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ㅇ
[단간/히코마]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 본문
캡션:
내가 해야 할, 단 한 가지
연심을 자각한 코마에다가 도망치는 이야기.
미래기관설정. 쿠즈페코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브녀 요소가 살짝.
코마에다가 그 감정을 깨달았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주』였다.
가능한 한 발각되는 걸 늦추기 위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고, 숙소에 있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지고 있는 가방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꺼내, 거기에 사물을 채우고 방을 나온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식적으로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도록 해온 코마에다에겐 가지고 싶은 물건 같은 건 많지 않았다. 이럴 거면 주머니에 지갑만 넣고 나올 걸 그랬네. 그런 생각이 든 건 운행 시간이 바뀌기 쉬운 버스에 뛰어들면서부터다. 분수에 맞지 않게 초조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의 행선지는 차내 방송을 듣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어디든 좋았다. 멀리 갈 수만 있다면. 다행히도 그 버스는 밤새도록 달리는 듯했다. 내일 아침에 도착할 곳은 코마에다도 모르는 이름의 거리다. 코마에다가 모른다면 분명 그도 모를 것이다. 어떠한 단서가 없다면 들킬 만한 장소가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타이르자, 계속 쿵쿵거리던 고동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야반도주와 다를 거 없이 뛰쳐나왔다. 남기고 온 것은 휘갈겨 쓴 『찾지 마세요』라고 쓴 한 문장뿐. 맡았던 일도, 최근 몇 년간 어느 정도 기를 수 있었던 인간관계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무엇보다 기쁨이었을 희망도,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내일 코마에다가 직장에 나오지 않고 방을 나간 흔적을 보게 된다면 소동이 벌어질 게 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이쪽은 전과자다. 삼엄한 감시가 겨우 풀린 참이었는데. 이제 괜찮다고 보증하면서 풀어준 그 착한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도 물론 있고, 자신의 도망으로 인해 다른 동기생에게 눈총이 가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코마에다도 바보가 아니다. 그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다. 윤리관이나 상식이 이상하다는 지적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별로 친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업무 인수인계 같은 걸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행동의 이유를 설명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부모님을 잃었을 때는 너무 어렸던데다가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 황당무계해 슬프기보다 멍하니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 어떤 아픔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소중한 사람의 목숨과 맞바꾸어 얻는 행운이 비록 몇억이라는 엄청난 돈일지라도 상관없다고.
소중함. 특별하게, 소중한 것은 만들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동기생은 좋아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이 있는 모두.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상냥한 모두. 그중 누군가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코마에다의 행운은 그들을 빼앗지 않고 있어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키보가미네 시절에 반장을 맡았던 그녀나, 담임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조금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끔찍했다. 그는 아니라고 부인해줬지만.
“너, 자신이 항상 세상의 중심이라는 듯이 생각하는 건 거만한 거야.”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자기 자신은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었을 뿐인데. 그저 코마에다에게 있어서 세상의 핵이니, 불문율이니, 그러한 것에 자신의 『행운』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그는 아주 조금 표정을 풀며 코마에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너의 행운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돌고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코마에다는 또다시 조금,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코마에다는 그때의 기분대로 자신의 행운을 두려워해야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코마에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소의 상처나 병을 얻기는 해도 아무도 죽지 않고 있어 주었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어쩐지 울고 싶어져 입술을 깨문다. 그가 죽으면 어쩌지. 자신 때문에 그가 죽으면, 모두는 분명 코마에다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행운의 성격을 알고서도 누군가를 특별하게 좋아하다니. 변명할 것도 없이, 그냥 살인을 저지르는 짓이다.
아니야. 특별하다면, 정말 좋아한다면. 이렇게 헤어질 리 없잖아.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할 거잖아. 아니야. 그는 아니야. 내게 그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이야. 있든 없든 신경 안 써. 그가 죽었다고 해서, 불운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넘어가 줄래?
◇
휴게실에서 히나타랑 나란히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 이야기를 하거나, 아무래도 좋은 잡담이나 날씨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오늘의 의제는 『라면에 한가지 토핑을 한다면 뭘 할 것인가』였다. 그는 차슈라고 했고 코마에다는 니타마고라고 했다. 코마에다로서는 별로 신념이 있는 건 아니고, 그의 차슈와 경쟁할 만한 것을 입에 올렸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무척이나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코마에다의 적당한 프레젠테이션에 니타마고로 전향할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 초지일관으로 힘차게 차슈의 매력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들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주말에 먹으러 가자. 어느 쪽이 맛있는지는 먹어서 비교해 보면 알 거야”라고 억지로 결정해 버렸다. 그가 거론한 가게 이름은 차슈가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였기에 그다지 공정한 승부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것을 모르는 척했다. 그의 지기 싫어하고 코마에다를 이기기 위해 가끔 미묘하게 옹졸한 짓을 하는 점도 제법 좋아했다. 대등한 친구 같다고 되새겼다. 쓸데없는 이야기도 그와 함께라면 즐거웠다.
히나타 씨라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나란히 돌아본다. 같은 지부에 소속돼있다는 건 알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정도의 여자. 하지만 히나타는 그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친근하게 성을 불렀다.
“왜 그래?”
왠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우물쭈물하면서 힐끗 코마에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다.
“그럼 난 먼저 돌아갈게.”
말한 뒤, 마시고 남은 캔커피를 들고 자리를 뜬다. 팔랑팔랑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휴게실을 나왔다.
귀여운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히나타를 좋아하는 거겠지.
그 수학여행 시절의 씀씀이는 지금도 건재하는 건 물론이고 경험을 거듭해 더욱 매력을 더한 덕분에 히나타는 꽤 인기가 있다. 코마에다가 아는 것만으로도 한 손으로 부족할 정도로는 고백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한 번도 교제로 이어진 적이 없으니 이상하다. 거절 대사는 늘 똑같이 『지금은 일에 집중하고 싶으니까』. 미래기관에 소속돼 있을 때는 그대로 이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그는 용서받아도 될 때다. 용서받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때가 됐다. 자신들도 이제 십 대 고등학생이 아니니 멍하니 있으면 혼기를 놓친다.
“……사귀면 좋을 텐데.”
편하다고 언제까지나 남자끼리 뭉쳐서 고독사한다니 웃을 수 없다. 평범한 예비학과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있으면 된다. 그건 조금은 외롭지만. 그런 속내는 쓴 커피로 꿀꺽 삼켰다.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또각또각 힐 소리가 코마에다를 추월해 갔다. 순간적으로 보이던 그녀는 화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잘 된 모양이네. 그럼 같이 나오면 좋았을 텐데. 손이라도 잡아서 알려주지.
조금 늦게 다시 열린 문으로 나온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기 위해 코마에다는 조금 목을 돌린다. 기운이 좋던 그녀와 달리 히나타는 왠지 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여자친구가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또 일을 핑계로 대려다가 억지로 받아들인 걸까. 히나타가 밀어붙이는 것에 약한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녀는 별로 그런 타입으로 안 보였는데.
“……자기혐오야.”
하-, 크게 한숨을 내쉰다. 진지하구나, 히나타 군은.
“음. 하지만 지금은 안 좋아해도 사귀다 보면 잘 될 수도 있어. 옛날의 맞선도 교제 기간이 거의 없을 때 결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평생 금실 좋은 부부로 사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시험 삼아 잠시 사겨보면 어때. 그렇게 말을 계속하려 했다.
“너 어떻게 내가 고백받은걸…… 아니 됐어. 고백받은 건 맞지만 거절했어.”
“어?”
“울릴 수도 있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웃으면서 응원까지 해줬어…… 착한 애야. 그런 착한 애를 상처 입혀버려서 조금 자기혐오하고 있어.”
환한 얼굴이 아니라, 후련한 얼굴이었나. 마음을 전하고, 제대로 생각하고, 얼버무리지 않고 대답해줬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깨끗이 물러났다. 상처 입은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착하다. 착하긴, 한데.
“있잖아, 왜 거절했어?”
왜 그는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 걸까. 왜, 그는.
“……왜, 라니…… 그 애한테도, 말했지만…….”
――다른, 좋아하는 애가 있어. 고백할 용기는 없지만.
그렇게 쓸쓸한 얼굴로, 말하는 걸까.
그는 누구를 좋아하는 걸까. 사이가 좋은 사람은 많이 떠오르지만, 특별히 마음을 쏟고 있었던 거 같은 상대는 모르겠다. 77기생 중 누군가일까. 아니면 미래기관에 소속되었다가 만난 누군가일까. 파견지에서 첫눈에 반했다던가, 자주 가는 가게의 점원이라던가. 그렇게 가능성을 펼쳐 버리면, 이젠 코마에다는 짐작할 수 없다.
컴퓨터로 향하는 히나타를 허리를 펴는 척하며 살며시 살핀다. 수십 분 전의 고백 극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평안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옆모습. 이쪽은 그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
가까운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멀리 사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쭉 함께 해왔는데, 유일한 친구인데, 그 사람을 따라 멀리 가버리는 건 굉장히 쓸쓸하다. 가능한 코마에다가 가끔 히나타와 노는 것을 허락해주는 상냥한 사람이 좋다. 그를 가장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이 좋다. 자존감이 낮은 걸 악화 시켜, 한번은 자신을 버린 그를, 사랑하는 걸 멈춰줄 사람이 좋다.
――나라면, 좋을 텐데.
“……응?”
느닷없이 떠오른 그 사고는, 다른 조건과 같은 얼굴을 하며 들어왔다. 그런데도, 한 번 언어의 형태가 되어 버리면 단번에 부풀어 올라, 코마에다의 뇌를 침식해 가는 것이다. 나라면 좋을 텐데. 히나타 군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면 좋을 텐데.
“응응응……?”
히나타가 좋아하는 사람이 코마에다였다면.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일단 제쳐두면, 아주 멋진 일이다. 그건 인정하자. 『그』는 당연히, 코마에다가 히나타와 노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두 손 들어 보내준다. 인공 희망 따위가 되고 싶었던 예비학과인 히나타를 싫어하고, 희망이 넘치는 지금의 히나타를 아주 좋아한다. 다시 길을 헛디뎌 절망 속으로 빠져들 것 같으면, 본인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돌릴 각오가 돼 있다. 더구나 코마에다와 가까운 사람, 이기는커녕 동일 인물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코마에다가 바라는 히나타의 연인의 조건에, 자신이 꽤 들어맞는다고 해서 대체 어쩔 거란 말인가. 빙글빙글 사고가 돌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야. 생각해야 할 건 거기가 아니야. 나라면? 그건 즉 히나타에게 호감을 받고 싶다는 거야?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도 안 된다. 주제 넘는다. 분수를 몰라도 정도가 있지. 친구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데, 그 이상을 바라고 있어? 나는. 나는.
“응응응응응우우우……?!”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더는 생각하면 안 돼. 잘못돼버려. 전부 전부 전부! 잘못되어버려!
“야, 코마에다?!”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히나타가 있고, 걱정스러운 듯이 코마에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 아픈 거야?! 아니면 항상 하던 기행이야?!”
어쩐지 실례되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별, 별일 아니야…… 괜찮아. 괜찮으니까, 일해도 돼.”
필사적으로 겨우 내뱉은 말은 아무래도 히나타의 귀에는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숙이고 있던 머리를 억지로 들어 올려져 벗어났을 시선에 순식간에 사로잡혔다.
“의무실 갈까? 열은…… 없나. 넌 체온이 낮으니까 잘 모르겠네…….”
이마에 닿은 손바닥이 따뜻했다. 코마에다의 체온이 낮은 게 아니라, 히나타의 체온이 높은 거다. 그렇다. 서로의 체온 차이를 벌써 알아버렸다.
‘불행이 옮아.’ ‘저주받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실실거리다니.’ ‘기분 나빠.’
‘저 녀석을 건드리면―― 죽는대.’
무리야. 무리야. 피해지고 두려워하고 미움받고 용서받지 못하고. 그것이 당연하던 나를, 아무런 주저 없이 만져 준다. 웃어준다. 걱정해준다. 그 상냥함이 내게만 향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데도.
'나랑, 친구가 되어 줄래?'
――손을 내밀어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팔을 잡고 살며시 떼어낸다. 당황한 얼굴을 한 히나타에게 웃음을 던진다. 웃는 건, 우는 것보다 더 쉽다.
“고마워. 히나타 군. 덕분에 좀 진정됐어. 그래도 오늘은 정시에 올라가 볼까…….”
생의 이별다운 말을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
깜빡깜빡 졸고 있는 사이에 도착한 거리는 아직 부흥도 그럭저럭밖에 진행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다만 미래기관의 지부는 놓여 있는 듯, 버스 승강장 근처에 회사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코마에다의 도망은 아직 발각되지 않았겠지만, 발견되면 귀찮아진다. 후드를 머리에 쓰고 튀는 백발을 가리면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한다.
사들인 식료품으로 빵빵해진 가방을 바닥에 놓고 코마에다는 침대로 쓰러졌다. 영업하고 있다기보다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아 사람을 재우고 있는 아늑한 호텔이다. 청소도 잘 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이불도 왠지 먼지 냄새가 난다. 하지만 사치를 부려선 안 된다. 미래기관이 드나들 것 같은 깨끗한 호텔에 묵을 수는 없다.
삼류 서비스조차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곳도 나쁘지 않다. 일주일 치 선불한 숙박비에 프런트 남자는 흔쾌히 유일하게 물이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방을 빌려줬다. 먹을 것이 있고, 잠자리가 있고, 샤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금세 정신이 혼란해진다는 것을 코마에다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세 가지가 갖춰져 있으면 인간의 존엄성은 유지될 수 있다. 고민을 끝도 없이 해도 살아갈 수 있다. 유지보수를 할 수 없는 의수도 머지않아 움직이지 않게 되겠지만, 외팔의 남자는 요즘 시대라면 드문 것도 아니다. 조금 불편해질 뿐이다.
호텔 남자는 더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일주일 있다가 나갈 생각이다. 일주일 동안 잠복했다가 다시 어딘가 모르는 마을로 간다. 새로운 거리에 도착하면 거기서 또 일주일 정도 지내고 다음 거리. 그렇게 계속 도망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하지만, 언젠가.
소란이 가라앉고, 누군가가 코마에다를 찾아다닐 때쯤이 되면. 어떻게든 그 재버워크 섬으로 건너가자. 전뇌 세상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을 주워 모으며 현실의 섬에서 조용히 살아보자. 코마에다의 불운에 휩쓸릴 사람이 없는 섬에서 혼자 살며 혼자 몰래 죽으러 간다. 바라는 게 있다면 바다에 가라앉아 물고기에게 먹혀 부서진 뼈가 아주 조금이라도 그가 사는 마을 근처로 흘러 들어가면 좋겠다. 코마에다의 뼈가 섞여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모래로 아들이나 딸을 위해 큰 성을 지었으면 한다. 코마에다의 행운이라면, 분명 죽어서까지 그에게 적의를 들어낼 일은 없을 테니.
그것은 매우 즐거운 몽상이었다. 즐겁고, 외로운 망상이었다.
체크아웃 아침. 다시 텅 빈 가방을 들자마자 쿵 하고 큰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작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린다. 지진인가, 테러인가. 어쨌든 이대로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 다행히 흔들림은 한순간에 멎어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다.
방을 뛰쳐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인사 정도는 해두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지나쳐 현관을 빠져나오니, 그곳에는 폭발음을 들은 사람들이 불안해 보이는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몇 쌍의 눈이 호텔에서 나온 코마에다를 포착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당당하게 행동할 걸 그랬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무슨 일이 있었지”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은 눈빛은 순식간에 “무슨 짓을 했지”라고 시의에 찬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려던 코마에다의 팔을 잡은 건 호텔 프런트의 남자였다. 때마침 외출하던 참이었는지, 원래 출근 시간이 늦는 거였는지. 방에 틀어박혀 있던 코마에다는 알 수 없지만, 타이밍이 나쁘다는 건 변함없다.
뿌리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든다. 밉살스럽게 째려보는 남자는 폭발음의 원인을 확인하는 것보다, 코마에다의 신병을 억제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주변도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비슷하다.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어지간한―― 「행운」이 떨어져 솟아나지 않는 한.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폭발음이 땅을 흔들었다. 자세를 취하던 코마에다는 침착했지만, 주위는 아수라장이었다. 그 틈을 타서 떨쳐 버린다. 가방으로 사내의 얼굴을 때리고, 코마에다는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공기밖에 들어있지 않은 가방이다. 조금 기죽는 게 고작일 거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필요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충분히 거리를 두고 힐끗 뒤돌아본 배후에서는, 어떻게든 건물의 체면을 유지하던 호텔이 잔해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시궁창 쥐처럼 뒷골목을 뛰어다닌다.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방향 전환을 거듭해 이제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시끌시끌한 공기. 보일러가 터졌다느니 절망의 잔당들이 폭탄을 터뜨렸다느니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오지만 어떤 게 진실인지 결론 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아무래도 그 호텔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폐쇄하라는 명령이 나온 것 같다. 그 소문도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호텔의 남자에게 느꼈던 미안함은 다소 줄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일단 이동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를까. 그러려면 우선 큰길로 나서야 하나.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숨을 들이마신다. 당당하게 행동하면 된다. 사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현상이라면, 호텔 건으로 코마에다를 찾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찾는다면 미래기관의 사람이겠지만 그것도 머리를 후드로 덮고,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의심받고 나서 확신을 가지기까지 다소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늘에서 한 발 내디딘다. 태양 빛을 받는 건 오랜만이다. 겨울 해는 코마에다의 약한 피부를 태우지 않고 그저 따스하게 빛을 던진다. 모르는 새에 표정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마음도. 느슨해졌다.
“찾았다고, 코마에다아!”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 벌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단 1초도 없었다. 그거야 당연하다. 예상했던 것은 코마에다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을 파악하고 있을 뿐인, 지인도 뭣도 아닌 미래기관 직원이다. 지인이라면 머리를 가리고 손을 가린다고 해도, 들켜버린다.
거기서 판단은 빨랐다고 생각한다. 그를 등지고 전속력으로 달린다. 체력에 자신은 없지만, 다리 길이는 자신이 더 길다. 그 사람뿐이라면 뿌리칠 수 있다. 총 같은걸 가지고 있지 않다면.
――파트너인 그녀가 없다면.
“페코!”
그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배후에 느껴지는 살기. 음속마저도 뛰어넘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롭게 뚫린 죽도. 신체 능력에 관해서 보통이거나 그 이하인 코마에다가 대응할 수 있을 리 없다. 코마에다의 행운도 이번에는 도와주지 않았다.
“악……!”
등을 세게 부딪쳐 순간 숨이 멎었다. 아프다. 자비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죽도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의 검도가다. 이래 보여도 꽤 봐주고 있을 터이다.
콜록거리며 숨이 막힌 코마에다의 팔을 꽁꽁 묶은 그녀는 “확보했습니다. 도련님” 이라고 말하며 천천히 다가오는 동안이면서 키가 작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했다, 페코. ……야, 코마에다.”
“야아, 쿠즈류 군, 페코야마 씨…… 우연이네?”
“우연이네, 가 아니잖아!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얏!”
주먹이 떨어졌다. 반지를 끼지 않은 손으로 때린다는 점이 상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이번에는 하고 있는 손으로 맞을 것 같아서 그 한마디는 얌전히 삼켜 두었다.
“하아…… 알았어. 페코야마 씨, 이제 안 도망칠 테니까 놔주지 않을래? 그거 꽤 아프거든.”
“……어떻게 할까요.”
쿠즈류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풀려났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갈 틈은 추호도 없다. 한숨을 내쉬면서 손목을 돌린다. 꽤 아팠던 것에 비해 힘줄이 늘어난 것 같지 않고, 뼈에도 이상은 없는 것 같다. 꽃피운 재능은 검도가의 것이었지만, 마음가짐 자체는 검도 외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 할 말이라도 있냐?”
“아핫, 이렇게 쉽게 잡힐 줄 몰랐어. 역시 전직 초고교급 검도가네! 재능 넘치는 페코야마 씨의 단칼을 이 몸으로 맞을 수 있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유언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병신아!”
멱살을 잡혀 흔들린다. 눈이 핑 돌았다.
“도련님 진정해주세요. ……코마에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돌아가자.”
“……안 돌아가.”
“아아?!”
“모처럼 마중하러 나와줬는데 거절하는 건 마음 아프지만…… 난, 안 돌아갈 거야.”
안 돌아가.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면 불행해지는 사람이 있으니까.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들의 후의를 저버리는 것이 되더라도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귀찮게 해서 미안. 이유도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란다는 건 제멋대로지. 하지만, 난…… 더는 함께 있을 수 없어. 만약 또 절망에 빠질까봐 걱정하고 있다면 여기서 죽여도 상관없어. 동기에게 손대는 것에 저항감이 있다고 한다면 자살할게. 돌아가지 않고 끝낼 수 있다면, 나는……그걸로 괜찮아.”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자신의 작은 아쉬움이란, 그의 불행에 비하면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의 것이다.
――가보고 싶었는데, 재버워크 섬.
이런 낯선 거리에서는, 계속 지켜봐 왔던 정말 좋아하는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잘 떠오르지 않아.
“――히나타가.”
눈을 감고 그들의 심판을 기다리던 코마에다의 귀에 그 이름은 엄숙하게 들렸다.
“히나타가, 쓰러졌다. 어제 일이다.”
“뭐…….”
“본인에게 입막음 당했지만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데, 안 말할 수 없잖아.”
“――왜.”
어째서어째서어째서. 기우뚱 몸이 기울어진다. 쓰러질 뻔한 코마에다의 몸을 페코야마가 다급히 부축했다.
“왜, 저기 어째서야? 멀리 떨어졌는데. 왜? 나 때문이야? 응, 말하지 않아도 돼. 나 때문이네. 알고 있어. 이해하고 있어. 잘 안됐던 거네. 이렇게 떨어졌는데 두 번 다시 안 만나려고 했는데 그래도 안 됐던 거야.”
“야, 야…….”
쿠즈류가 뭔가 말하고 있다. 안 들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목만이 떨리고 있다. 미안해요미안해요미안해요. 맹세를 어겨서 미안해요. 난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쓰레기인데. 핑계를 대면서 속인들 봐줄 리 없었던 거야. 미안, 미안해. 히나타 군.
――좋아하게 돼서, 미안해.
팔이 들어 올려진다고 생각하던 중, 뺨에서 새된 소리가 났다. 뒤늦게 찾아온 아픔은 아까 그녀의 일격에 비하면 너무 가벼워, 그 가냘픈 팔에 걸맞은 정도의 힘에 불과했다.
“히나타는 위독한 상태다. 아마 내일까지 버티지 못하겠지.”
“페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히나타는 죽는다.”
이를 악물고 되새기듯 페코야마는 천천히 잔혹한 사실을 고한다. 저승사자나 악마로 보였다. “죽어…… 히나타 군이, 죽어.” 더듬거리며 반복하는 코마에다에게, 그렇다며 차갑게 대답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젠, 운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언제나처럼 덤덤한 어조로 빚어진 한마디가, 어째서인지 너무 달콤하게 들렸다. 운을 하늘에 맡긴다. 왜냐면, 그것은――.
“내―― 특기 분야야.”
어느새 흘렀던 눈물을, 소매로 쓱 닦아내고 웃어 보였다.
◇
페코야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코마에다가 도망 다니던 일주일에 대해 물었다. 도망친 것이 발각된 것은 예정대로 다음 날 아침이었지만, 거기서부터 모두의 움직임은 코마에다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상당히 달랐다. 우선 이들은 코마에다의 도피를 은폐했다. 병결이라는 이유로 동기생들만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다행히 독감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기인 데다가 전날 컨디션 불량을 호소하며 정시에 귀가했다. 주변에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병가 신청은 순순히 처리됐다. 코마에다는 수배서가 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이 마을의 미래기관 사람을 경계했지만 실제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인해전술을 사용했던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아무런 인연도 없는 거리였는데.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심도시답게 다른 거리에 비해 부흥이 진행되던 자신들의 소속 지부가 있는 거리에는 방범을 위한 감시카메라가 많이 설치돼 있다. 그중 하나에 버스에 뛰어오르는 코마에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버스회사나 운전사의 특정도 간단해져, 그들은 그날 안에 『백발의 남자는 종점에서 내렸다』라는 정보를 얻었다.
코마에다가 숨어있던 일주일 동안 찾지 못하였으나, 폭발사고가 난 호텔(결국 테러가 아니라 사고였다고 한다) 옆에서 목격 제보가 나와 집중적으로 근방을 수색, 발견과 상정한 것 같다.
그런 걸 페코아먀에게 설명받는 동안, 내내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던 쿠즈류가 옆에서 히죽 웃었다.
“흥, 우리가 찾아서 다행이구만. 오와리였으면 뼈 한 개쯤은 부러졌다고.”
“아하하…… 그렇네.”
사실은, 맞았던 등이 아파서 시트에 기대지 못하고 있지만.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게 아무래도 앉기가 불편해 무릎을 감싸고 있었더니, 쿠즈류가 “불만 있냐”고 말하면서 발을 걷어찼다. 높아 보이는 가죽구두가 모래먼지와 미세한 흠집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손질도 하지 않고 돌아다닌 증거처럼 보여서 또렷이 남은 발자국을 그대로 두었더니 “털어내!”라고 소리쳤다.
“하-…… 페코, 슬슬 운전대 바꿀까?”
“아니요, 아직 괜찮습니다. 도련님은 부디 쉬고 계셔 주세요.”
완곡히 거절당해 삐진 쿠즈류에게 “앞으로 1시간 정도 더 가면 도로정비가 진행되고 있는 길로 나오니, 거기서 교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페코야마가 작게 웃었다. 옛날의 그녀라면 끝까지 자기 혼자 운전하겠다고 말을 안 들었을 텐데.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계속 변하지 않았지만, 그 특별한 형태는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느슨해져 버린 입가를 보고 수상하게 여긴 쿠즈류가 “웃지 마!”라며 코마에다의 발에 또 새로운 발자국을 새겼다.
일부러 도로가 고쳐지고 있는 길에서 쿠즈류에게 운전을 교대한 이유를 몸으로 깨달을 즘에, 세 사람은 히나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밖은 이미 완전히 캄캄해졌다.
“이쪽이다.”
익숙한지 선도하는 페코야마는 평소와 다름없는 탄탄한 걸음걸이였다. 휘청거리는 것은 코마에다 뿐이다. 등 이외의 여러 곳이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이 불운도 감사하다. 괴롭지만.
엘리베이터로 위층에. 쭉쭉 올라가는 그것은 멈추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목적인 층에서 세 사람을 내렸다. 간호사센터를 흘겨보고 복도 안쪽으로. 안내된 마지막 방.
“…….”
그곳에 『히나타 하지메』의 이름표가 걸린 독실은 있었다. 진짜 입원했구나. 거짓말이면 좋았을 텐데. 미닫이 문고리에 손을 얹고 주저한다. 침대가 비어 있으면 어쩌지. 이미 사라져 버린 후라면. 나쁜 상상은 성장이 빠르다. 공포로 몸이 움츠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열어야 해. 그에게 행운을. 기적을. 그걸 위해서라면 내 목숨과 맞바꿔도 좋다. 그것만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로 돌아왔으니까. 무섭다. 내가 죽는 걸 생각하는 것보다 이 문을 여는 것이 더 두렵다. 손이 떨렸다.
“위독하다고 했잖냐!”
주저하지도 않고. 코마에다의 손으로 열려야 했던 문은 다른 손에 의해 힘차게 열렸다. 반지가 낀 손은 작지만, 거칠고 힘이 강했다.
등이 떠밀려 병실 안으로 들여진다. 격통에 신음하는 동안 뒤에서 문 닫는 소리가 났다. 쿠즈류와 페코야마는 복도에 남았다.
느릿느릿 고개를 든다. 독서등만이 켜진 실내를 응시하자 불룩한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최악의 상상은 일단 부정됐다.
“히나타 군…….”
천천히 다가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숨은 쉬고 있다. 하지만 눈가에 검은 다크써클이 있다. 애처롭고, 초췌하다. 일주일 전에는 그렇게 건강했는데. 나 때문이야. 미안해라고 중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일주일 치 쌓여 있을 텐데 줄줄 흘러나오는 건 사과뿐이다. 미안해. 미안해. 조용한 병실에 울려 퍼지는 것은 그의 호흡 소리와 자신의 한심하고 축축한 말뿐.
히나타의 얼굴에 손가락을 미끄러뜨린다. 불길한 다크써클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일어나주지 않을까, 건강해지지 않을까. 또, 해님처럼 웃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문질러도 문질러도 다크써클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굴이 새빨개져, 처음보다 더 아픈 얼굴이 되었다. 울고 싶어졌다.
“저기, 일어나봐. 나야. 돌아왔어.”
볼을 감싼 손에 전해지는 체온은 변함없이 따뜻하다. 곧 죽는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흠칫 솜털이 떨린다. 그대로 천천히 뜬 눈꺼풀 너머의 눈동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코마에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가 이름을 부른다. 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히나타는 “돌아왔냐”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웃으며, 코마에다의 손을 잡아 주었다. 꽉 강하게. 강하게. 강하게. 아플 정도로.
너무 아플 정도로.
“히, 히나타 군…… 저기, 있지.”
힘을 풀어달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아파. 손가락뼈가 산산조각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왜 그래? 코마에다.”
히나타는 웃고 있다. 웃으며 코마에다의 손을 잡고 으스러뜨리려고 한다. 이 통증은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혹시. 떠오른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청, 화났어……?”
“당연하잖아.”
그 순간, 보살이 도깨비로 바꼈다.
“네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어딘가로 가버려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고……!”
핏대를 세운 얼굴이 아픈 듯이 일그러졌다.
“또, 혼자서, 죽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다고!”
“……미안.”
죽음이란 것이 주는 상처는 깊다. 받아들일 각오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온 것은 특히 더 그렇다. 시간이 흘러도 갑자기 상처에서 두려움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코마에다가, 친구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하고 있다.
“미안, 미안해. 나는 단지, 널――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뭐야 그게.”
“지금도 그래. 너를 지키고 싶어서, 돌아왔어. 아아, 나는 너의 행운을 위해 어떤 불운을 바쳐야 할까. 팔이든 다리든 눈이든 귀든 혀든, 목숨이든 상관없어. 너를 위해서라면 두렵지 않아…….”
만질 수 없게 되더라도. 옆을 걸을 수 없게 되더라도. 웃는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더라도. 같이 라면을 먹을 수 없게 되더라도. 그 전부라도. 그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내 안에 숨 쉬는 사랑스러운 희망을 위해서라면.
저기, 하느님. 뭐 하는 거야. 빨리 뺏어줘. 나를 불운하게 만들어줘. 그가 구원받을 수 있는 행운에 걸맞은 대가를 받아 가. 자, 얼른. 빨리, 빨리. 빨리!
――빨리, 하라고!
“……어째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눈이나 혀라면, 도구 같은 게 없어도 바칠 수 있는데. 그런데도 손은 그의 손을 잡은 그대로. 이는 악문 그대로. 이제 와서, 자신의 손으로 억지로 불운을 만들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번 생은 작별할 거였잖아. 전부 포기했던 거잖아. 이제 와서.
어째서, 이제 와서―― 이렇게 놓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걸까.
자신의 일부를 잃는 것은 이제, 그의 일부를 잃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안의 그가 빠져나가는 것이 두렵다. 그를 생각할수록 자신이 소중해진다. 욕심으로, 사랑으로, 희망으로, 절망으로. 뒤죽박죽 섞인 더러운 욕망으로, 추악한 괴물로 전락한다. 자신 때문에 죽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바칠 수 없는 주제에, 사랑받고 싶다니 우스운 일이다. 최저 최악의, 분수를 모르는 녀석이다.
그런데도, 누가 뭐래도 그가 좋았다.
“……팔도 다리도 눈도 귀도 혀도 필요 없어. 목숨도 당연히 필요 없어.”
부드러운 손이 이불에 엎드린 코마에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냥, 이제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마. 여기에 있어. 네가 보이는 곳에 있어 주지 않으면 불안해.”
“……나 때문에 죽어도 괜찮아?”
“인간은 언젠간 죽어. 그리고, 말했잖아. 너의 행운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돌고 있는 건 아니라고. 난 너보다 오래 살 거야.”
“거짓말쟁이.”
“하하, 그 말은 내가 죽었을 때 말해줘. 주말에는 퇴원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난주에 못 간 라면 먹으러 가자. 당연히 네가 쏴라.”
“……, ……하?”
뭐야 그 반응. 걱정료잖아 사줘. 히나타의 문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딱히 라면값 같은 게 아까운 게 아니다. 예전의 자산 대부분은 예의 사건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없어졌지만, 자신의 행운은 여전히 금전을 좋아하는 것 같아, 지금도 궁할 일은 없다. 코마에다가 걸린 것은,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라――.
“퇴원이, 뭐야.”
“어? 퇴원이 퇴원이지.”
“히나타 군, 위독한 게.”
“위독해 보여?”
“……안 보여…….”
안색은 나쁘고, 눈 밑의 다크써클도 대단하지만. 불안을 부추기는 소리를 낼 심전도계도 없다. 산소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몸에 관이 하나도 연결되지 않았다. 간호사 센터에서도 멀다. 원래 정말로 히나타가 위독했더라면, 다들 코마에다의 수색 따윈 내던지고 달려왔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자신을 데려온 쿠즈류와 페코야마조차도 병실 밖에 있다.
페코야마. 그렇다, 그녀다. 그녀가 말했다. 히나타가 위독하다고. 충의의 검도가. 주인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녀는, 예를 들어 쿠즈류가 “반드시 코마에다를 데리고 돌아가자”라는 식으로 선언하면, 전력으로 거기에 응하려고 할 것이다. 심한 거짓말을 해서라도, 본인이 원한을 사더라도.
“과로래. 내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이젠 십 대 때랑은 다르네-, 역시.”
죽을 뻔했던 친구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때일 거다. 페코야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쿠즈류가 말없이 단말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때, 『코마에다를 데리고 돌아가기 위해, 히나타가 위독하다고 거짓말했다』고 연락했을 게 틀림없다. 그 이전에 쓰러진 것을 입막음 당했다고 했다.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사과도 분명히 했을 것이다. 의협의 세계에서 사는 그는 입은 험하지만 그 이상으로 의리가 두텁다.
그렇지만, 그렇다는 건. 히나타가 쓰러진 것은.
“――나 때문이 아니잖아!”
“네 탓밖에 없거든?!”
코마에다가 없어진 만큼 일을 대신 맡거나, 휴일엔 현지에 찾으러 가거나 해서 잘 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코마에다는 여러 번 말했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나 때문이지만 나 때문이 아니었어!
“다행이다아…….”
기운이 빠져 의식이 사라진다. 축적된 피로가 단번에 잠의 나라로 끌어들인다. 배터리 수명이 다 된 것처럼 푹 엎드린 코마에다의 귓전에 그가 뭔가를 말하고 있다. 아직도 화내고 있는 건 알겠어. 잔소리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들을 테니까. 지금은 좀 더 다른 말을 해.
따뜻하네.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된다는 건 사실이었구나. 힘찬 소리는, 오늘이나 내일에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잘자.”
설교를 포기한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짜증이 많이 섞여 있었겠지만, 반쯤 잠든 코마에다의 사정이 좋은 귀에는 상냥하기만 했다.
◇
“그래서, 결국 뭐였는데.”
서로의 차슈와 니타마고를 교환하면서 히나타는 옆에서 머리를 묶고 있는 코마에다에게 속삭였다.
코마에다의 도망소동은 동기들끼리 조용히 해결해, 그는 무사히 아무런 책임 없이 직장 복귀를 이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사에게 병후인데 괜찮냐고 걱정받고, 교대로 입원한 히나타의 일도 정리해 준 것 같다. 이걸로 일이랑 관련된 거래는 제로네, 병문안을 온 그는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돌아온 그는 당연히 모두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야단맞고, 추궁당하고, 그래도 도망친 이유에 대해서는 웃고 넘어갈 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히나타조차도 아직 듣지 못했다.
사람 소리와 조리 소리로 떠들썩한 가게 안에서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속삭이면 누가 들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무슨 얘기야?”
“네가 도망친 이유 얘기.”
“라면 불어.”
몇 번을 물어봐도, 이 상태로 얼버무리려고 한다. 잘 먹지 못하게 돼도 처음부터 면을 입에 넣고 있는 그를 곁눈질로 보면서 차슈를 입에 문다. 응, 역시 맛있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히나타가 라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타이밍에, 그가 툭 내뱉었다.
“어?”
“난 그 사람을 차마 내 불운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도망쳤어. 이상이야.”
이제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이, 코마에다는 니타마고에 대면한다. 니타마고파라고 주장했으면서 “노른자는 별로 안 좋아해”라며 도려낸 색이 진한 노른자는 히나타의 덮밥에 담겼다. 노른자를 좋아하는 히나타와 도무지 의견이 맞지 않는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
노른자 대신 차슈 한 조각을 넣어주면서 바보처럼 복창한다. 특별, 하게.
“응.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 누구보다도 소중히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전부터 있었다고 해야 하나. 자각한 건 바로 최근이라서…… 이런 이야기는 쑥스럽네.”
수줍어하는 귀가 빨갛다. 얘도 이런 얘기를 할 땐 쑥스러워하는 걸까. 훌륭한 희망이야, 정말 좋아해, 사랑해라고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큰소리를 치는 코마에다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 또 도망칠 거야?”
그 애를 위해서. 그 애 앞에서. 모르는 거리에서 혼자서 살아가려는 거냐. 입에서 나오는 울림은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본인은 그런 히나타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실 웃는다. 무척이나, 행복하게.
“하하, 벗어나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본인에게도 꾸중을 들었거든…… 떠나면 떠나는 대로 폐를 끼친다는 것도 알게 됐어.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그 사람만 떠올려서 힘들었고.”
이마가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서, 수줍은 얼굴의 그가 속삭인다.
“그러니까 이젠, 어디 안 갈 거야. 난 항상, 그 사람 곁에 있어.”
다정하고 달콤하고, 고유명사가 빠진 말은, 왠지 고백 같았다.
그가 특별하게 좋아하는 사람, 은 누구일까? 도망친 것을 야단맞았다고 하니 수학여행 멤버 중 누구라는 것이다. 비밀은 밖으로 새지 않았다.
착한 애였으면 좋겠다. 어리광부리는 것이 서투른 이 녀석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녀석이 좋다. 강한 애였으면 좋겠다. 그의 불운에 휩쓸려도 무사해서, 괜찮다고 웃어주는 녀석이 좋다. 그의 불운도 행운도,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어 비뚤어진 성격도, 모두 수용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녀석이면 좋겠다.
만약, 그것이. 코마에다의 『특별』이.
'나는 단지, 널――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나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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