미가 말하자, 아까까지는 “몰카성공★”이었던 모니터의 문자가 바뀌어, 이번에는 커다랗게, 단 두 글자가 표시되었다.
“……뭐? 휴가?”
그렇다, 휴가. 그 두 글자가, 눈부시게 깜빡거리면서 화면에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응. 히나타 군, 요즘 너무 일만 하니까. 다른 애들에게도 협력을 받아서 오늘은 강제적으로 쉬게 할 거야.』
“자, 잠깐만 기다려봐. 나만 일하는 건, 아니잖아? 소우다도 매일 여러 가지 메카 들이고 있고.”
『소우다 군의 저건 대부분 취미의 영역이고, 졸릴 때는 제대로 자고 있어. 게다가 다른 애들이 어떻다기보다도, 확실하게 히나타 군이 피곤해하고 있다는 게 문제야.』
“그래도 하루도 쉬는 날이 없잖아?”
말이 격해지지만 나나미는 들은 체 만 체하고 딱 잘라 말했다.
『어쨌든, 계속 일하는 히나타 군에게는 오늘은 이제 여길 쓰게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애들에게도 협력해달라고 부탁해놨으니까.』
『러─브 러─브를 위해, 어딘가로 외출해도 돼여.』
그러면서 툭 소리를 내며 전원이 일제히 떨어졌다. 다시 전원을 넣어도, 『오늘 휴가 중』 의 스크린세이버가 퍼질 뿐, 외부에서의 조작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시스템 관리자 권한을 최대한 사용해서까지 나를 쉬게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 해도, 그것에 거역하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플 것이다.
컴퓨터 룸에 더 있어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하나 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오기로 했다.
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오늘은 앞으로 무엇을 할까.
자기 일이 안된다면 다른 애들을 돕기라도 할까, 그렇게 걷기 시작했지만, 말을 걸자마자 “됐으니까 너는 쉬어.”라고 내쫓길 뿐이었다.
드디어 곤란해하면서 걷고 있었더니, “히나타 군, ”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마에다.”
나나미의 사주라도 받았어? 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다. 돌아보니 어깨에 코트를 걸친 코마에다가 서 있었다. 아까의 나나미의 말을 떠올려 동요하고, 하지만 의심스럽게 여겨지지 않도록 곧바로 평소대로 태도를 고친다.
“코마에다, 이런 곳에 어쩐 일이야?”
“계속 방에서 책을 읽는 것도 질려서, 이 안을 탐험하고 있었어. 어쩌면 히나타 군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는데, 나는 운이 좋네.”
운이 좋아. 순진하게 입으로 말해,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곧바로, 아니라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지금의 코마에다는 자신이 초고교급 행운인 걸 모른다. 몰라서, 단지 생각난 것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그 뒤에 뭔가 함축된 의미가 없는지 반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자신에게 타이르고, 히나타는 코마에다가 입은 코트에 손을 뻗었다. 이 섬의 기후에 맞춘 얇은 코트다.
남쪽 섬에 코트 모습은 언뜻 보면 더워 보이지만, 이걸 입지 않고 밖으로 나오면 피부가 약한 코마에다는 곧바로 타서 염증을 일으킨다. 한 손이 없는 탓인지 귀찮아서 소매에 팔을 안 넣고 정말로 어깨에 걸치기만 한 것을 도와 제대로 소매에 팔을 끼워 주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 코마에다.”
“응, 왜?”
“지금부터 같이 밖에 나갈까.”
목의 후드 형태를 바로잡아 주면서 말하자,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어라, 생각하면서 얼굴을 올리면, 코마에다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랑 같이 가도 괜찮아?”
“괜찮아. 가자.”
응, 손을 내밀자, 또, 멍하니 눈을 깜박인다. 그 태도에 자신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라, 이상한 짓 했나, 생각해서 손을 치우려고 했더니 덥석 잡혔다.
“응, 갈래!”
“오, 오우.”
정말로 기뻐하는 그 반응에 말을 꺼내면서 히나타는 조금 허리를 뒤로 뺐다.
그 손을 쭉, 코마에다가 당겨, 걷기 시작한다. 그 등에 쓴웃음을 짓고, 히나타도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저기, 히나타 군. 저 나무 이름, 알고 있어?”
“응, 아아, 저건──.”
지시된 나무를 보고 떠오른 이름을 말하자, 코마에다가 감탄한 것처럼, 히나타 군은 뭐든지 알고 있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섬에 자라는 나무나, 거기에 오는 새를 가리키며 보면서 두 사람은 내키는 대로 걸음을 진행한다. 목적지라고 할 정도의 것은 딱히 없다. 왠지 모르게, 마음 내키는 대로 부지 안을 산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손은 잡은 채다. 처음에는 코마에다가 손을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히나타가 앞에 서서 걷고 있다. 애인──보다는, 마치 초등학생 같네,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으니 도중부터 신경 쓰는 것도 그만뒀다.
걷기 시작하고 10분 정도에서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그 무렵에는 코마에다의 숨이 끊어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히나타는 그를 향해 제안했다.
“잠시 앉아서 쉴까.”
“아, 응, 그러자.”
다소 좁은 범위 안을 돌아다니는 일은 가능하지만, 코마에다는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강한 햇빛 때문에 지치고 있던 코마에다는 솔직하게 끄덕였다.
적당한 나무 그늘에 앉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용하다. 거기다 공기가 맛있다.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는 공기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섬은 그로부터 멀었다.
이 섬은 원래 미래기관 소유의 섬이지만, 지금은 히나타 일행을 격리하기 위해 기관의 사람은 모두 섬에서 피해있었다. 그렇게 넓은 섬도 아니지만, 여기에서 사는 사람은 여섯 명이니 소란과는 무관했다.
하지만 분명, 좀 더 남은 사람들이 깨어나면 소란스러워질까. 꿈꾸고 작게 웃는다. 그러면서 괴롭게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은 반사적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생각해, 히나타 군.”
그 소리에 흠칫 뒤돌아보자, 코마에다가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이상한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할 일이 없어?”
“어. 오늘은 쉬래.”
“그렇구나……그래서 나를 초대했구나.”
어쩐지 기쁜 듯이 코마에다는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진정되나 싶었던 표정을 다양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그 백면상이 재미있어서 잠시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코마에다는 그것을 퍼뜩 깨달아,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미, 미안해…모처럼 히나타 군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됐으니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생각했더니 알 수 없게 돼서.”
“별로 억지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 그렇지……왠지 날아올랐어.”
그리고, 아하하, 웃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이렇게 히나타 군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쁘네.”
“……그래?”
응, 진심으로 기쁜 듯이 전해 들으면, 기분은 나쁘지 않다. 잡고 있던 손에 약간 힘을 담자, 코마에다도 잡아서 돌려줬다. 따뜻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손을 잡다니 오랜만이지 않을까. ……하지만, 어째서 코마에다와 손을 잡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서, 히나타는 하품을 참았다. 큰 나무는 햇빛을 가로막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 기분 좋음에 긴장을 늦추니 졸음에 습격당할 것 같다.
“히나타 군, 졸려?”
“응, 아니…….”
“자도 돼. 오늘은 쉬는 날이잖아. 그렇지?”
그러나, 자기가 초대해놓고 혼자서 잠들어 버리는 건 바보 같지 않은가. 히나타가 고개를 가로젓자, 코마에다는 어쩔 수 없네, 라고 말하면서, 히나타 쪽에 몸을 맡겨왔다.
“……저기, 히나타 군. 기억이 없어지기 전의 나도, 이런 식으로……히나타 군과 함께 있었어? 그래서, 이렇게 안심되는 걸까.”
툭, 흘러나오는 그 말에 히나타는 눈을 돌렸다. 코마에다가 자신의 기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기억이 없는 게, 불안해?”
“으응. 실은, 별로.”
“정말로?”
“응. 실은 그런 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히나타 군이 있어 주니까,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잖아. ──소니아 씨는 말이지, 이번 차를 대접해 주겠다고 말해줬어. 오와리 씨는 함께 몸 단련하지 않겠냐고. 소우다 군이나 쿠즈류 군도, 히나타 군이 없을 때는 여러 가지로 돌봐준다고? 그래서, 기억은 없어도 딱히 불편함은 못 느꼈어.”
코마에다는 술술 그렇게 말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딱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말이야, 히나타 군. 난, 대체──………….”
그렇게, 아래를 향한 채로 내뱉은 말은, 하지만 도중에서 끊기고 만다.
“……코마에다?”
어떻게 된 거야, 하고 얼굴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코마에 가는 색색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도 돼, 라고 했으면서, 자신이야말로 졸렸던 게 아닐까 히나타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설마 이야기 도중에 바로 잘 줄이야. 그러고 보니 나나미도 잘 잤었지, 그립게 떠올리면서, 무방비하게 이쪽에 기대는 체중을 받아들였다.
침을 늘어뜨리며 자는 얼굴을 무심코 바라본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드는 잠든 얼굴이다. 캡슐 안에서 자고 있었을 때와는 다르다. 이렇게 보면, 코마에다는 의외로 반듯한 얼굴이다. 색이 흰 이유도 있어서, 어딘가 현실성이 옅고, 아름다웠다.
물론 지금의 잠든 얼굴은 그 장렬한 얼굴과는 동떨어져 있고, 지금의 이쪽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안도한다. 푹신푹신한 머리카락과 작은 숨소리가 목덜미에 닿아 간지럽다.
그렇게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 핏기가 얇은 입술이, 살짝 열렸다.
히나타 군.
잠꼬대처럼 그렇게 속삭여져, 두근거린다.
그사이에도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코마에다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얼굴로 행복한 듯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얼굴을 붙이고. 그 거리는 서서히 줄어들어 가, 그리고 제로에 다가간 곳에서 숨결이 닿고──히나타는 깜짝 놀라 몸을 뺐다.
──왠지, 이상한 짓을 저지를뻔한 것 같다.
아무리 예쁘다고는 해도, 기억이 없다고는 해도, 왠지 귀엽다든가 생각해도, 상대는 그 코마에다라고?
코마에다를 보고 이상한 기분이 되다니, 그런 건──
『히나타 군은 벌써 꽤 좋은 곳까지 플래그 세우고 있다고 생각해!』
나나미의 말이 머릿속에 되살아나고 붕붕 고개를 젓는다. 아냐 아냐, 그런 이상한 플래그는 안 섰어, 안 섰다고!
……아니 뭐야. 이런 식으로 의식해버리다니, 뭔가 나나미의 의도에 말려든 것 같다.
에에이,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그만하자.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다가 마음을 다잡고, 히나타는 눈을 감았다. 아주 몇 초 뒤, 잠에 빠진다. 그리고 둘이서 어깨를 서로 기댄 채로, 찰나의 편안한 잠을 탐하는 것이었다.
*
“아아?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야, 너희들.”
“오와리 씨.”
일과가 된 섬의 외각 달리기를 하던 도중, 희귀한 모습을 본 오와리는 드물다고 생각한 그대로 소리 내서 묻는다.
『초고교급 체조부』인 오와리는 육체노동 전문, 만일의 경우의 전투 요원이다. 주위도, 자신도 그렇게 결론짓고 있으며, 아무 일도 없으면 신체를 단련하는 나날이었다.
돌아본 코마에다는 오와리를 보고 조금 곤란한 듯이 웃으며, 입가에 한 개의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인다. 보면, 그 어깨에 기대어 있는 히나타는 자는 듯했다.
“뭐야, 히나타, 대낮부터 이런 곳에서 자는 거냐고. 뭐, 오늘도 날씨가 좋으니까, 낮잠 자기 좋은 날씨지만!”
“히나타 군, 언제나 바쁜 것 같으니까 말이야. 너무, 큰 소리 내지 말아주면 기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코마에다가 그렇게 주장하자, 오와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오와리에게 이번에는 코마에다 쪽에서 말을 걸었다.
“……저기, 오와리 씨.”
“응응?(뭐야?)”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어땠어?”
“……응?”
툭, 흘리는 말에 오와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을 잃기 전의 코마에다가 어땠는가. 그런 질문을 받아도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오와리 입장에서 보면 별로 안중에 없었다.
오와리에게 있어서 코마에다는 싸울 보람(이라고 쓰고 싸우고 싶은, 이라고 읽는다)도 없을 것 같고, 살집도 나쁘고 많이 먹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딱히 관심은 없었다. 단지, 언제나 실실거리기만 하고 웃으면서 『오와리 씨는 대단하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엔 대부분 이해 못 할 말을 하고 있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이네, 어느 쪽인가 하면 경원하고 있었고, 일부러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걸 전하려고 했지만, 큰소리를 내지 말라고 들어서 입을 막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자, 코마에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해, 이상한 걸 물어봐서.”
“…………?”
스스로 물어 놓고, 코마에다는 바로 그것을 부정했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잠든 히나타 쪽으로 눈을 돌린다.
뭐야? 아아 그래도 코마에다에게 옛날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오와리는 다시 달려 나갔다. 세 걸음 더 나아갔을 때쯤, 띄우고 있던 의문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 * *
오늘은, 왠지 밤이 길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식사와 샤워를 마치자마자 졸음에 습격당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졸릴 때까지 책이라도 읽을까 생각했지만, 손에 든 책은 나에겐 재밌는 것은 아니라서, 머리맡에 치우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몇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잠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실내를 떠도는 고요함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 방 안에는 나 혼자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소리란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아, 목소리를 내본다. 제대로 그 목소리는 귀에 닿아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역시 나도 잘까, 생각해서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역시 잘 수 없다. 낮에 잠들었던 탓도 있겠지. 그만큼, 졸음이 오지 않는다.
그때는, 자기 직전까지 히나타 군과 뭔가 이야기했었던 것 같으니까, 그것이 끊긴 건 유감이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히나타 군이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에 평소보다도 훨씬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아아, 그 기분 좋음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혼자서 자는 잠이 무서워졌을지도 모른다.
무슨 사치스러운 일일까. 제멋대로인 자신에게 한숨을 토하고 바닥에 내려온다. 잠시 식당에 물을 마시러 가는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방을 나선다.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식당에 도착한다. 차가운 물을 마시자 한층 눈이 또렷해진 느낌이 들어서 방에 돌아가기 전에 그냥 건물 안을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잠깐의 밤 산책이다. 어디에 어떤 방이 있는지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한 군데만, 나에게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들은 방이 있다.
들어가려고 해도 패스워드가 필요하니까 못 들어가, 라고 말했던 건 분명 소우다 군이다. 그 패스워드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다들 때때로 그 방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기도 한다는 걸.
그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경은 쓰였다. 하지만 들어가 보고 싶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못하고 있었다.
그 문 앞에 나는 지금 서 있었다. 멈춰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자신도 잘 모르는 채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문 옆에 숫자가 쓰인 패널이 있다. 아마도, 여기에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거겠지. 패스워드는 모른다. 하지만 그걸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눌러봤다.
그러자, 삐삣 가벼운 소리가 울리고, 눈앞이 열렸다. 눈앞에 있던 문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처럼 열린 것이다.
어라, 정답이었나? 그런 일, 확률적으로 있을 수 없을 텐데,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이 안에 들어가는──있을 수 없는 확률을 뽑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 걸음 발을 내딛자, 거기는 전자적인 빛에 엷게 비추어진 공간이었다. 그 바닥에,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관 같은 것이 놓여 있다. 몇 개는 뚜껑이 열려 있고, 하지만 절반 이상은 닫혀 있었다.
──두근. 크게 고동이 울렸다. 여기에 뭔가가 있다는, 그런 예감이 든다. 그것이 좋은 예감인지 나쁜 예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단단히 조여졌다.
그래, 여기에 있는 것은 분명──내가 알고 싶은 것의 조각, 이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뚜껑이 닫혀있는 것 중의 하나에 다가간다. 뚜껑 부분은 반투명한 녹색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그 안을 보고, 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윽!”
거기에는, 한 명의 여성이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양손을 얽혀서,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조용히 자고 있었다.
어쩌면 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로 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가슴이 작게 상하하고 있는 것이 보여 안심했다. 그런데도 두근거림은 전혀 가라앉지 않는다.
그 관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건 모른다.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 왠지 답답해진다. 그래, 지금 바로 방에서 나가고,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하자, 그게 분명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눈이 고정되어──
“어…………라………….”
잘 모를 만취감에 습격당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라? 어라어라어라어라어라어라어라어라어라아…….”
배 안쪽에서 무거운 것이 솟구쳐 왔다. 그것은 곧바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 같다.
기분 나빠.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싸맨다. 머리가 아프다. 머릿속이 섞이는 것처럼, 흔들흔들 흔들렸다.
신체를 껴안듯이 웅크렸다. 바닥에 엎드린다. 뭔가를 토해낼 것 같아서, 하지만 토해지는 것은 색이 옅은 걸쭉한 액체뿐이었다.
서서히, 발밑에 뭔가가 퍼진다. 정신이 들었다. 피다. 새빨간 피가 몸에서 흘러넘치고 있다. 팔에서 다리에서 배에서 철퍽철퍽 흘러나오고는 아픔을 전해 온다. 전신이 땅에 얼룩진다. 그럴 리가 없다. 여기에 그런 것 있을 리 없는데. 있는 것 같아서. 부정할 때마다 좀 더 시야가 흔들렸다.
흔들, 흔들, 흔들. 뇌가 휘저어져서 그 안에서 뭔가가 찢어져 넘치고 그것이 엉망진창으로 섞이기 시작한다. 아아, 아아. 기분 나빠.
아아. 아아. 조금 있으면──나아져──싫어──나아질 것 같아──그건 틀렸어──뭐야 이거──내가 원하는 건──가──하──건──내가 바라는 건 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절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희망.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죽어 버릴 것 같다. 죽어?──아니 죽지 않아. 이런 일로 나는──왜냐하면 나는──『 』이니까!
“──코마에다!”
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엉망진창인 머릿속에, 눈 부신 빛이 펼쳐졌다.
* * *
이상한 시간에 낮잠을 잤던 만큼, 밤에 잘 수 없게 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히나타가 전혀 오지 않는 졸음을 기다리면서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오늘은 자기 전에 코마에다의 붕대를 바꿔주고, 잘자, 하고 방을 나간 후엔 한동안 식당에서 쿠즈류와 소우다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이제 잔다고 말하길래 자기 방으로 올라왔지만, 아무래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애당초, 평소라면 아직 작업하고 있을 시간이다, 잘 수 있을 리가 없다고, 결국 히나타는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 해도 컴퓨터 룸에 출입하는 건 아직 금지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용의 단말을 꺼내서 전원을 넣었을 때, 갑자기 모니터에 소녀의 모습이 비치고,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나나미가 말했다.
『히나타 군. 코마에다 군이, 프로그램 룸에 들어갔……나 봐.』
“뭐라고?”
프로그램 룸의 입구는 잠금이 걸려있다. 열쇠는 정맥인증과 패스워드.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코마에다의 몫도 등록은 했다. 그러나, 중요한 패스워드는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코마에다는 그 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럴 터였다, 하지만.
──아차. 코마에다의 재능은, 뭐였더라?
그 행운이 있다면, 마음만 먹으면 몇만분의 일의 확률조차 간단하게 찌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은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니니, 그 난이도면 진심이 된 코마에다의 앞에서는 어린애 속임수 같은 거겠지.
그래도 그가 저 방에 관심을 품는 기색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분부를 지킬 것 같았는데, 그것은 과신이었나.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방에는 아직, 프로그램 안에서 죽은 나머지 멤버가 계속 자고 있다. 즐비하게 캡슐이 늘어선 그 광경은 코마에다의 기억을 충분히 자극할 것이다.
물론, 지나친 걱정으로 끝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심장이 기분 나쁘게 두근거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아줘! 바라면서 히나타는 방을 뛰쳐나왔다.
급히 달려온 프로그램 룸은 평소와 같은 희미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대로의 무기질적인 기계음이 지금도 조용하게 울리고 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것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캡슐 옆에 웅크린 등.
“코마에다, 이런 곳에서 뭐 하는 거야?!”
억누르지 못하고, 감정에 따라 외쳐 버렸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움찔, 하고.
크게, 등이 떨렸고.
그리고, 시간이, 멈춘다.
코마에다는 그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모습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히나타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코마, 에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부르는 목소리도 떨려서.
하지만 그런 자신보다 지금은 눈앞의 코마에다의 모습을 그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응하듯이, 코마에다의 몸에 겨우 움직임이 있었다.
“히나타 군.”
“──윽?!”
이름을 부른 것뿐이다. 그런데도,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불길한 무언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저기, ”
코마에다가, 휙, 돌아본다.
돌리면서, 고개를 든다.
그리고 광기에 차──크게 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왼손, 왜 없는 거야.”
거기에 있던 것은, 혼연한 어둠.
다양한 색을 한 어둠이 겹쳐, 거기에는 이상하게도 빛조차 보이는──그런, 기시감을 느꼈다.
빨려 들어갈 듯한 혼돈의 색. 끝없이 타락해 가는 듯한, 깊고, 음침한, 어둠의 색. 그것은 분명──광기의 색.
삼켜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에 세운 손톱의 아픔이 어떻게든 자아를 묶어주었다.
“저기. 왼손, 어디?”
반복하는 그것은 순진한 질문 같이도 들렸다. 하지만, 다르다. 뭐야, 이 코마에다는. 마치. 마치──
“──몰라. 나랑 만났을 때는 이미, 너의 왼손은, 없었어.”
“……그래.”
간신히 매정함을 가장한 채 그렇게만 대답하자, 코마에다는 고개를 숙였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히나타가 만났을 때는 이미 『코마에다의 왼손』은 없었다. 그 행방은 모른다.
하지만, 『왜 없는 거야』 ──그 물음을 더하면, 이번에는 거짓말을 토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지금의 코마에다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고 코마에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본다. 뭔가 말하기 전에 이쪽에서 말을 걸면 된다고, 그렇게 눈치챈 순간에 코마에다는 머리를 들어 올려, 그리고.
“그런가, 히나타 군에게도 모르는 것이 있구나.”
“아, 아아.”
다시 얼굴을 올렸을 때, 띄워지고 있던 것은 순진한 미소로, 그것에 안심함과 동시에 가슴 안쪽이 웅성거렸다.
방금의 코마에다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마음 어딘가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일순간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왜 이 방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은 건가. 여기가 무엇을 위한 방이며, 여기에 있는 건 누구인가──하지만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히나타는 그것을 추궁하지 못했다.
“미안해, 이제 방으로 돌아갈게.”
더는 묻지도 못하고, 걷기 시작하는 코마에다를 배웅했다.
등을 돌린 순간, 코마에다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켜지고 사라진 것을, 히나타가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다.
4.
오늘도 오늘대로, 재버워크섬에는 온화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코마에다가 일어난 직후야말로 어수선한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지나고, 평소의 일상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 섬에선 뭔가를 하라고 누군가에게 강요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반대로, 스스로 뭔가 일자리를 찾지 않는 한, 얼마든지 나태하게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깨어난 직후라서 기억상실에 걸린 코마에다 정도고, 모두 각각 지금 할 수 있는 일을──예를 들어 집안일이나, 자기 수련이나──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는 쪽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소우다의 메카닉으로서의 솜씨는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여하튼 미래기관의 사람이 퇴거한 이상, 이 섬의 모든 기계 점검은 소우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실제로는 히나타도 같은 일을 하면 되는 것 같지만, 그다지 그의 그 힘에 기대고 싶지 않았고, 히나타에겐 히나타의 일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우다는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한다고 결정하고 있었고, 실제로 보람도 있었다. 점검 외에도 나에기에게 부탁해서 재료를 받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도 한다.
소우다는 오늘도, 건물 내의 점검을 겸해 걸어 다니고 있었다. 크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하고 있자, 다음 목적지 앞에서 그 뒷모습을 발견하고, 무심코 말을 걸었다.
“오오? 어떻게 된 거야, 코마에다. 이런 곳에서.”
“소우다, 군.”
되돌아본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 줄 몰랐다는 의외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마에다의 그런 부분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소우다는 신경 쓰지 않고 목적지인 세탁소를 향해 걸어간다.
“뭐 빨려고─? 혼자서 몰래 빨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도 있는 거야?”
“아니야, 잠시 산책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 그래. 그러면 잠깐 거기, 비켜줄래? 안의 에어컨을 고치고 싶어.”
“아, 응.”
코마에다는 얌전하게 길을 양보하고, 접사다리를 멘 소우다는 안으로 들어간다. 세탁소에는 세탁기가 몇 개나 줄지어 있으며, 그 구석에서 달각달각 변변치 않은 소리를 내며 바람을 내보내는 기계를 소우다는 올려보았다.
“그거, 고장 났어?”
“으악!”
거기서 갑자기, 배후에서 말을 걸어와, 소우다는 놀란 소리를 지른다. 황급히 돌아보자, 거기에는 코마에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뭐야, 놀라게 하지 마!”
“아하, 미안해. 저기, 그거로 뭐할 거야?”
“아아, 지금부터 고칠 거야.”
“나도, 보고 있어도 될까?”
“응, 아아. 방해는 하지 마. 그리고 바로 뒤에 서 있지 마. 정신 사나우니까.”
“응, 고마워.”
그렇게 고하면, 코마에다는 허둥지둥 벽 쪽으로 이동했다. 소우다에게는 불안한 게, 코마에다 쪽이 키가 크다. 위압감은 없지만, 뒤에 서 있으면 진정이 되지 않는다.
소우다는 접사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손쉽게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드라이버를 휙 돌리고, 비치된 에어컨을 순식간에 분해하기 시작한다. 마법과 같은 솜씨였다.
그리고 무릎 위에 부품을 얹으며 안의 모습을 엿보고 있자,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을 깨닫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네가 히나타랑 같이 안 다니다 별일이네.”
그것을 들은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아무리 나라도 항상 히나타 군에게 찰싹 붙어 다닐 리 없잖아.”
“뭐, 저 녀석, 항상 바빠 보이기도 하고. 46시 내내 널 보살피지는 못하겠지.”
이야기하면서도 척척 작업은 나아간다. 『초고교급 메카닉』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장난감으로 노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움직이고 있자, 거기에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소우다 군이네.”
“응?”
“굉장해. 간단하게 하는 것 같아도 완벽하게 되니까.”
“뭐, 내 경우엔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좋아하는 일이면 잘하게 된다는 거 아니야?”
“……역시 대단해. 왜냐하면, 난 좋아하는 것은커녕,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걸.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소우다 군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라니.”
그만 손을 놓고, 코마에다를 보게 된다. 그 얼굴은 당연한 걸 말했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코마에다가 스스로 말한 대로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라고는 소우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코마에다가 저질러 온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확실히 행운이라는 재능 덕이 있어도, 처음부터 계획할만한 머리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지금은 그 자각은 없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을 잃기 전조차, 코마에다는 이런 느낌이었던 것을 떠올리고, 작업하던 손이 멈추어 버렸다.
“왜 그래? 나 따위에게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오, 오우.”
코마에다에게 들은 대로 작업을 재개시키면서, 소우다는 왠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금, 모래를 씹은 듯한 불쾌함이 입안에 남아 있다.
어째서일까, 뭔가, 지금의 코마에다에게는 위화감이 있었다. 어딘가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일그러짐. 마치 “평소의 코마에다”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기억이 없을 뿐이지, 지금의 코마에다도 전의 코마에다와 같은 인간이니까, 그런 일도 있어서 이상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손을 움직이자, 기억을 잃기 전과 지금, 그 코마에다의 대비가 머릿속에서 떠올라서──그러나 그것은 다음 코마에다의 언동으로 전부 날아가게 되었다.
“어라? 이거, 누구 거지.”
코마에다의 목소리에, 뭐야? 하고 그쪽을 바라보고, 소우다는 단숨에 눈을 부릅떴다.
코마에다는 눈앞에서 손에 가진 것을 펼치고 있었다.
아마, 세탁기 안에 있던 물건이었을 것이다──그것은, 여성용 속옷이었다.
“뭐, 뭐 뭐 뭐, 너…….”
지금, 이 섬에 있는 여성은 두 사람뿐. 그리고 코마에다가 지금 들고 있는 럭셔리한 속옷을 몸에 두르는 사람이라면──
“코, 코, 코마에다! 바로 그거 놓거나 나한테 넘겨!!”
“어, 설마……소우다 군 거야?”
“아니라고, 바보야! 당연히 소니아 씨 거지! 그건 네놈 따위가 손에 들어도 되는 게 아니라고!!”
접사다리에서 내리려 해도 무릎 위의 부품이 방해해서 그러지 못하고, 그래도 덜덜 떨며 떠드는 소우다를 보고, 코마에다는 그 속옷을 세탁기 안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소우다가 안심의 숨을 내쉬자, 코마에다는 갑자기 미소를 짓고.
“소우다 군은──소니아 씨를 좋아하는구나.”
“후엣햐, 햐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이번엔 사레가 걸려서 소우다는 반론 아닌 반론을 말한다. 게다가, 어쩐지 즐거운 듯이 코마에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싫어해?”
“그게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아아, 역시, 소우다 군은 여전히 소니아 씨를.”
“시끄러워 너 이제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 제가 어떻다는 건가요?”
“히엣, 그, 소니아 씨.”
끼어든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어느새 들어온 것인지, 방 입구에 빨래 바구니를 끌어안은 소니아가 서 있었다. 소우다는 안타까울 정도로 당황해서, 그 모습을 본 소니아는, “어머, ” 우아한 몸짓으로 입가에 손을 대었다.
“작업 중이셨군요. 실례했어요, 나중에 뵐게요.”
“아, 잠깐 기다…….”
소우다가 말리기 전에 소니아는 세탁실에서 나가 버린다. 추욱 어깨를 떨구면서도, 소우다는 짜증을 내면서 드라이버를 돌렸다.
“가버렸네, 소니아 씨”
“그렇네.”
“아쉬워.”
어떤 악의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코마에다에게, 성격 더럽네, 입안으로 푸념을 흘린다. 왜 기억이 없는 코마에다한테까지 이렇게 휘둘려야 하는 거야.
뭔가 반박할 수 없는지 생각하고, 결국 입에 낸 것은, 반격이 되는지 미묘한 말이었다.
“그보다, 너야말로 히나타를 엄청 좋아하지.”
“…….”
“코마에다?”
틀림없이, 『응, 맞아』라든지, 그런 긍정적인 말이 바로 되돌아올 줄 알았지만 코마에다는 골똘히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다. 소우다가 이름을 부르자 겨우 얼굴을 들고, 뭔가 자신에게 물어보는 듯한 말투로,
“그렇네. 나는 히나타 군을, 좋아할지도 몰라.”
“할지도 모른다니.”
“고마워, 소우다 군. 그럼, 일 열심히 해.”
그렇게 혼자 멋대로 납득한 것처럼 끄덕이고, 코마에다는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세탁소에서 나가 버린다.
“오, 오우……?”
왠지 석연치 않은 것을 느끼면서도, 소우다는 제 일로 돌아갔다.
*
한밤중, 자기 방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이미 날짜가 바뀌고 있는 시간으로, 이런 시간에 일어나 있는 녀석이 그 밖에도 있었나, 생각하면서 히나타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야?”
“……히나타 군.”
그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는 알았다. 안쪽에서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자 거기에는 코마에다가 서 있었다.
와버렸어, 쑥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은 마치 애인의 방을 방문하는 소녀와 같아서, 그러나 소녀라고 하기에는 코마에다는 연령도 성별도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이상하게 어울리니까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히나타는 그를 불러들인다.
“코마에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물어보자, 코마에다는 왠지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팔에는 베개를 안고 담요를 끌고 있다.
“있잖아……무서운, 꿈을 꿨거든. 히나타 군. 부탁이야, 같이 있어 주면, 안될까.”
“……무서운 꿈?”
“응. 엄청 무서운 꿈.”
말하면서 눈을 내리깐다. 그 뺨이 평소보다 혈색 나빠 보였다. 아마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그 꿈을 꿨을 것이다.
“……어쩔 수 없네.”
히나타의 한마디에 코마에다는 안심했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 큰 남자 둘이서 같이 자는 것도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이런 코마에다를 내버려 둘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일도 있었다. 그날 밤, 코마에다가 프로그램 룸에서 보인 표정이다. 기억을 잃은 그가, 그런 얼굴을 한 것이 걸렸다.
혹시 그 밤에 기억을 되찾은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음날 얼굴을 마주쳤을 때는 코마에다는 전날 밤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깊게 캐묻지 못했지만, 거짓말을 내뱉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일시적인, 몽유병 같은 상태였던 것은 아닌가, 전과 변함없이 순진한 미소를 짓는 코마에다의 모습에 그렇게 결론 붙이고 있었다.
지금은 평소의 표정으로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몽유병도 없겠지만, 하룻밤 옆에서 모습을 보는 것쯤은 괜찮을 것이다.
“침대가 좁아도 참아.”
“엥. 나는 바닥에서 자려고 했는데.”
“바보야. 그렇게 둘리 없잖아.”
자, 팔을 붙잡고, 당황하는 코마에다를 침대에 앉힌다.
베개를 빼앗아 자신의 베개 옆에 둬서 결국 더 좁아졌지만, 하룻밤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머지는 코마에다의 잠버릇이 나쁘지 않기를 빌 뿐,
“그럼 이미 늦었고, 빨리 자자.”
“어, 아,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담요를 덮으며, 코마에다는 침대에 올라왔다.
그러나 예상했던 일이지만, 키 180을 넘는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자기에는 상당히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옆의 기색 같은 건 쉽기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니까…….”
“그, 그치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같은 방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서.”
“아, 나도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네, 아마…….”
“그랬어?”
“그랬냐니……뭐, 그랬는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 자게 되었고, 그 이후에 같이 잘 상대가 있었던 적도 없다.
──코마에다는 어땠을까.
그렇게 떠올린 것은 지금의 그가 아닌, 기억을 잃기 전의 그의 모습.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생각할만한 게 아니잖아, 그렇게 그 사고를 뿌리치고 있자, 코마에다가 떠오른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 그래도, 전에, 히나타 군과 같이 잠들었을 때는 굉장히 잘 잤어. 분명 히나타 군이 함께였으니까 그런 걸 거야.”
“별로 나라서 그런 건 아닐 텐데.”
“어……그럼, 소니아 씨한테 갔어야 했나?”
“왜 거기서 소니아야! ……됐어, 내가 있는 곳이면 원하는 만큼 와도 돼.”
“고마워, 히나타 군은 정말 상냥한 사람이네.”
직설적인 말이 간지럽다. 그것을 떨쳐내듯이, 히나타는 방의 불을 끄고 자신도 눈을 감았다.
그러면 바로 근처에 있는 체온이 아까보다 강조되어, 더욱 진정되지 않게 된다. 코마에다는 공간을 신경 쓰고 있는지, 아까부터 꿈지럭꿈지럭 움직이고는 마지막엔 히나타의 잠옷을 꽉 잡아 왔다.
“어, 어이 코마에다, 그렇게 매달리지 않아도 나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자, 좀 더 떨어지지 않으면 자기 힘들잖아?”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떨어질 거야.”
마치 아이 같았다. 정말, 어쩔 수 없네, 히나타는 몇 번째 쓴웃음을 띄웠다. 하지만, 자기 힘들어지는 건 변하지 않는다.
“저기, 코마에다──.”
역시, 좁지 않나, 그렇게, 말하려던 말은, 입술에 닿아 온 열에 흡수되어 가고 말았다.
닿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무언가. 도중에, 후, 숨이 걸려서, 그 정체를 알았다.
“~~~~?!”
갑작스러운 일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놀라서 굳어있던 사이에 코마에다의 입술은 멀어져 갔다.
“너.”
“히나타 군, 잘자.”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알리고, 코마에다는 곧바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렸다. 히나타는 아연실색한 채로, 당분간 굳어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히나타는 자지 않고, 하지만 꼼짝도 못 해 번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려고 해도, 무엇을 하든, 옆에 있는 코마에다를 의식해 버려서 진정되지 않는다. 그 의식이 아무래도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슬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호흡을 반복하고, 그래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왠지 한심한 기분이 된다. 설마 정말로 나나미의 말대로 되다니, 억울한 것보다도, 애초에 그 코마에다로, 남자로, 저 코마에다다, 그럴 수가 있나.
그것은, 이렇게 곁에 있어서, 정이 솟아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따라지고, 의지 받아서, 왠지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좋아하게 될 줄은.
마지막 저항으로, 마음속으로 열변을 토해보지만, 그것은 떠올리고는 바로 사라지는 거품 같은 것이었다.
──프로그램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단순하게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코마에다의 본성을 아는 것에 따라 처음의 좋은 인상은 날아가 버려, 대신에 혐오감이 늘어갈 뿐이었다.
코마에다에 대한 감정은, 싫다,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것보다도, 혐오, 다. 무엇을 혐오하고 있었나. 그것은 코마에다의 태도였다. 희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타인의 생명도, 자신조차도 태연하게 희생할 수 있는 그 태도가, 이해할 수 없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지금은 그냥 얌전한 녀석밖에 없다. 그것과 약간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솔직하다는 걸까.
아마, 코마에다는 원래 이랬을 것이다. 그것이, 처절한, 그야말로 제트코스터처럼, 다음에서 다음으로 불운과 행운의 물결에 습격당하는 인생을 겪었기 때문에 일그러져 버렸다.
거기에 동정의 여지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용서되지 않지만, 그것은 이 섬에 있는 누구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지금의 아무것도 모르는 코마에다를 증오할 수 없다.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는데 함부로 대할 정도로 차갑게 굴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코마에다에게는 순수한 호의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이전의 그와의 큰 차이였다.
이렇게 있으면, 혐오스러웠던 그 모습이 희미해지고 지금 이 모습만이 자신에게 진실이 되어간다.
주저하고, 하지만 결국 머리를 껴안았다. 아무렇게나 뻗은 푹신푹신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자, 간지러운 듯한 숨이 코에서 새어 들려왔다. 그런데도, 눈을 뜨지 않는다. 그 모습에서는 자신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신뢰를 느꼈다. 코마에다에게 받는 호의는 분명, 미지의 상황에서 상냥하게 대해주는 상대로, 그야말로 아이가 부모에게 향하는 신뢰에 가까운 것이겠지.
그러니까, 아까의, 키스도. 자신이 처음 생각한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닿기만 한 그것은, 어쩌면 어렸을 때의 그가 부모에게서 주어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문득 생각했다. 잃은 부모님과의 추억, 그의 몸에 밴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코마에다가 내뱉은 그의 과거 안에는, 부모님과 함께 해외에 갔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글로벌적인 가정이라면, 굿나잇 키스도 했을 가능성은 있다.
마음대로 그렇게 수긍하면서 눈을 감았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곧 바로는 잠들 수 없었다. 진정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혹사하고 있는 두뇌도 몸도 지쳐있다.
창밖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걸 희미하게 느낀 것을 마지막으로, 느린 잠이 간신히 맞이하러 오는 것이었다.
──깨달았을 때는, 모래사장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은 극채색으로, 거기에 초승달과 태양이 검게 빛나고 있다.
아이가 크레용으로 휘갈겨 쓴 듯한, 터무니없는 광경.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히나타는 빛나는 모래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라고, 곧바로 알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보려는 건 아니지만, 그저 하늘을 무수한 별똥별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아 역시 꿈이네, 라고 생각할 뿐이다.
──히나타 군.
그때,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더니, 눈의 앞에 코마에다가 서 있었다. 계속 거기 있었나, 지금 나타났는지조차 모호한 그는 웃음을 섞어 재차 히나타를 불러왔다.
──히나타 군, 있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미소를 지웠다.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어서──그때, 등에 그림자를 느끼고 뒤돌아본다.
거기에는, 그곳에도, 앞에 서 있는 똑같은 그가 서 있었다.
코마에다다. 그렇지만 앞에 서 있는 악의가 없는 표정의 코마에다가 아니다. 자주 본, 함축이 있는, 진의를 알 수 없지만 역시 진지한 표정.
그는 뭔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작게 입을 움직일 뿐이다.
이쪽에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잣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마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물어보려고 하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힘껏 입을 움직이며 전하려고 하지만 금방 사라져버린다. 전하려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세계라, 코마에다는 알고 체념하는 것 같았다.
──아아 그런가. 코마에다에게 있어서는 현실도 이 꿈과 같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그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가 몇 번이나 입에 내던 희망이라는 애매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소리 내서 원하더라도, 곧바로 사라져 갔을 테니까. 그러니까, 얻을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갑자기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를, 잊지 말아줘──
──뭐.
되물으려고 해도 목소리는 멀어지고, 흐려진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허상의 그에게 말을 던지면서, 손을 뻗는 그 모습 그대로, 히나타는 짧은 잠에서 눈을 떴다.
커튼 너머에서 희미하게 아침 햇빛이 들어온다. 밖에서는 오와리가 트레이닝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의 방문을 알고, 조심스레 자신의 팔 안을 확인한다.
모르는 사이에 팔베개 자세가 되고 있었는지, 묵직하게 팔이 무겁게 저려서.
거기에 머리를 얹은 코마에다는, 편안하게 잠든 얼굴을 띄우고 있었다.
5.
똑똑, 문을 노크하자, 방 안에서, 들어와, 밝은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문을 열면서 방의 상황을 엿보자, 읽고 있던 책에서 고개를 들은 코마에다가 조금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하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런 그에게 생긋 미소지으며 소니아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코마에다 씨.”
“어라, 소니아 씨?”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코마에다에게 끄덕이자, 소니아는 티 왜건을 밀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히나타 씨가 아니라서 죄송해요. 히나타 씨는 지금 손을 뗄 수 없는 것 같으니 참아주세요.”
“어, 아니, 응.”
“그래서, 오늘은 제가, 코마에다 씨와 함께 차를 마시고 싶어서, 왔어요.”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고, 티 왜건 위에 있는 티세트를 드러낸다.
“너가?”
“네. 코마에다 씨와는 지금까지 그다지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으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게다가, 요전 날, 함께 차를 마시기로 약속했죠.”
“하지만, 왕녀님과 대화한다니, 송구스러워. 나는 네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데?”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에요. 게다가, 같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어요.”
생긋, 미소를 지어 그 이상은 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소니아는 들고 온 다기에 손을 뻗었다.
『초고교급 왕녀』 소니아・네버마인드는 태어날 때부터 왕녀였다.
그 평범치 않은 기품은 보통 사람과는 선을 긋고 있으며, 누구나 그녀를 앞에 두면 엎드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키보가미네 학원에서는 소니아는 왕녀임과 동시에 한 명의 학생이었다. 같은 학원의 학생들, 동년대의 『초고교급』이라고 칭해지는 모두는 조국에서는 얻기 힘든 대등한 동료였다.
코마에다 나기토라는 그도, 그 자신의 성질이 어떠한 것이든, 그녀에게는 같은 키보가미네 학원의 동료, 그 인식에는 일관돼있음이 틀림없다.
소니아는 자신이 프로그램에서 깨어난 이후, 아직 잠든 동료들의 기상을 쭉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 그렇기에 코마에다가 깨어났다는 그 희소식을 그녀는 오로지 기뻐하며 받아들인 것이다.
지금의 소니아는 나머지 모두의 기상을 기다리며 이 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익숙지 못한 가사 일조차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절망에 찬 조국에 남기고 온 국민의 일을 잊었던 적은 하루도 없다. 본심을 말하자면,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절망에 물든 자신이 미래기관에 보호될 때까지 어떤 소행을 벌여온 것인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괴로워진다. 단지 절망을 뿌리기 위해서 국민을 절망으로 선동하고 살육을 허락, 혼란을 일으켜 왔다.
그 처참한 광경은 지금도 머릿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니아는 나라에 돌아가서 나라를 어지럽힌 그 속죄를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선동해서 절망에 물든 백성들의 앞에 절망에서 빠져나온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혼자 힘으로는 나라를 절망에서 해방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도.
대책 없이 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그저 개죽음일 뿐이라고,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조국으로 날아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래기관에서는 절망의 잔당이라며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자신들은 이 섬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 게다가 거역한다면 미래기관은 자신들을 역시 절망에 빠진 그대로라고 판단해서 간단하게 그 목숨을 가져갈 것이다. 그것이 자신 한 명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철없는 행동으로 소중한 동료들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여기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동료들이 깨어나는 그때를. 자신들이 이젠 절망 따위가 아니라고, 알아줄 때를.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그날은 그렇게 멀지 않다고, 소니아는 믿고 있다. 섬에서는 히나타가 프로그램 해석에 손을 쓰고 있고, 섬 밖에서는 나에기네가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더 좋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니아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오늘 이 방에 온 것도 그중 하나다.
지금까지 자신들은 코마에다를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은 없어졌지만, 아니 기억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그와도 교류를 깊게 하자고 다짐했다.
“자, 부디.”
“……감사히, 먹을게.”
오늘의 홍차는 토가미가 선택해서 보내준 보장된 맛의 찻잎이다. 받침에 올린 티컵은 나에기가 선택한 귀여운 동물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차와 같이 도넛도 그들이 가져와 준 보급물자 안에 있던 것이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홍차에 맞춰 보통이라면 더 폭신한 케이크나 아기자기한 과자가 나와야 했을 텐데 꽤 커다란 크기의 도넛이 놓여 있는 것은 약간 박력이 있다.
하지만 소니아는 망설이지 않고, 작은 입으로 냠 도넛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정말로 맛있다는 얼굴을 하는 것을 본 코마에다는 이끌리듯이 작게 웃음을 짓고 자신의 몫을 손으로 집는다.
“이 도넛, 소니아 씨가 만들었어?”
“아뇨, 유감이지만 제가 만들진 않았어요.”
“그렇게 사과하지 말아줘, 미안해, 나 따위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추욱 아쉽다는 듯 어깨를 떨어뜨린 소니아에게 코마에다는 미안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한다.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소니아는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아뇨.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제가 나쁜 거예요. 그럼, 저는 이 섬에 있는 동안에 도넛의 달인이 되겠어요!”
라고 선언했다. 그런 모습에 코마에다는 쿡쿡 웃으며, 그리고 생각난 듯 물어왔다.
“저기,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모두의 모습이 평소와 달라 보였는데, 무슨 일 있어?”
“네?”
허를 찔린 소니아는 순간 대답이 막혔다.
오늘은 키리기리 일행을 태운 미래기관의 배가 섬에 오는 날이었다. 지금쯤 히나타는 그 마중과 대응을 하고 있겠지만, 코마에다에게는 미래기관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직 알리지 말자고 다 같이 정했다. 그러므로 코마에다에게는 그저 오늘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만 전했을 터였다.
그러니 오늘의 손님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음, 조금 생각하면서 소니아는 이쪽의 모습을 엿보는 코마에다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그건 말이죠, ……저희만의 비밀 이야기지만, 오늘의 파티 준비를 하고 있어요!”
“파티?”
“네, 오늘 밤은 모두 불꽃놀이 파티를 하는 거예요!”
“엥?”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이번 보급물자 안에 몰래 폭죽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파티하는 건 실은 아직 명확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이후 모두를 설득시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건 다 같이 코마에다 씨를 놀라게 해주려고 계획하고 있던 일이므로, 부디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그것을 들은 코마에다는 재밌겠다는 얼굴을 하고, “그건 기대되네”라며 웃었다. 아무래도 이해해준 것 같다. 안심하면서 소니아는 마른 목을 홍차로 적셨다.
그런 소니아를 싱글벙글 바라보고 있었던 코마에다는 갑자기 작은 중얼거림을 흘린다.
“……소니아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네.”
“──네?”
말을 들은 소니아는 순간 컵을 든 손을 멈추고 코마에다를 봤다.
그 말은 문자만을 본다면 이쪽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울림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그 뒤에 그늘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니아의 눈에 비치는 그의 표정은 아까까지와 변함없는 순진한 것이었다. 소니아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나 따위가 소니아 씨에게 그렇게 바라봐지다니, 왠지 부끄럽네”라고, 어쩐지 곤란해하며 웃어 보인다.
“앗, 무례에 사죄드려요.”
“엇, 내 쪽이야말로 보기 흉한 거 보여버려서 미안.”
“아뇨, 저야말로…….”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아까의 직감은 분명 기분 탓이었다고, 소니아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하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은 것이 가슴의 안쪽에 뿌리박혔다.
*
“──나타 군, 저기, 히나타 군?”
이름을 불러서, 한 템포 늦게 돌아보자, 거기에는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누른 키리기리가 서 있었다.
마침 하품이 나올뻔한 걸 참고 있었다. 대답하면서도 그 흔적이 남아, 왠지 멍청한 대답이 되어버려, 게다가 쿠즈류가 어이없다는 듯이 태클을 넣어 온다.
“너 뭘 멍하니 있는 거냐, 정말.”
“아아, 미안.”
한편으로, 키리기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가만히 히나타를 바라보고 나서, 그 관찰 결과를 솔직하게 말했다.
“수면 부족이네.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안 좋아.”
“그래, 알고 있다니까.”
그런 키리기리의 충고를 쓴웃음을 지으며 회피해서, 그런 히나타의 태도에 그녀는 그 이상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하지만 약간 책망하는 눈을 향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수면 부족은 평소와 달리, 그녀가 말하는 열심히 작업한 탓이 아니라 코마에다 탓이다.
그날 밤 이후, 코마에다는 매일 밤 히나타의 방에 와서는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다.
그런 상황에도 서서히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자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를 매정하게 대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이렇게 키기리기한테 혼나는 건 어쩐지 잘못 지적하는 것도 같았지만, 그렇다고 자백할 수도 없었다.
“그것보다, 빨리할 일을 끝마치자고.”
불편한 화제를 끝마치려고 히나타가 재촉하자, 키리기리도 재빨리 사고를 전환했다. 후우, 숨을 내쉬고 곧바로 선착장에 모인 모두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 그럼 가볼까, 아사히나 씨는 물자 확인과 건물 내부로 옮기는 걸 부탁할게.”
그렇게 키리기리가 말하면, “알겠어!” 활기차게 대답을 한 아사히나는 뛰어가듯이 배로 향했다.
그녀는 나에기의 동료 중 한 사람으로, 역시 미래기관에 소속하고 있다. 항상 침착하고 냉정한 키리기리와는 대조적으로, 명랑 쾌활한 체육계의 여성이다.
아사히나는 아직 잘 모르는 모두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섬에 올 때 깨어난 모두를 밝게 격려했다. 붙임성이 좋은 그녀는 히나타 일행에게도 완전히 친숙해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배웅하고, 키리기리는 재차 히나타에게 돌아서고,
“히나타 군, 섬 중앙을 대충 확인하고 싶어. 나랑 같이 와주지 않겠어?”
“그래, 알겠어. 너희는 아사히나를 도와줘.”
“오우!”
건물에 남아 있는 소니아 이외의 세 명이 수긍하고, 아사히나의 뒤를 쫓아 배 쪽으로 향해 간다.
반입된 물자를 보고 환성이 오르는 것을 들으면서 히나타는 키리기리와 함께 섬의 중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럼,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네.”
“아아, 그런 것 같아.”
섬의 중앙을 대충 확인하고 나서, 히나타는 키리기리와 함께 식당으로 돌아왔다.
보급물자를 나른 다른 사람들은 한발 빨리 모였으며, 거기에서는 예정대로 소니아가 주최하는 다도회가 열리고 있다.
그 중앙에서 오와리와 아사히나가 경쟁하듯 도넛을 먹어 치워가는 광경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 경치는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것을 곁눈질로 보고 비어있는 테이블에 도착하자 곧바로 소니아가 홍차와 간식으로 도넛을 가져다준다. 감사를 표하고, 두 사람 모두 잠시 무언으로 그것을 맛보았다.
그리고 홍차를 다 마시고 키리기리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코마에다 군에 대해서인데.”
“……오늘은 아직, 안 만나면 안 될까.”
“그래. 그럴 생각이야. 다만, 신경 쓰이는 보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 코마에다에게 특별히 변화는 없어.”
“정말로?”
거듭해 물어와서, 히나타는 미간에 힘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키리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코마에다가 프로그램 룸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 일시적으로 코마에다의 모습이 돌변한 것은 미래기관에도 보고되었다. 하지만 정기 통신 때, 나에기에겐 그 후에 문제는 없다고 전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기억의 경계선에 닿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후에 그 방에는 접근시키지 않았다. 상태는 안정되어 있으며, 기억을 되찾을 기색은 없다고.
“아직, 그 보고는 우리에게 멈춰있어. 그렇지만, 만약의 일이 생기면.”
“괜찮아. 우리도 쭉 곁에 있고, 저 녀석을 보고 있어.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거고──돌아간다 해도, 제대로 대처할게.”
그렇게,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그런 히나타를 키리기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알았어. 널 믿을게.”
그것에 안도한 히나타는 이어지는 말에 또 몸이 굳어진다.
“──라고, 나에기 군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윽, 키리기리, 너…….”
“나는, 그런 성격이야.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알겠어? 너희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도 이해해. 하지만 코마에다 군을 조심해. 너희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를 위해서도.”
그만큼 말하고 키리기리는 자리를 떴다.
“차, 잘 먹었어. 맛있었어.”
소니아를 향해 말하고, 이어서 아사히나에게 말을 건다. 도넛으로 만복이 되어 의자에 가라앉아 있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면서 “그럼, 또 보자, 다들!” 말하고 키리기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오─ 또보자─.”
나머지 모두는 각각, 아사히나에게 화답하듯 손을 흔들거나 하고 있다. 하지만 히나타는 주위에 남겨진 것처럼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금의 키리기리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숨어 있던 불안이 발굴된 것처럼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서서히 침식해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을 뿌리치고 싶어서. 히나타는 지금 여기서 물어봐도 의미가 없는 의문을 입에 담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지금, 뭐 하고 있어?”
“으음, 두 분의 배가 왔을 때쯤에 제가 방에 갔을 때는 책을 읽고 있었어요. 차와 과자를 내서, 잠시 함께 이야기하고 왔고요. 그 후엔 전 여러분에게 낼 차를 준비하기 위해서 방을 나와 모르겠으나, 아마 방에 계속 계시지 않을까요.”
“그 후에, 본 녀석은 있어?”
일어서서, 그 자리를 둘러보면서 묻는다. 어딘가 절박한 그 태도를 의심하는 것처럼 쿠즈류가 눈살을 찌푸린다.
“야 히나타, 왜 그래. 방에 있다고 했잖아?”
“……정말로, 방에 있어?”
이 자리에 없다, 그건 당연하다. 두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일부러 그랬으니까. 방에 있으라고 말한 것도 자신이고, 그 말에 코마에다가 따르고 있다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 지금의 코마에다라면, 방에서 얌전히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데,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히나타를 보고, 소우다는 기가 막힌 것처럼 웃었다.
“뭐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저 녀석, 기억이 없어지고 나서는 완전히 평범하게 솔직하고 좋은 녀석이 된 것 같고.”
“……평범하게, 솔직하고 좋은 녀석?”
“너, 코마에다가 버거웠지 않았냐?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렇지만 저 녀석, 저번에 나한테 『역시 소우다 군이네』라고 말했다고. 전혀 비아냥거리지도 않고. 그 코마에다 말이야?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앗.”
소우다의 말을 듣고, 소니아가 뭔가를 떠올린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코마에다 씨, 소우다 씨에게 『소우다 군은 여전히 소니아 씨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대체 무슨.”
“우와 우와 우와 소니아 씨 그건 잊어 주세요!”
“너, 시끄러우니까 닥치라고!”
만복으로 의자에 가라앉아 있던 오와리에게 고함을 듣고 소우다는 마지못해 입을 다문다. 그렇지만 지금 소니아의 말로 히나타는 문득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품어 왔던 위화감의 대답이었다.
“……저기, 소우다. 코마에다가 너한테 말했어? 『역시 소우다 군이네』라고.”
갑자기 앞의 이야기를 되돌린 히나타에게 소우다는 허를 찔린 듯이 뒤돌아보았다.
“어, 아아, 말했지. 그게 어쨌는데.”
“뭐가, 역시야?”
“엥?”
의도를 몰라서 어리둥절해서 하는 소우다의 뒤에서 쿠즈류가 냉정하게 분석한다.
“그야, 소우다가 『역시 초고교급 메카닉이다』라는 거 아니야?”
“……왜 코마에다가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어.”
“그런 거, 아무도 그 녀석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그렇다, 초고교급, 같은 표현 자체를, 코마에다 앞에서는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소우다가 메카닉인 것도, 특별히 전하지 않았다.
“어, 아니, 네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잖아……그냥 내 작업 솜씨를 칭찬했을 뿐이지?”
“아니, 그것만이 아니야. 저 녀석이, 말했잖아, 너는 『변함없이 소니아를』.”
“우와 우와 우와 뭘 멋대로 말하는 거야 이 자식!”
“됐으니까 들어봐. 말했잖아 『여전히』라는 건!”
히나타가 강조한 그 한마디에, 조금 사이를 두고 소우다가 그 의미를 이해한 소리를 낸다.
“……아.”
“……실은 저도, 조금 전의 코마에다 씨는, 왠지, 위화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저 순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저의 기분 탓일까 하고…….”
“……나도야.”
그래, 언제부터인가. 생각할 것도 없다. 그날 밤, 프로그램 룸에서 코마에다를 발견하고 나서──조금씩, 위화감이 쌓여 왔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서, 자신의 기분 탓이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키리기리의 걱정도,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참이다.
하지만, 그것은──자신들에게 그쪽이 편했기 때문에 넘어가려 했던 것이 아닌가.
기억이 돌아왔는데 왜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가, 의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들은 바로는──
“……코마에다는──.”
확신에 가까운 것을 얻는 동시에 히나타는 달리기 시작했다. 싫은, 예감이 든다.
“어, 어이, 히나타?!”
당황하는 동료들을 남겨두고, 그 다리는 헤매지 않고 코마에다의 방으로 향했다.
*
선착장으로 향하는 도중, 키리기리는 무심코 걸음을 늦췄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그 기분 좋음을 마음껏 누렸다.
격리된 이 섬은 아직 외계처럼 오염되어 있지 않다. 여기는 자연이 많고 사는 사람도 적다. 그 때문인지, 시간조차도 천천히 온화하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섬에 올 때는 그 외계와의 차이를 실감한다. 섬에서 일상의 분주함을 떠나보내는 시간은 키리기리에게는 귀중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그밖에 미래기관의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생각을 펼치지 않고 끝낼 수 있다.
그들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깨어난 직후의 한때의 혼란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그들이 회복해 평온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있다.
코마에다 나기토. 나에기와는 성질이 다른, 초고교급 행운.
히나타에게는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그런데도, 가까운 시일 안에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키리기리 쿄코의 『초고교급 탐정』으로서의 감이다.
“……키리기리, 뭐 잊은 거라도 있어?”
멈춰서고 나왔던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키리기리에게 아사히나가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그런 그녀에게 키리기리는 고개를 젓고 앞의 방향을 바꾼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도 빨리 돌아가자.”
“응! 다들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열중해버려 늦은 시간이 되고 말았다. 벌써 해가 저물 시간이다.
올려다보면 저녁놀의 하늘은 붉고, 세계를 아름다운 색으로 감싸고 있다. 한 번은 절망에 물들기 시작한 세계에서도, 하늘의 색은 언제든지 마찬가지였을 터. 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하늘이 상쾌하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감개는 오래가지 않았다.
길 도중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여서 키리기리는 발을 멈추었다. 배의 조타사가 데리러 온 것일까 생각도 했지만, 떠오르는 실루엣에 바로 그건 아니라고 알고──키리기리는 단번에 경계를 강화했다.
“키리기리? 왜 그래…….”
덩달아 멈춰선 아사히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키리기리의 시선 끝을 쫓고, 그리고, 어, 놀란 소리를 낸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아사히나의 그 중얼거림은 키리기리도 품고 있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키리기리는 한발 빨리, 스스로 그 답을 찾아냈다.
“안녕, 벌써 가려고?”
“……코마에다 군?”
의아하게 그 이름을 부르자, 그는 십년지기 친구를 대하듯 친근하게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반동으로 내용이 없는 왼쪽 소매 끝이 살랑살랑 음침하게 흔들린다.
저녁노을을 등지고서 있어 그의 얼굴은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그 입가가 미소를 띠고 있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모처럼 왔으니까, 좀 더 천천히 가도 될 텐데.”
그리고 한 걸음, 그가 다리를 앞으로 내밀면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움직이고, 그런 자신에게 키리기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탐정으로서의 감이다.
눈앞의 그는──위험하다.
그리고 키리기리의 경계를 알고 있는지, 그는 조금 전까지와 변함없이 그대로 다가온다.
“처음 뵐게, 아니면──오랜만, 일려나.”
허물없는 말은 반대로 경계심을 부추겨 왔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그는──코마에다 나기토는 생긋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그가 입에 낼 리가 없는 이름을──너무나, 자연스럽게.
“저기, 나에기 군은 안 왔어?”
*
“코마에다!”
기세를 붙여 코마에다의 방에 뛰어든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의 이상함에 사고가 움츠러들었다.
언뜻 보면 평소와 다름없는, 아무런 특색도 없는 방.
하지만 그 바닥에 흩뿌린, 하양, 하양, 하양. ──하얀, 알약의 바다.
──아아, 이건 코마에다에게 건네줬던 진통제 약이다, 한 박자 두고 그렇게 깨닫는다. 하지만 처음에 느낀 광기 어린 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심장 박동이, 싫은 예감이 더해 간다.
왜, 코마에다는 여기에 없다. 어디에 있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머릿속에 솟구치는 의문의 소용돌이.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바꾼 히나타는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나미, 코마에다는, 어디 있어?!”
『어……코마에다 군이라면, 자기 방에……없어?!』
그 소리에 응하듯, 벽에 걸린 모니터에 나타난 나나미는 그녀치고는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를 높였다. 곧바로 모니터에는 몇 개의 작은 창이 열리고, 건물 안의 방 풍경이 비치지만, 그 안 어디에도 코마에다는 없다.
그리고 거듭해서 열린 창 중 하나가, 땀을 흩날리며 우사미가 뛰어 들어왔다.
『치, 치아키 큰일이에여!』
『우사미?』
『코마에다 군의 방의 센서가 망가져 있었어여! 그래서 눈치 못 챘지만, 코마에다 군이 여기에서 나가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찍혀있어여!』
“고마워, 우사미! 나나미, 이 일을 다른 애들한테도 알려 줘!”
『알겠어! 코마에다 군을 발견하면 바로 연락할게.』
그것을 듣자마자 히나타는 달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밖으로.
──코마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타이밍에 방 센서가 부서진다니, 우연이 아닌, 코마에다가 의도한 것이겠지. 여기까지 오면 이젠, 의혹은 짙어질 뿐이었다.
코마에다가 밖으로 나왔다면 어디로 향할까?
이 섬에는 특별한 장소는 없다. 간다고 한다면──사고를 굴리면서 달린다.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뭔가가 일어나기 전에 코마에다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우라면 그걸로 좋다.
만나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조함에 등을 떠밀어지는 대로, 노을로 밤의 색으로 변해 가는 하늘을 향해 달려 나갔다.
도착한 선착장에는 아직 배가 정류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두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그러나 용무는 모두 끝났을 터. 생각하고, 나쁜 예감이 더욱 늘어난다.
“여기가 아닌가……윽.”
신경을 곤두세워서 찾아봐도 주위에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코마에다도, 두 사람도,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넓어지는 밤바다에는 심연을 바라보는 듯한 어둠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어디까지나 깊고, 어둡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정적에 잠긴 어둠. 그 안에서 누군가가 침울해 있어도 눈치 못 채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간, 최악의 가능성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곧바로 뿌리친다. 두 사람도 절망적인 상황을 살아남아 왔다, 그렇게 간단하게 죽을 리가 없다.
바다에 떠오르는 달빛은 맑게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불안을 달래며 꿰뚫어 숨을 가다듬는다.
만일을 위해, 배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모르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하니 미래기관의, 이 배의 조타사일 것이다. 순간 죽었나 싶어 흠칫했지만, 작게 호흡을 하는 기색이 들어 안심의 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사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아깝다. 기기류도 손상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 히나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섬 외각을 달리고 있을 때, 통신기에 반응이 있었다. 꺼내 보니 흥분 상태인 소우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히나타, 두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코마에다와 만났다고!』
“! 그래서, 코마에다는 왜 이러는 거야?!”
『틈을 봐서 도망갔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아─정말, 역시 그 녀석 안 변했다고─그것보다 심보가 너무 더러워! 우리도 지금부터 찾으러 나갈게!』
그 후, 소우다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에 히나타는 눈을 돌렸다. 잠시, 발을 멈춰, 하지만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다.
서 있을 시간은 없다.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아까보다도 훨씬 강하게, 초조함이 바로 근처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발을 돌린 건, 몇 번이나 그와 방문한 장소.
어째서 거기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직감이다.
그래도 자신 안의 초고교급 재능이 일하고 있다고 믿고──자기 자신을 믿고, 히나타는 무작정 달려 나갔다.
나무와 꽃들에 둘러싸인 그곳은, 그러나 낮의 온화함과는 동떨어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동물의 기색도 없어,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만이 조용히, 음침하게 들려온다.
그 안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는 큰 나무 앞에, 그는 혼자, 코트 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었다.
쓴 후드에 숨겨진 표정은 먼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달빛 아래에 떠오르는 그 모습에는 언뜻 보면 덧없어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험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 그는 단지 덧없기만 하지 않았다.
지금, 그 회색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바닥이 없는 늪 같은 어둠에 갇히게 될 것 같았다.
초고교급 행운──바꿔서, 한 사람의 초고교급 절망이 된, 코마에다 나기토.
히나타의 기억에서는 『그』와 만난 것은 한 번뿐, 카무쿠라 이즈루로서, 섬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그때의 그와 눈앞의 코마에다는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래, 결국은──썩어버린 냄새. 끝나버린 자의 냄새.
절망의, 냄새다.
“……코마에다.”
그 목소리에 흠칫 반응한 그는 후드에 숨겨진 얼굴을 약간 들어 올렸다. 일부러 히나타에게 눈을 돌린 채로, 천천히 하늘을 바라본다.
“사실은 말이야. 나에기 군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서 나온 건데, 오늘은 안 왔구나. 내 행운도 여기까지인가──아니, 그의 행운이 더 강했던 걸까.”
여하튼, 저쪽은 초고교급 희망이니까.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코마에다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마치 뭉개질 것 같은 큰 달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달을 껴안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면서 코마에다는 노래하듯이 속삭였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와줬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제일 먼저. 그걸로, 만족하도록 할게.”
저기, 히나타 군. 돌아보는 바람에 코마에다가 쓰고 있던 후드가 떨어졌다.
눈 부신 달빛 아래에서, 그 얼굴이 드러난다. 그것을 보고, 히나타는 안타까운 기분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코마에다. 너, ──언제부터 기억이 돌아온 거야.”
코마에다는 순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분명하게 이질적이었다. 명백하게, 사악한 순진함을 품은 것이었다.
“아─아. 들켜버렸나.”
“당연하잖아! 왜 숨기고 있었어, 왜 지금, 이 타이밍에 폭로하듯이 구는 거야?!”
“아하하, 모두 나 따위를 믿어주고 있었는걸. 정말로 좋은 사람뿐이지!”
히나타가 격해지자, 코마에다는 고개를 숙이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틈새에서 쿡쿡 웃는 목소리가 새어 온다. 그것은 악의로 가득 찬──아니, 절망에 찬 울림을 띠고 있었다.
“딱히, 너희를 속이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저 난……비참한 것에, 희망을 품고 만 거야. 품은 김에 조금 꿈을 꿔볼까……생각했어.”
“희망, 이라고?”
되묻는 히나타의 목소리에 코마에다는 천천히 얼굴을 올린다. 거기에는 낯간지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기억이 없는 상태의 나라면, 너에게 사랑받을지도 모른다고.”
“뭐…….”
“있잖아, 나는 널 좋아하는 것 같아.”
허를 찔려서, 히나타는 한순간 굳어졌다.
왜냐면, 그것은 왠지 모르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기억이 없는 코마에다에게 향해지고 있던 감정으로.
그것을, 『지금의』 코마에다에게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처음엔,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기억이 없는 내가, 멋대로 좋아하게 된 것 뿐이라고. 하지만, 아니였어. 너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확실하게 내 안에 뿌리내리고 있어서……어쩌면 나는 정말로, 만났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던 걸까? 그래도 이건 절망적이네! 나 따위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다니!”
쑥스러운 듯이 그렇게 말한 표정은 첫사랑을 고하는 소녀처럼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지만, 그런 고백에 어안이 벙벙하고 있던 잠깐 사이에 그것은 광적인 미소로 바뀌어 간다.
“그래서 기억이 없는 척을 하고 있으면 거리낌 없이 너의 곁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말이야……하지만, 이제, 너희를 속이는 것도 절망적으로 질려버렸어. 그것보다도, 이렇게 너희에게 절망을 줄 수 있다면 그쪽이 좋다고 생각했거든!”
“윽. 너…… .”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요 며칠 접해 온 코마에다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절망한 그의 교묘한 말에 휘둘려서 히나타는 오로지 압도당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그 배에 같이 있던 그가 설마 히나타 군이었다니, 히나타 군이, 내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였다니, 나는 엄청 행운이지. 아니면 필연이었던 걸까? 내가 너에게 끌리게 되는 일은!”
“윽, 어째서, 그런 거까지.”
코마에다와 배에서 같이 있었던 것은 카무쿠라 이즈루였다. 그것을 지금의 자신과 엮다니,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봐도 코마에다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싫은걸, 소거법. 그 정도는 나 따위라도 아는 게 당연하잖아. 이런 쓰레기 벌레 같은 나라도, 인원수 덧셈과 뺄셈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그리고, 한 번 흥미를 느낀 상대의 얼굴을 잊을 정도로는 어리석지 않아. ──저 배에서, 시시하다고 말하고, 그래도 나의 말벗이 되어 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절망을 품고 있던 너. 프로그램 안에서, 그리고 깨어나서도, 아무리 나를 혐오하더라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너. 그 어느 쪽도 같은 인물이었어. 나에겐 그것은 기적적인 행운이라고 말하면 너는 믿어줄까?”
그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노래하듯이 말하자, 코마에다는 갑자기 지금 깨달은 듯 히나타에게 눈을 돌렸다.
“하지만, 놀랍네──이 섬에 있다는 건, 히나타 군도, 초고교급 절망이었구나. 단순한 예비 학과가 아니었어. 매우 유감이라서──기뻐.”
그렇게 고하고, 하지만 코마에다는 곧바로 자신을 부정하는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이런 나 따위가 너 같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니, 사랑해버렸다니, 그런 실현되지 않을 희망을 품다니, 아하, 역시 굉장히 절망적이네! 아하하, 이대로, 죽고 싶어질 정도야!”
그렇게 그는 혼자서 계속 웃고 있었다. 그 광적인 모습을 앞에 두고, 그와 마주하는 감각을 되찾은 히나타는 다짐하며 그에게 반론을 한다.
“죽게 하지 않아.”
“……뭐?”
그 말에 한순간에 웃음은 그치고, 대신에 코마에다가 띄운 것은 차갑게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들어. 나는 너를 이제 죽게 하지 않을 거고, 그 절망을 절대로 부숴 보이겠어.”
“……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이유를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어?”
“──그것보다도, 저기, 히나타 군. 내──저 녀석의 왼손, 어디 갔어?”
“소각했어.”
변덕스럽게 던져진 의문을 한마디로 잘라낸다.
코마에다의 왼손──절단된 왼팔에 장착되어 있던 에노시마 쥰코의 왼손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코마에다가 잠드는 동안에 그것은 코마에다에게서 빼앗아, 처분됐던 모양이다.
절망의 왼손을 연구 재료로 쓰고 싶어 하는 자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이 남아있으면 새로운 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소각했다고, 확실히 그것은 토가미에게 들은 것이다.
그것을 들은 코마에다는 잠시 눈을 감고, 의외로 쉽게 끄덕였다.
“아아, 그래. 아까운 짓을 하네.”
“……코마에다.”
“그래도 뭐 상관없지. 응, 역시 그 녀석은 싫으니까. 지금은 이제 그런 것, 없어도 돼. 왜냐면, 지금은 네가 있으니까. ──그렇지, 히나타 군?”
그렇게 말하고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은 지겨울 만큼이나 본 기억이 있었다. 광기에 일그러진 얼굴. 확실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
“코마에다.”
그래서 히나타는 한 번 더 확인하듯이 그것을 입에 내며 물었다. 자신의 안의 밝은 희망을 스스로 부숴버리듯이.
“──정말로, 전부, 생각났구나.”
신세계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도.
신세계 프로그램 안에서 일어난 일의 기억도.
희망을 요구하고 절망한 기억도.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기억도.
“──응.”
당연하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얼굴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어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 곧바로 그 표정을 숨겨버리고, 바람이 그친 그때에는 다시 그는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너는 이런 곳에서 나와 이야기하고 있어도 괜찮아? 아니면, 너는 아직 모르고 있는 거야?”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너를 만나러 온 거야.”
코마에다. 끈기 있게 냉정함을 유지한 채 히나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폭탄은 어디에 설치했어?”
“그걸 내가 가르쳐 줄 거라고 생각해?”
바보 취급하듯이 그렇게 말하면서 코마에다는 히나타에게 조소를 향했다. 그 진의는 보이지 않는다.
──이 섬에 대량의 폭탄을 설치했다.
그걸 처음에 코마에다에게서 들은 건 키리기리와 아사히나였다.
배에 돌아가는 도중에 그녀들에게 그것을 말한 코마에다는 그 틈을 찌르고 행방을 감추었기 때문에 키리기리는 즉시 컴퓨터 룸으로 연락을 넣고, 나머지 멤버에게 그것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 이 섬에 있는 전원이 폭탄을 수색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 된다. 그러나 정말로 폭탄이 있는지 어떤지, 히나타는 그것조차도 의심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폭탄을 가지고 온 거야?”
“히나타 군, 너는 더 제대로 주의해야지. 폭탄을 만드는 방법은 주변에 있는 책에도 실려 있으니까.”
아니, 코마에다에게 건네주는 책은 선별하고 있었고, 방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체크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스스로 찾아서 가져오고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는 거겠지. 확실히 기억이 없는 동안, 건물 안은 자유롭게 다니라고 했으니, 그 사이에 무슨 책을 들고 있는지까진 체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료는 거의 없다. 위험물이 놓여 있는 장소는 제대로 시큐리티가 작동하고 있다. 과연 정말로 코마에다가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손에 넣었는지 진심으로 의문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허세치고는 코마에다는 너무나도 당당하다. 거짓말이라고 들켜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코마에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 건가.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코마에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조금, 그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간단하게 손끝에서부터 흘러 떨어진 것 같다.
“너는 왜……이런 짓을 하는 거야?”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묻고 싶네.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대충, 어렴풋이 알고 있었잖아, 내가 기억을 되찾았다는 걸.”
“……맞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왜 나 따위의 연기에 속고 있었어? 믿어보려고 했었어?”
“믿는 게 당연해. 우리는, 동료라고.”
“그게 어쨌다는 거야. 너희는 초고교급 절망인데? 동료라고 해도, 결국은 모두가 절망에 이르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지. 나도 마찬가지야, 전부, 희망에 이르기 위한 절망의 발판에 지나지 않아.”
“아니야, 우리는 이제 절망 따위가 아니야!”
“그럼, 뭔데.”
“그건, ”
“저기, 그런 짓을 해놓고, 쉽게 절망이 아니게 되었다니 잘도 말하네. 대단한걸! 하지만 말이야, 이런 우리도 여기서 전멸하면, 분명 나에기 군의 희망이 더욱 한층 더 크게 빛날 거야. 그 토대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희망의 주춧돌이 되는 일뿐이야!”
“──윽!”
이쪽의 신경을 건드리는 엉뚱한 말이 이어져, 이유도 없이 부정하는 말을 내뱉을 뻔해서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제대로, 목적을 정하고, 그의 말을 논파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감정에 맡겨서 말을 늘어놓아도, 그것이 코마에다에게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때, 문득 코마에다의 시선이 히나타를 벗어난다. 그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그는 시시하다는 듯이 내뱉는다.
“──아아, 다들 온 것 같네.”
그 말대로, 발소리의 수는 여섯 명분. 이 섬에 있는 전원이 이곳에 모여 온 것을 알았다. 그들은 대치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큰소리로 외쳐왔다.
“히나타, 폭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나나미와 우사미로 감시 카메라의 데이터도 끌어냈어. 설치된 곳은 어디에도, 없어!”
그것은 대강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나 경계는 늦추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마에다는 지금 이렇게 되는 걸 기다리고 있었었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도, 그걸 위한 것이라 생각 들었다.
“──설마. 우리를 여기에, 자기가 있는 곳에 모으는 게 목적이었어?”
“……뭐??”
“그런……그럼, 이 폭탄 소동에는 무슨 의미가 있었다는 건가요?!”
“의미는 없어! 그냥, 열이 오른 너희에게 인사 대신, 같은 거랄까!”
“……이 자식.”
코마에다와 맞은편, 분노의 비점이 끊긴 오와리가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발밑이 낮은 소리와 함께 뚫린다. 오와리는 코마에다를 노려보는 그대로,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서 물러났다.
주위에 흩날린 파편을 순간적으로 피하면서 얼굴을 들자, 코마에다의 오른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아마 배에 쓰러져있던 남자에게서 빼앗았을 것이다. 투박한 총은 그가 잡기에는 어색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방아쇠에 걸려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뻗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가볍게 구부리려는 것도.
“멋대로 움직이지 마……응?”
“젠장…….”
다시 뛰기 시작한 오와리를 제지하듯이, 또다시 그 발밑에 탄환이 꽂혔다.
“웃기지 마!”
그것에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서려는 오와리를 소우다와 소니아가 팔을 잡고 어떻게든 누른다.
“그만두세요, 오와리 씨”
“이거 놔, 저런 녀석에게 바보 취급당하고 있을 수 있겠냐!”
“넌 일단 진정해! 그런데, 설마, 저 녀석, 우리를 모아서 쏴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나?!”
“동요하지 마. 탄환 수에는 한도가 있어. 게다가 저 녀석은 총에 관해서는 아마추어라고. 지금도 노리고 한 게 아니야. 우연이다.”
떠드는 소우다를 진정시키듯이 쿠즈류가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코마에다는 깔깔 웃었다.
“어라? 어라어라? 내 재능을 잊었어? 그래, 우연──초고교급 행운, 이야.”
“……윽.”
“자, 전력으로 나를 말리러 와봐. 그 대가를, 받을 각오가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코마에다는 다시 권총을 들었다. 총구는 누구를 향하지 않고 멈추지 않은 채로 계속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지탱할 완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무기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코마에다에게 있어서는 그 행운이 최고의 무기였다.
그가 총을 쏘면, 바라는 곳에 총알은 날아간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그를 총으로 공격하려고 하면 상대의 총은 폭발한다. 검으로 베려고 하면 궤도에 방해가 들어오고, 때리려 들면 급소에서 벗어났다. 독을 넣은 음식은 그 입에 닿기 전에 땅에 떨어지고, 화살을 쏘면 전부가, 코마에다를 피해간다.
그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을 노리는 상대에게 접하지 않아도, 자멸시킨다. 그것이 절망적인 행운 본연의 자세였다.
그러나 히나타는 겁먹지 않는다. 기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수십 미터 앞에 선 코마에다를 주시하던 그대로 작게, 비스듬히 뒤에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던 키리기리에게 말을 걸었다.
“키리기리. 뭔가 원거리 무기 가지고 있어?”
“있어. 그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총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실력으로는 그를 다치지 않게 제지할 수 없어, 그래도 되겠어?”
“아니. 신호하면 좀 빌려줘.”
“……알았어. 맡길게, 히나타 군.”
쓸데없는 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키리기리는 승낙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코마에다의 총구가 정해지는, 그 순간.
“키리기리!”
히나타가 부르자, 곧바로 등 뒤에서 키리기리가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넘겨받은 그것을 보지 않고 뒤로 받아, 히나타는 그대로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코마에다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탕……!
“으윽!”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코마에다가 손에 들고 있던 총이 튕겨 날아가, 지면을 나뒹굴었다.
그것을 히나타가 쏜 것과 동시에 달려들고 있던 아사히나가 급히 회수하고, 껴안은 채로 코마에다에게서 떨어진다.
그리고 총을 키리기리에게 돌려준 히나타는 그녀와 교대하듯이, 코마에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쪽도 행운을 가지고 있다고! 상쇄야!”
말하면서, 히나타는 코마에다에게 덤벼들었다. 코마에다에게 피하는 기색은 없다.
그런 여유는 없는 것인가, 자신의 행운을 굳게 믿고 있는가, 아니면──히나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충돌.
그러나, 코마에다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기의 마찰이 뺨을 스치고, 파도가 되어 흩어진다. 맞은 배후의 나무줄기가 흔들리고, 떠진 눈앞에 녹색 잎 몇 장이 춤추며 내리고 있었다.
“──뭐야, 안 때릴 거야?”
이것이 자신의 행운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코마에다는 알고 있었다. 히나타는 일부러 빗나가게 했다. 때리려 한다면 때릴 수 있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손은 코마에다의 목덜미를 잡아 조른다. 오른손 주먹에 피가 배어있는 것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지금의 히나타에게 통증 따위는 뒷전이다.
“드디어, 잡았다고.”
거기서 일단, 하─아, 깊이 숨을 내쉬자, 히나타는 크게 입을 열었다.
“너는 이젠 좀, 제대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애초에, 뭘 마음대로 단정 짓는 거야. 자신 따위가 사랑받을 리 없다거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거나, 혼자 멋대로 단정 짓고, 멋대로 절망하지 마.”
“……히나타 군?”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는 코마에다의 시선을 붙잡은 채, 히나타는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총, 사실은 누구에게 향할 생각이었어.”
움찔.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히나타에게는 그가 그 말에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 보였다. 그가 마지막에 총구를 정한 사람은──자신이었다.
그렇게 지적되어, 코마에다는 갑자기 웃었다.
“희망을 위해선, 나 따위는 필요 없어. 간신히, 그것을 인정할 생각이 들었어.”
“즉, 죽을 생각이 되었다는 건가. 이것도, 지금까지도, 그걸 위한──우리에게 살해당하기 위한 장치라는 거야?!”
“……나는 말이야. 어떤 불운을 끌어당겨도, 나만은 죽지 않아. 게다가, 아무리 바래도, 자신이 죽는 행운도 절대로 오지 않아. 그러니까……이대로 너에게 살해당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때, 그가 띤 미소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맑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엔 거짓은 없어서, 그렇기에──짜증이 났다.
히나타는 깊게 숨을 내쉬고, 한발, 그 얼굴 바로 옆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뒤에서는 정말로 코마에다를 때린 것처럼 보였던 것일까, 비명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코마에다는 변함없이 어떤 저항도 돌려주지 않는다. 그 목덜미를 다시 조르듯이 나무줄기에 몸을 누르고, 히나타는 그에게 타일렀다.
“나 역시,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없이 너랑 어울린 게 아니야.”
“흐음? 나 따위를 생각해 주고 있었구나, 기뻐. 하지만 분명 방해돼서 어쩔 수 없다든가, 그런 거겠지. 그런 일 때문에 너의 머리를 사용하게 해 버린 건 전력으로 사과할게.”
“잠시 닥치고 있어.”
목에 올려진 손에 담은 힘을 강하게 하자 숨이 좁아지는 기척이 있었다. 목을 조여선 역시 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그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아,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녀석이다. 어디까지나, 구제 불능.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대로 죽게 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런 그라고 알고 있어도──
“나는, 네가 살아주면 좋겠어.”
“……뭐?”
그 한마디에 코마에다는 단숨에 싸늘한 시선이 되었다. 상황을 잊은 것처럼, 쉰 목소리 밖에 나오지 않아도, 유창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아니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아니면 넌, 나에게 동정해 주고 있는 걸까? 아아, 고마워. 히나타 군은 정말로 마음이 넓구나!”
“윽, 그러니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아까보다도 강하게 목을 조른다. 재차, 배후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목에 걸리는 손은 결코 진심의 힘을 넣은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코마에다는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 알아채고 만다. 그래도 그렇게 손을 걸어 준 것이 기뻐서, 코마에다는 웃고 있었다.
“야, 아직도, 나한테 살해당하면 행복해?”
“아아, 그렇네. 나에게는 과분한 행복이야. 평생 분의 불행과 어울릴 정도로.”
스륵 눈을 가늘게 뜬다. 떠오르는 것은 녹아둘 듯한 미소. 황홀한 미소. 그것이 분해서, 히나타는 강하게 이를 악물고 손을 떼어 놓았다.
갑자기 버팀목을 잃은 코마에다는 콜록거리면서 쓰러진다. 쉰 목소리로 아쉽네, 라고 중얼거린 그 팔을 히나타는 잡고, 일어서게 했다.
“죽게 하겠냐.”
그렇게 반복해서 말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코마에다는 눈을 치켜뜨고 히나타를 봤다.
“몇 번이라도 말하겠어. 나는 너를, 이제는 죽게 하지 않을 거야.”
“뭐…….”
거기서 간신히,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벗겨지고 말았다.
그 눈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처럼──지금 처음으로, 예비 학과생도, 초고교급 뭔가도, 희망도, 절망도 아닌, 『히나타 하지메』 라는 존재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놀라움에 크게 뜨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
“……뭘, ”
“희망을 위해서라던가 말하면서, 그럴싸한 명목을 꾸며내서, 그걸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윽, 희망을 요구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냥, 네가 죽는 게 나는 싫다는 거야.”
“어째서.”
“애초에, 그런 건 믿음이잖아.”
“뭐.”
“사실은 넌, 누군가에게 바라면서 살고 싶을 뿐이잖아.”
“왜 그런 짓을.”
“왜냐하면, 네가 그랬잖아──사실은, 누군가의 사랑을 원했다고.”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을 텐데.”
“아니, 거짓말이 아니야. 그때의 너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그렇다, 그건 전혀 거짓말 따위가 아니다.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 고집으로도 말하게 둘까보냐.
허식과 비하로 얼룩진 말속에 뒤섞인 진심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아아. 간신히, 이해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궁극적으로 성가신 녀석의 그것은 고작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본질이 보였다.
그것은 프로그램 안에서 그와 보낸 시간만으로는 쟁취하기엔 부족해서, 이렇게 지금, 겨우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아직 추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빗나간 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빗나갔다면, 이렇게 코마에다가 동요할 리가 없다.
“저기, 넌 역시 나에게 동정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도 왜 그렇게 열 내는.”
“시끄러워. 동정만으로 너같이 귀찮은 녀석을 떠안을 만큼 나는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 아니야.”
“글쎄……내가 보기엔 넌 너무 착해서, 고생하는 것 같은데?”
“너 말이야, 적당히 믿으라고…….”
후우, 지친 한숨을 내쉬고, 히나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음에 그 탄환을 장착한다.
“알겠냐, 한 번만 말할 거라고.”
그것은, 한발의, 필살의 탄환.
그 마음의 벽을 부수기 위한, 은탄.
“나는, 너를 좋아해.”
그리고──모든 반론을 찢는다,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바람이 불어, 말의 여운을 휩쓸고 간다. 하지만 그 영향은 결코, 귀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
“안 그러면, 이렇게 너한테 신경 쓸 리가 없잖아. ……정말, 자기 일이 되면 얼마나 둔한 거야 넌.”
“그럴, 리가.”
“말해두지만, 동정이 아니야. 동정으로, 남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걸 말하겠냐. 나도, 네가 기억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이 아닌 것 같아.”
그래, 단호히 단언하자, 드디어 이해 불능에 빠진 것처럼 코마에다는 휘청휘청 주저앉았다.
그 앞에 쭈그려 앉아, 히나타는 그에게 눈을 맞춘다.
“……너는,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외로웠던 것뿐이잖아. 그러니까 희망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어.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으니까.”
코마에다 나기토에게 닥친 행운의 대가인 불운은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가차 없이 닥친다. 그래서 소중한 상대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만들 수가 없었다. 만든 순간부터 그를 남기고 떠나간다.
누군가를 바라면 사라져간다. 그래서 그사이에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아무것도 바랄 수 없게 되어, 끝내는 그에게는 희망이라는 형태 없는 목적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은 가혹한 일로, 그렇기에──외로웠겠지.
파헤치는 말을 코마에다는 궁지에 몰린 얼굴로 듣고 있었다.
“뭘……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아니. 난 네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상상 밖에 할 수 없어. 정말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겠지. 그러니까 이건, 내가 보기엔 네가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야.”
하지만, 잘못되지는 않았지? 물으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듯, 분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어느 쪽이든,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야. 여기서 죽는 편이 좋아.”
“──그건 틀렸다고!”
“……윽?!”
즉시 베어져서, 코마에다는 숨을 삼켰다. 히나타는 강하게 반론을 잇는다.
“필요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건 스스로 정할 일이 아니야. 그냥, 스스로 가슴을 펴고 자신을 자랑할 수 있게 되면, 그걸로 됐어. 지금, 그게 안 된다면, 그런 미래를 만들면 되는 거야. 적어도, 우리는 그러기로 했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그것을 덧붙이는 것은 조금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래도 얼굴을 조금 붉히며, 히나타는 그것을 입에 담았다.
“적어도, 나는, 네가 필요해.”
“……!”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코마에다는 말을 잃고, 빠끔빠끔 입을 여닫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얼굴도 조금 전보다 상당히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도 히나타는 마지막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니까 살자, 코마에다. 같이, 있어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뻗은 오른손을 코마에다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그런 무방비한 표정이라서.
그래서 히나타는 웃으며 손을 뻗는다. 뻗은 손을 잡기 쉽게, 그 몸의 바로 앞까지. 당황스러운 듯 코마에다는 오른손을 방황한다.
그리고, 조금만, 손을 올리고──그러나, 그 손이 닿는 것보다도 빨리, 히나타의 바로 옆을 바람이 지나가.
“우오오오오오오 코마에다아아아아아아!”
엑, 생각한 순간에 틈을 찔러, 동료의 제지를 뿌리친 오와리가 코마에다에게 덤벼들었다. 위에 덮쳐진 코마에다는 힘차게 넘어지고, 쿵, 지면에 머리를 박은 소리가 났다.
“어, 어이, 오와리.”
“시끄러워! 너희들, 미지근하다고!”
엑, 나, 지금 좋은 부분까지 갔었지?? 그런데, 왜 여기서 끼어드는 거야??
히나타가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자, 코마에다를 짓누르던 그녀는 울면서 화를 냈다.
“네 녀석, 히나타가 이렇게나 말하는데 아직 뭔 말인지 모르는 거냐고! 이 완선!”
“그, 그래요!”
그리고 왠지 오와리에 이어 코마에다에게 달려들어 온 소니아가 그 오른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저희에게는, 당신도 소중한 동료예요! 당신이 없다면 무척 외로울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꾹 잠시 눈물을 참다가, 그리고 그녀는 번뜩 얼굴을 들었다.
“죽을 각오가 있다면, 그만큼 사세요. 당신에게는,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소니아…….”
그것은 무거운 말이었다. 『초고교급의 왕녀』인 그녀의 말을 경시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것은 깊게 마음에 울리는 것이었다.
“……정말, 너희들 히나타를 방해하지 말라고─…….”
“소, 소니아 씨, 그런 녀석의 손 따위는 잡아주시지 않으.”
“시끄러워, 소우다.”
그리고 그런 여성 둘에게 뒤처진 것처럼, 왠지 겸연쩍은 듯이 쿠즈류와 소우다가 다가온다.
코마에다의 앞에 서서, 쿠즈류는 그 모습을 계속 응시했다.
한쪽 눈의 시선은 진지할 정도로 날카로웠지만, 그것은 곧 한숨과 함께 닫히고.
“……아, 확실히 너는 최악인 녀석이지만. 히나타가 그만큼이나 말했다, 그것을 봐서 한 번만 용서해줄게.”
머리를 긁으면서, 마지못해, 그렇게 말하는 자세로 쿠즈류가 말하고, 한편 소우다는 아직 복잡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코마에다에게서 조금만 눈을 돌리고 입을 연다.
“나, 난 별로 널 용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히나타나 소니아 씨의 마음을 모조리 무시할 거라면,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
“어, 그 생각이 뭔데.”
“왜 다른 녀석들이 말하는 건 입 다물고 듣고 있었으면서 나한테만 바로 태클로 돌아오냐고!”
“그치만, 너는 나를 싫어하잖아. 쿠즈류 군도, 오와리 씨도, 그렇잖아.”
코마에다는 평소의 까불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아주 솔직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에 깊게 한숨을 토하면서 소우다는 그에게 대답한다.
“맞아. 싫어. 하지만──앞으로, 바뀔지도 몰라. 바뀐다는 건 우리야.”
“……저희는 한 번 절망에 떨어졌어요. 하지만 그 절망에서 벗어나기로 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혼자서는 힘든 길이라도, 이렇게 동료인 여러분과 함께라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나도 할 수 있었으니까, 너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항상 복잡한 생각 하고 있으니까 나보다 잘 알잖아?”
“오와리……넌 너무 생각 안 하잖냐…….”
“뭐, 그것도 그러네!”
“어, 어이, 납득하는 거냐고! 그보다 우리 좋은 말 했는데 장난치지 마!”
“소우다, 너도 일일이 태클 걸지 말라고…….”
정신 차리고 보면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믿을 수 없다는, 이번에야말로 힘 빠진 목소리가 새었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상반신을 일으킨 코마에다는 마치 미지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망연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빈틈투성이인 그를 향해 히나타가 다시 손을 내밀자, 소니아가 잡고 있던 코마에다의 오른손을 연결해 주었다.
차가운 손은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 그것을 세게 꽉 쥐고 일으킨다.
“……저기, 코마에다. 지금까지 네가 있을 곳은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부터 만들어 가면 돼.”
“──어차피, 금방 사라질 거야. 분명히 모두, 없어질 거야. 언제나 그랬어.”
“그런 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정말로 그렇게 되는지는,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
“알 수 있어! 나에게 닥친 행운은, 내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어. 어떤 불운이 돌아올지 몰라…….”
“괜찮아, 너 혼자가 아니야. 나도, 모두도 함께 있어. 그만큼 초고교급이 모이면, 불운은 받아칠 수 있어.”
근거 같은 건 있지도 않은 일을, 당당하게 모른척한다. 그것에 발끈한 코마에다는 반박하려 했다.
“그런 거, 비논리적이야.”
“그렇긴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거든. 원래 재능에는 논리도 아무것도 없잖아?”
“……너무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이든 뭐든 좋아.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 나는, 그렇게 결정했어. 그러니까, 너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그런 말을 듣는 건, 처음, 이야…….”
그것뿐, 코마에다는 목소리를 잃었다. 괴로운 듯 가슴을 안으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눈앞에 서 있는 히나타만을 바라본다.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을,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그의 팔을 잡아당기자, 힘없는 몸은 얌전하게 팔의 안에 쓰러져 왔다.
그것을 부축해주면서, 어째선지, 그 말을 걸고 싶어졌다.
“──어서 와, 코마에다.”
“────!”
히나타가 그렇게 고하면, 오열을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몸을 조금 전보다 강하게 껴안자, 조금 몸을 경직시킨 뒤, 그 등에 머뭇거리며, 팔이 둘러──지려 했지만, 그 순간.
펑……!
조금 전의 총성보다 한층 커다란 소리가, 그사이에 울렸다.
“……윽!!”
“서, 설마 진짜 폭탄이야?!”
벌써 폭탄 같은 건 잊어버리고 있던 참에 허를 찔려, 모두 일제히 주위를 둘러보고,
“! 저거야……!”
그것을 재빨리 알아챈 키리기리가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그렇게 올려다본 거기에는──예쁜 커다란 꽃이, 밤하늘에 몇 개의 불꽃이, 피어 있었다.
예상을 배신당한 모두의 눈이 점이 된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회복한 것은 역시 키리기리였다.
“아사히나 씨, 저건, ”
“……앗, 저거, 내가 가지고 온 폭죽이야, 아마! 보급물자의!”
“어, 어째서 지금, 폭죽……이…….”
보급물자에 들어있던 폭죽.
그리고, 코마에다가 계획한 폭탄 소동.
그 전혀 제각각인 두 개의 점이,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
“……설마. 저게, 폭탄?”
“뭐? ……폭탄, 인가?”
“와, ……아니, 또 이런 거냐! 코마에다아!”
“……역시 폭죽은 예쁘지.”
당했다고 쿠즈류가 고함쳐도 그 주동자는 그런 건 예상이 끝난 상태인 것 같다. 아랑곳하지 않고, 히나타에게 달라붙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 우르르 탈진해 버려, 다른 모두는 지친 듯 땅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또 하나, 폭죽이 발사되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폭죽』을 썼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지금의 코마에다는 마가 떨어진 듯, 그 표정은 전에 없이 상쾌해 보였다.
이 폭죽은 일련의 소동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매듭이 되겠지, 생각하면서 히나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잇듯이 두 번 세 번, 폭죽이 피어오른다. 소우다가 자포자기한 것처럼 “타─마야─!” 외치고, 아사히나가 “카─기야─!” 즐겁게 계속해서 외쳤다. 하는 김에 오와리가 “고기야!”라고 외쳐, 모두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그 사이에서 얼싸안고 있는 것도 슬슬 부끄러워진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몸을 떼어 놓고 그 손을 잡아 모두와 마찬가지로 지면에 앉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설치한 거야? 주위는 전부 찾아봤을 텐데.”
“비밀이야.”
“너, 이젠 됐잖아, 가르쳐줘.”
“싫어. 그 정도, 스스로 추리해 보는 게 어때?”
키득키득, 평소보다도 밝은 어조로 코마에다는 웃었다. 그 옆모습이, 폭주에 비추어져 눈부시게 보인다. 그것만으로, 지금은 충분한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 이상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어깨를 기대고, 큰 나무에 의지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에게 보이지 않게 슬쩍, 그 손은 연결한 채로.
그렇게 당분간 바라보고 있자, 조만간 폭주에 질렸는지, 옆의 코마에다의 시선을 강하게 느껴진다.
“코마에다, 왜 그래?”
“……저기 말이야. 결국, 넌 뭐야?”
“뭐냐니.”
“배 안에서 말했던 것도, 아까 것도. 네가 단순한 예비 학과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럼, 이제 초고교급 절망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너는 도대체 뭐야?”
“초고교급 재능이 없으면 싫어하게 돼?”
“이제 와서 그렇게는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행운은 지니고 있잖아. 그건 도대체 무슨 뜻이야? 설마.”
원래 예비 학과생이었을 터인데, 초고교급 행운을 지니고 있다. 그 모순으로부터, 총명한 코마에다는 이미 답에 간신히 닿는 듯했다.
하지만──초고교급 희망. 카무쿠라 이즈루.
그런 말, 스스로 입에서 내는 건 아무래도 확 와닿지 않고, 너무 부끄럽잖아?
그래서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다.
그 대답을, 히나타는 가슴을 펴고 입에 담았다.
“나는, ──히나타 하지메야” 라고.
끝.
그리고, 하나의 소동이 끝나고, 또 이상한 일상이 돌아왔다.
큰 사건도 없이, 온화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코마에다 외에는 아직 아무도 각성할 징후는 없고, 미래기관에서는 아직 절망의 잔당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초조한 나날로 되돌아갔다.
그래도 분명 내일은, 라며 미래로의 희망을 안는 것은 확실히 깨어난 그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너는 우리들의 희망이야, 말하자 코마에다는 굉장히 곤란한 듯이 초조해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째서 코마에다만이 먼저 깨어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프로그램 안에서 죽은 순서가 관계되어 있는지, 아니면 각오나 자각이 관계되어 있는지, 아니면 역시 그 행운 덕분인지──뭐 그렇게 말하면 더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히나타는 매일같이 프로그램 룸에 발을 옮겨서는 프로그램 해석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전보다는 밖에 나와, 조금 쉬거나 하는 여유도 있고, 덕분에 오버 워크를 나나미에게 지적되는 일도 줄고 있었다.
한편, 기억도 체력도 회복된 코마에다는 변함없이 어슬렁어슬렁 다양한 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다른 멤버의 심부름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밤.
오늘 몫의 작업을 마치고 잘 준비를 한 히나타는 자신의 베개를 한 손에 안고, 옆방의 문을 두드린다.
똑똑 노크하자, 조금 사이를 두고 “들어와”라고, 안에서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히나타는.
“오늘도 같이 자도 될까?”
유무를 따지지 않는 말투로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무서운 꿈을 꿨거든.
그때, 코마에다가 그렇게 말한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코마에다 자신은 그 소동 뒤, 『그때에는 기억은 돌아오고 있었고, 그건 거짓말이야. 그냥 네가 어떤 반응을 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거짓말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왜냐면, 자신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프로그램에서 눈을 뜨고 당분간은 기억이 혼란스러워져, 절망 시대의 일이나 살육 수학여행의 일이 뒤섞인 악몽을 자주 꿨다.
학원에 입학했을 때의 희망에 차있던 기억부터, 절망에 떨어져 가는 자신이 어떤 거무칙칙한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그리고 거기에 섞여든 살육 수학여행의 공포,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비교가 되지 않을 절망의 기억.
꿈을 꾸고는 벌떡 일어나, 자는 게 공포가 되었다. 그대로 잠들지 못하고, 한계에 가까운 신체에 얕은 잠을 탐하는 수밖에 없었던 그 날로부터 아직 별로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히나타만이 아니라 다른 네 명도 같아, 처음쯤에는 한곳에 모여 혼숙을 했었고, 지금도 잠들지 못한 밤은 누군가의 캡슐에 기대어 자기도 하는 것 같다.
기억은 잃었어도,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악몽을 꿔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때 코마에다와 함께 자는 것을 승낙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자각하게 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소동 뒤, 코마에다가 밤에 히나타의 방을 방문해 오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매일 만날 때마다 피곤해하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알기 쉬워서 악몽이 계속되고 있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마에다는 스스로 의지해 오거나는 하지 않는다. 그때 의지해 온 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이 없는 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쪽에서 오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가면 좋지 않을까, 라는 것으로, 이번엔 히나타 쪽에서 방에 들이닥치게 된 이후로 슬슬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히나타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지 않는다. 코마에다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소동 속에서, 혼잡을 틈타듯이 한 고백은 당연히 다른 동료들에게도 들려서, 현재 히나타와 코마에다 두 사람은 따뜻하게 바라봐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의 당사자인 코마에다 본인만은 그 고백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 소동 이후, 언뜻 보기엔 코마에다는 절망하고 있던 것은 거짓말인 것처럼 밝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애초에 그 자신의 근본에 숨은 일그러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때때로 어두운 눈동자를 하는 일도 있다.
그 본연의 행운도 변하지 않아, 대가가 될 불운을 두려워하여 주위를 일부러 멀리하려고 하는 부분도 같다. 그것은 분명 바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과격한 희망에 대한 갈망도, 그 반대인 절망에 대한 지향성도 희미해져 있었다.
그저, 자신 따위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리가 없다. 그 믿음도 아직 그의 안에는 뿌리 깊게 남아있다.
지나치게 낮은 자존감도 여전해서, 그렇기에 코마에다는 자기한테 향하는 호의를 과소평가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 히나타가 방을 방문할 때마다 코마에다는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히나타의 행동의 진의를 어떻게 봐야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도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저기 있잖아, 히나타 군. 나도 이제 혼자서 잘 수 있어.”
“같이 자면 더 잘 잘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럴 필요도 없대도.”
“어젯밤에도 도중에서 시달려서 일어났잖아.”
“……그렇다고 응석 부리게 할 필요는 없어. 침대도 좁아지고, 나 따위 때문에 네가 어울려주다니, 시간 낭비야?”
“있잖아……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그런 식으로 신경 안 써줘도 된다고.”
이것도 매번 같은 반격으로, 매번 대화가 어디까지나 평행선을 더듬어 버린다. 무슨 말을 해도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히나타 군은 좋은 사람이네』라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이런 걸 매일 밤 하고 있을까.
이렇게까지 몰라주니 역시 짜증이 났다. 여하튼 매일 밤 이러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잠깐 물어보겠는데, 넌 내가 싫어?”
“……좋아해.”
“그러면, 상관없잖아.”
그렇게 말하고 재빨리 침대에 오른다. 코마에다는 곤란해하면서도 히나타 몫의 공간을 만들었다.
아아 그래, 다음엔 더 커다란 침대를 부탁해보자, 아니면 나무를 베서 만들거나. 지극히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히나타는 빨리 잘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이, 그 잠옷 자락을 당겼다. 그것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행동이다.
“응, 왜 그래?”
“저기 말이야, 너는 매일 그렇게 말해오지만. 으음, 정말로 의미, 알고 있어?”
“뭐를?”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한, 그 의미.”
“──그럼, 넌 정말 알고 있어?”
“엇.”
당황한 얼굴을 들려고 할 때 옷깃을 끌어당겨, 그리고, 잠시 입술의 열이 겹쳤다.
엇, 놀란 모습으로 굳어진 입술에, 한 번 떼고 나서 다시 한번, 입술을 거듭한다.
마지막에 장난기로, 날름, 혀로 입술을 핥고, 그리고 조금 거리를 두고, 히나타는 지근거리에서 그와 눈을 맞추며.
“좋아해.”
“──읏.”
“나는, 제대로 이런 의미로 널, 좋아하니까.”
폼을 잡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심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 지금의 행동에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해도, 그는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려에 끝날 것 같았다. 얼굴을 숨기듯이 숙인 코마에다의 귀는, 색이 하얗기 때문이야말로 그 붉은색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나에게 있어서, 너 따위를 좋아하게 된 일은 대단한 불운이야.”
고개를 숙이면서 중얼거리는 말은 심한 말투로도 들렸지만,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히나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말의 다음을 재촉했다.
“──그래서?”
“……너에게 사랑받는 건, 나에게 더는 없는 행운이야.”
단번에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히나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감추면서, 코마에다는 깊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 등을 안고, 그 머리를 꾸깃꾸깃 쓰다듬으면서, 히나타는 한 번 더, 그 귓가에 물었다.
“그럼, 같이 자도 될까?”
“……정말, 어쩔 수 없네, 히나타 군은.”
그것은, 그런 말과는 정반대로, 매우 행복한 울림이었다.
End.
- 완벽(ばっちり:밧치리)와 Good의 합친 90년대 신조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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